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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홍 칼럼] 평화와 인권의 우선순위

평화와 인권 중에서 어떤 한 쪽을 강조하면 다른 것이 희생되는 상황에서는 그 정책 비중을 따져봐야 한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이 그렇다. 정부가 최근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하고 일반에게 공개했다. 2016년 북한인권법 제정 후 북한인권보고서를 매년 국회에 보고해 왔지만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북한 인권이 문제라는 것은 대개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정부가 조사해서 일반 공개했기 때문에 남북관계에 새로운 요인이 부가됐다고 봐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과 협상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봐야 한다.

인권 문제에 대해서 북한을 두둔하기는 주체사상을 옹호하기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범죄자 공개처형, 사상 양심과 표현의 자유 불용,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분분류제 등이 지구상에서 최악의 인권상황이라 할 만하다.

북한체제를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주민에 대한 성분 분류제다. 1998년 뉴욕의 아시아인권감시위와 미네소타변호사 국제인권위가 펴낸 ‘북한의 인권’이라는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상세하게 밝혀졌다. 통일부도 귀순자 증언을 토대로 이를 정리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1996년부터 2년 동안 주민재등록 사업을 벌여 모든 주민 개개인의 정치적 사회적 신분을 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직계가족 3대와 처가 외가 6촌까지를 내사해서 전체 인구를 28%의 핵심계층, 45%의 기본계층, 27%의 적대계층으로 나누고 다시 51개 성분으로 세분했다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 때 작성된 보고서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 아래서 더 이상 악용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 그 이후 새롭게 검증된 자료는 알려진 것이 없다.

인권개념은 곧 정치이념과 체제의 중심가치를 구성하므로 자유주의 인권정책을 사회주의 체제에 적용하는 것은 총성 없는 공격에 비유된다. 체제를 내부에서 와해시키는 효과적인 전략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측도 동서냉전 시대 유럽에서 헬싱키협정의 인권규정이 동구권을 무너트리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이미 잘 간파하고 있다. 그런 북한을 상대로 인권정책의 전략화는 어려울 것이다.

독일 통일 이전 서독이 동독의 인권문제를 건드리지 않았던 배경에는 평화통일을 추진하는 대전략이 깔려 있었다. 단기적인 인권 개선보다도 궁극적인 평화통일에 더 무게를 둔 전략이었다. 독일 통일의 레일을 깔았던 것으로 평가되는 동방정책의 기조 위에서 서독은 동독을 압박하지 않고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지원하는 데 주력했다. 서독정부는 대규모 경제적 지원을 하는 조건으로 동독 정치범 3만3755명을 석방시켰다. 동독과 수교한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냉전시대 할슈타인 원칙도 폐기했다.

동독의 인권문제는 서독이 거론하지 않는 대신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서 다른 회원국들이 동유럽 공산국들에 포함시켜 개선을 요구했다. 이는 동북아 6자회담에서 북한에 인권개선과 문호개방을 요구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한국이 북한에 인권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고 지역안보협력체제의 틀 속에서 논의하도록 하는 전략적 방안이었다. 그러나 CSCE는 성공적이었지만 동북아 6자회담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인권은 국가 이전에 모든 사람이 누리는 자연권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부여하는 기본권보다 더 근본 개념이다. 권리가 없을 때 권리 요구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인권의 궁극적 목적은 권리요구를 없애는 것으로 자기소멸 상태를 지향한다. 그러나 평화가 깨진 전쟁 상황에서 인권이란 무의미해진다. 전쟁이 터진다면 북한의 인권뿐 아니라 남한의 인권도 선반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평화가 인권보다 더 포괄적이고 우선적 개념인 이유다.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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