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장애아들 홀로 키우며 수만평 농사 일군 시골조합장
무투표 당선 김범진 담양농협조합장 인생스토리
강냉이죽 끼니 때우고 가출까지…결국 인생 역전
‘농협 존재 이유 農民’ 기본에 충실한 조합 운영
전국 최초 명예조합원•농민퇴직금 제도 도입
공인중개사 취득, 농민들에게 세금, 법률 지원
김범진 담양농협조합장(오른쪽)과 정병운 월산면 죽림작목회장이 난방비 인상 등 현장 애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서인주 기자

[헤럴드경제(담양)=서인주 기자] “사랑하는 아들 모두가 장애가 있습니다. 농사짓고 소 키우며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게 쉽지 않았어요. 부끄럽게도 한때는 숨기고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하지만 내가 낳은 자식이 아프다고 버릴 수 없잖아요. 끝까지 책임져야죠. 덕분에 지금까지 거짓말 안하고 열심히 살아왔어요. 자식들에게는 늘 미안하고 고마워요”

장애가 있는 3명의 아들을 수십년간 홀로 키우며 생존을 위해 130마 지기(2만6000평) 남의논과 밭을 갈던 평범한 농부가 자산 1조원에 달하는 농협 조합장에 선출됐다.

이 농부는 지난 8일 치러진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됐다.

주인공은 딸기로 유명한 담양농협 김범진 조합장.

김범진 담양농협조합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조합장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됐다. 서인주 기자

전남 담양농협은 용면과 월산농협이 통합되면서 규모가 큰 단위농협이다. 조합원 3600여명과 자산 5000억, 예수금 4000억, 대출금 3600억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새롭게 도전하는 후보자가 아무도 없었다. 한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기도 하는 치열한 조합장 선거판에 보기 힘든 케이스다.

27일 담양농협에서 김 조합장을 만났다.

‘농협의 존재 이유는 農民이다’ 사무실에 걸려 있는 대형 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집무실에도 농협법 1조가 깨알같이 걸려있다. 특별한 사연이 숨겨 진 듯 하다.

달콤한 한라봉 차와 담양쌀로 빚은 반달떡을 함께 나누며 2시간 가량 인터뷰를 진행했다.

따뜻한 한라봉차와 담양쌀로 빚은 반달떡을 함께 나누며 2시간 가량 인터뷰를 이어갔다.

“제가 좀 내성적인 성격입니다. 선거 체질도 아니고 조합장을 꼭 해야겠다는 마음도 없었어요. 연임이나 재선 욕심은 더더욱 없었는데 조합원들이 이점을 높이 사준 것 같습니다.”

김 조합장은 기본을 거듭 강조했다. 보여주기식 경영 대신 내실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때문에 사무실 대신 현장을 강조한다. 수시로 딸기농장과 작목반을 찾아 농민들과 소통한다. 농사경험만 50년이 넘는 만큼 형님처럼 때로는 선생님처럼 조언을 곁들이기도 한다.

맞춤형 지원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쌀값 하락으로 힘들어 하는 농민들을 위해 벼 장려금 3억원을 비롯해 농약할인판매 1억3000만원, 폭설피해 영농자재교환권 7300만원, 시설원예농가 박스보조 1억800만원을 먼저 지원했다.

농협의 주인이 농민이고 조합원이라는 게 그의 평소 신념이다. 쉬운 말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담양농협사무실에 걸려있는 슬로건.

“불과 30~40년전만 하더라도 농협은 출자금 등이 부족해 직원 월급이 밀릴 정도로 경영이 어려웠습니다. 그때 큰 도움을 주신 분들이 지금은 고령으로 은퇴하신 어르신들입니다”

“비록 조합원 자격은 상실했지만 그분들의 공을 인정해 드려야 합니다. 조합원 혜택은 모두 드리지만 선거권은 없는 형태이지요”

김 조합장은 전국 최초로 도입한 명예조합원과 원예농가 퇴직금 제도를 힘주어 설명했다.

그는 “농민들은 은퇴해도 퇴직금이 없다. 그만큼 노후가 불안하다” 며 “농업농촌의 어려움을 함께 풀어가기 위한 노력으로 농민들도 직장인처럼 퇴직금을 받는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범진 담양농협 조합장

어린시절은 가난했다. 학교에서 주는 강냉이죽으로 끼니를 때웠고 공부를 잘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결국 서울로 가출했다. 양말공장에서 일하다 장티푸스에 걸려 죽다 살아났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결국 다시 흙으로 돌아왔다.

“새벽별 보고 나가 저녁까지, 농기계가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농사를 천직으로 삼고 한우물을 팠다. 땅이 없어 소작을 했는데 그의 성실함을 눈 여겨 본 마을 어른들이 힘을 실어줬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에 매달렸다. 농협과도 이때 인연이 닿았다.

경운기, 이양기, 트랙터 등 농기계를 하나씩 늘려가며 농사에 매달렸다. 최근에는 드론조종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살림도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아이들이 모두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부인마저 떠나면서 그의 삶은 더 치열해졌다. 바쁜 농사일에 요리, 살림까지 전담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을 목포와 강진에 있는 장애인 보호시설에 출퇴근 시키기 위해 수만km를 차로 내달렸다. 가슴 졸이며 살던 시기다.

집무실에는 농협법의 세부내용이 깨알같이 걸려있다.

“아들만 3명입니다. 김치찌개를 끓이면 밥 한솥이 통째로 사라지죠. 돌아보면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오히려 이게 삶의 힘이 됐습니다.”

“남들은 조합장을 부러워하고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평범한 가정으로 돌아 갈 수만 있다면 아무조건 없이 떠날 겁니다. 제가 사심 없이 일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동생의 권유로 뒤늦게 학업을 이어갔다. 검정고시로 고등교육을 마쳤고 내친김에 공인중개사에 도전했다. 시험은 어려웠다. 2번의 고배 끝에 역대 가장 어려웠다는 13회 공인중개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사이버대학에도 진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농사를 지으며 부업으로 공인중개사도 병행했다. 진흙탕이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손님을 맞을때도 많았다.

김범진 담양농협조합장이 죽림작목반을 찾아 딸기 생산 및 출하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다.

“공인중개사로 일하면서 큰 돈을 벌 기회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양심을 속일 수가 없었죠.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와 믿음을 돈과 바꿀수가 없었습니다”

공인중개사로 일하면서 농민들이 놓치기 쉬운 법률, 행정, 세무 지식 등을 알려줬다. 모르는 부분은 책과 인터넷을 찾아가며 공부했다. 무엇보다 보람이 컸다.

“범진이에게 물어보면 돼”

‘담양 맥가이버’, ‘농민 해결사’ 자연스럽게 따라붙은 별명이다. 조합장에 출마하게 된 이유도 주변사람들의 거듭된 추천 때문이다.

“농가의 소득을 올리는 일이 가장 어려운 과제라고 봅니다. 지역 특산물 판매를 위해 온라인 쇼핑몰을 더욱 활성화하고 담양군과도 협업할 계획입니다. 타지역 농협과도 경쟁 대신 상생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한라봉차가 다 떨어져갈때 그는 자신의 차를 기자에게 덜어줬다. 시골의 훈훈한 정과 인심이 느껴졌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