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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스팅에 ‘남녀의 벽’은 없다
연극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로 출연 중인 배우 차지연. 그녀는 ‘젠더 프리’ 캐스팅의 단골 배우다. [커넥티드컴퍼니 제공]

“신이시여, 내가 죽은 뒤에도 나의 음악이 살아남게 해주신다면 당신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겠습니다.” (연극 ‘아마데우스’ 중)

오직 단 한 곡 만이라도, ‘불후의 명곡’을 남기고 싶었던 비운의 음악가. 그래서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들의 수호자’라고 말한다. 천재가 되고 싶었지만, 천재를 알아보는 재능에 그쳤던 범재. 모차르트를 끊임없이 경외하고 질투하는 살리에리가 환생했다. 배우 차지연의 모습으로다.

무대 위 성(性)의 경계가 무너졌다. 정해진 성별을 초월, 남성 역할을 여성 배우가 맡고 여성 역할을 남성 배우가 맡는 ‘젠더 프리(gender-free)’ 캐스팅이 늘고 있다.

‘젠더 프리’ 캐스팅은 애초 공연의 기획 단계부터 배역의 성을 정해 놓지 않거나, 성별이 정해진 역할에도 누구나 캐스팅할 수 있도록 열어두고 배우들을 물망에 올린다. 남성 중심 서사극으로의 편중, 그로 인한 성비 불균형을 깨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등장했다. 공연계의 다수를 차지하는 2030 여성 관객들의 민감한 ‘젠더 감수성’을 반영하며 나타난 시대적 변화다.

국내 공연계의 젠더 프리 첫 작품은 ‘뮤지컬 계의 대모’인 이지나 연출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였다. 성별이 정해졌지만, ‘열린 캐스팅’으로 여성 배우가 이름을 올린 사례다. 2015년 공연한 작품에서 헤롯왕에 김영주가 캐스팅됐다. 이후 이 연출은 ‘광화문연가’의 월하 역을 통해 또 한 번의 시도를 이어갔다. 배역의 성을 정해두지 않은 이 역할에 정성화·차지연·김호영 등의 남녀 배우를 캐스팅했다.

배우 차지연은 ‘젠더 프리’ 캐스팅의 단골 배우다. ‘광화문 연가’에 이어 ‘더 데빌’, 한창 관객과 만나고 있는 연극 ‘아마데우스’(4월 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까지 성별이 정해진 역할부터 정해지지 않은 역할까지 섭렵하며 연기 폭을 넓히고 있다. 차지연 연기의 특징은 ‘과유불급’의 미덕을 지킨다는 데에 있다. 기존 남성 역할이라 하더라도 남성성을 과하게 부각하지 않고, 관객들이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연기를 보여준다.

현재 공연 중인 헤르만 헤세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 ‘데미안’(3월 26일까지, 드림아트센터)에선 배우 홍나현이 데미안을 연기한다. 뮤지컬 ‘해적’(6월 11일까지, 서경대 공연예술센터)은 더 독특하다. 모든 배우가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이름을 올렸다.

공연계 관계자들은 “젠더 프리 캐스팅은 성의 고정관념을 깨는 동시에 작품의 다양성 확장과 배우들의 폭넓은 연기 기회를 준다는 장점이 있다”고 분석한다. ‘백마 탄 왕자’가 주인공인 작품에서 여성 배우들의 역할은 언제나 남자 주인공의 고난 극복과 성장을 위한 조력자에 그쳤다. 반면 젠더 프리 캐스팅은 성실한 조력자를 벗어나 배우의 개성과 연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만큼 캐릭터의 한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준다.

관객 역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같은 역할을 두세 명의 남녀 배우가 연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작품을 보는 것만큼 시각의 변화를 안긴다.

다만 배우들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젠더 프리’의 선두주자인 차지연은 “여배우가 남성 역할로 섰을 때 관객들이 거부감과 거리감을 느끼고 작품 전체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며 “중요한 것은 선을 지켜 설득력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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