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금리차 이어 실적도 부진
SVB·CS사태에 안전자산 선호
이달 1조3600억 규모 순매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25bp(1bp=0.01%포인트) 인상하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국내 증시의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해 보인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 등으로 인한 금융시스템 위기 불안감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상장사들의 실적이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외금리의 역전폭이 다시 최대치로 벌어지면서 국내 증시의 핵심 주체인 외국인들의 이탈 움직임이 가속화디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2일까지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주식을 1조3614억원 어치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1월 6조5025억원, 2월 1조594억원 순매수하며 증시를 끌어올린 바 있다.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은 SVB 파산 사태 이후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SVB에 이어 CS 역시 재무 건전성 문제가 불거지자 금융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에 국제 금 선물 가격이 온스 당 2000달러를 돌파하는 등 위험자산 회피 및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나타났다. 코스피는 이달 1.63% 하락했다.
국내 기업들의 악화한 실적 또한 국내 증시 매력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지난해 4분기 국내 대기업 영업이익은 70%가량 급감했다. 현대차와 기아 등 자동차·부품 업체의 영업이익은 증가했지만, 주력 사업인 반도체가 한파를 겪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업의 1분기 실적 전망 역시 부정적이다. 증권가는 SK하이닉스가 1분기에도 적자를 지속하고,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적자 전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21일 다올투자증권에서 삼성전자가 2009년 1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 분석하기도 했다.
김양재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전방 수요 악화로 서버·PC·스마트폰 고객사가 메모리 반도체 주문을 줄이고 재고 소진에 주력하고 있다”며 “메모리 반도체의 대규모 재고평가 손실을 반영한 뒤 2분기부터 영업적자가 축소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증권가는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로 증시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이 기대했던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파월 의장이 부정했고 한·미 금리차가 22년 만에 최대치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이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국내 시장보다 투자안전성이 높은데다 금리까지 높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한국 증시에 대한 외국인들의 ‘헤어질 결심’을 부추길 수 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3일 기준금리를 3.50% 유지하자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은 3거래일 연속 순매도해 9139억원 어치 주식을 매도한 바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3월 FOMC 이후 연내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면서 코스피를 비롯해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며 “코스피가 2300선 이하로 조정될 경우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금리인상 사이클은 거의 막바지에 돌입했지만, 현재 금리가 충분히 제약적인 수준”이라며 “경기 및 신용여건이 악화할 가능성이 높아 주식시장에서 상승 대열을 유지하는 종목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증권가는 5월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 더 25bp 인상한 후 연말까지 동결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한국과 미국의 내외금리차가 추가 확대될 수 있어 한은으로서는 잠시 넣어 둔 기준금리 인상카드를 다시 꺼내 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권제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