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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낡지 않은 소리 만들어가는 중”
데뷔 34주년 맞는 ‘맨발의 디바’
끊임없이 연구하는 보컬리스트
“삶의 동반자 돼준 음악, 고맙다”

소리 위를 걷는다. ‘천 개의 목소리’가 만난 듯 겹겹이 쌓아올려 뱉어낸 노래들. 풍성하나 무겁지 않고, 편안하지만 가볍지 않다. ‘하나의 목소리’가 빚어낸 마법의 시간 안엔 수만 가지의 감정이 쌓인다. 그의 이름 앞엔 언제나 ‘독보적’이라는 수사가 따라온다. 도무지 ‘모창 능력자’를 찾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보컬리스트.

팬데믹으로 움츠렸던 시간들을 지나온 가수 이은미가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지난 30여년 동안, 많을 때는 1년에 50회씩 공연을 올렸다. 지금까지 무려 1200회나 된다. 올해엔 40개 도시로의 전국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4년 만에 돌아오는 콘서트의 제목은 ‘2023 이은미 라이브 투어 ’녹턴‘’으로 정했다. 2010년 발매한 그의 대표적인 히트곡이다. 대중도 스스로도 ‘가장 이은미답다’고 생각하는 음악이다. 그는 “가장 이은미다운 모습을 보여줄 공연”이라고 했다.

올해로 데뷔 34주년. 지금도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는 이은미를 최근 서울 마포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긴 시간 안에 쌓인 음악 이야기엔 그의 어제와 오늘, 내일이 있었다.

▶ ‘맨발의 디바’ 벌써 노래한지 30여년=34년이라는 시간은 무게이자 영광이다. 1989년 신촌블루스의 객원 가수로 데뷔해 1992년 1집 ‘기억 속으로’를 냈다.

“제 일은 본인이 선택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운이 좋게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이은미의 목소리가 들어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홀로서기를 시작한 뒤, 그에게 따라온 수식어는 ‘맨발의 디바’다.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그만의 별명이다. 첫 음반 제작 당시 녹음하며 생긴 일화가 ‘맨발’ 가수 탄생의 신호탄이었다.

당시를 떠올리며 이은미는 “북미에서 가장 좋은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는데, 해상도가 좋은 스피커 앞에 서니 청바지 스치는 소리가 천둥소리만큼 들렸다”고 말했다. 긴장을 풀기 위해 맨발로 녹음을 했던 버릇이 콘서트로도 이어졌다. 첫 솔로 앨범 발표 이후 ‘공연형 가수’로 자리잡고, 대학로에서 인지도가 높아지자 언론을 통해 그의 이름 옆에 ‘맨발의 디바’라는 타이틀이 따라오게 됐다. 불과 데뷔 5~6년 만에 생긴 별칭이었다.

“당시엔 그 별명이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꾸준히 열심히 잘해서 30년쯤 하면 그 때 불러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30년이 넘었네요(웃음)”

긴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명곡이 쏟아졌다. 1990년대 ‘기억 속으로’, ‘어떤 그리움’을 시작으로 2005년 ‘애인 있어요’, 2009년 ‘헤어지는 중입니다’, 2010년 ‘녹턴’은 빼놓을 수 없는 히트곡이다. 정작 그는 “히트곡이 많은 가수는 아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과 ‘시절 인연’을 맺으며 교감했고, 그 시절을 뛰어넘어 소통하며 히트곡은 탄생했다.

“어떤 때엔 그만두고 싶어 도망가기도 했고, 그러다 다시 돌아오면 사랑받는 음악이 나오기도 했어요. 20주년쯤 됐을 땐 이게 운명인가 싶더라고요. 지금은 도망가지 않고, 운명을 잘 받아들이려구요”

▶공부하는 보컬리스트... ‘이은미 음악’의 힘은 이은미=이은미 음악의 힘은 ‘이은미’ 자체에 있다. 보컬리스트로의 강점, 음악가로의 신념과 방향성, 끊임없는 공부가 쌓아온 힘이다.

보컬리스트 이은미는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 이은미가 음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 역시 ‘성실함’이다. 그는 “음악은 오랜 시간 연습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것을 꾸준히 해내는 사람만이 경지에 오른다”고 말한다.

이은미는 오랜 시간을 들여 “알리사 플랭클린처럼 몸통을 울려 공명이 잘 되는 소리”를 만들었다. 완성됐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잘 활용했고, ‘창법의 연구’ 덕분에 ‘다양한 표현력’을 가지게 됐다.

중년에 접어들며 흉성의 사용으로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했다. 파워풀한 보컬에서 중저음의 다채로운 색채, 고음에서의 넓고 풍성한 배음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이은미의 음색을 독특하다고 느끼는 지점이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보컬’로 불릴 수 있던 것은 그의 음악이 수십 년간 공부하고 연구한 발성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저는 음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노랫말이 품는 의미를 소리로 전달하는 사람이에요. 그 의미를 담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굉장히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배음을 만들고 있어요. 배음들이 품고 있는 여러 가지를 음악에 집어 넣었는데, 그게 들리지 않으면 이은미 노래의 맛이 나지 않는다 하더라고요. 어쩌면 따라하기 어려워 히트곡이 없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 그게 또 좋은 건 아니죠?(웃음)”

한 해 한 해 늘어가는 나이테만큼 보컬리스트로의 고민도 깊어간다. 그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는 보컬리스트이니, 몸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낡지 않은 소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들면 성대도 탄력이 떨어지고 늙는다”며 “가능하면 더 오래 (성대의 노화가) 표가 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창법으로 바꾸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 삶의 많은 것을 선물한 음악...“동반자 돼줘 고맙다”=시대마다 소통한 그의 음악엔 보편성과 독창성이 어우러진다. 그의 음악은 시대와 소통하면서도 반 보 앞섰다. 그래서인지 더 오래 불렸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악도 좋은 음악이지만, 사람들을 깨어날 수 있도록 만드는 음악도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몇 년 정도는 ‘한국에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어?’ 싶을 정도로 앞서가는 음악을 해왔어요. 만약 제 음악이 그 시대의 주류 음악이었다면, 당시를 풍미하고 사라졌을 수도 있어요. 시대성과 무관한 스테디셀러를 만든다는 것은 어렵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기도 해요. 모든 음악가의 꿈이죠”

음악과 함께 한 날들은 그를 끊임없이 담금질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황량한 계절을 인내하고, 온화한 햇빛을 마주한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굳건하고 강인하다. 그는 “음악은 제게 많은 것을 선물해줬다”며 “저도 이젠 음악에게, 동반자가 돼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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