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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거 대상인 ‘노이즈’에서 찾는 휴머니즘
박종규 개인전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
학고재갤러리, 박종규 개인전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 전시전경. [헤럴드DB]
박종규 작가

‘선택’은 ‘권력’의 다른 표현이다. 선택된 것들은 권한을 부여받고, 선택받지 못한 것들은 버려진다. 메이저와 마이너, 중심과 주변은 권력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대구 출신 회화 작가 박종규는 우리가 사는 현 시대를 ‘디지털 컴퓨테이션’으로 정의하고, 제거 대상인 노이즈(noise)에 집중한다. 컴퓨터 화면의 긍정적인 신호인 시그널(signal)이라고 한다면 노이즈는 기계 입장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혹은 선택 받지 못한 신호다. 박종규는 컴퓨터의 노이즈를 수집한 뒤, 확대해 캔버스에 옮긴다. 잡음처럼 필요 없는 대상이건만, 눈 앞에 펼쳐지는 노이즈는 굉장히 질서 정연하고 아름답다.

“더이상 삭제 할 수 없는 수준까지 요소를 지워나가는 미니멀리즘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서, 오히려 배제되는 것이 가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선택하면 노이즈는 더이상 노이즈가 아니다”

권력의 전복은 또 다른 사유로 이어졌다. 박 작가는 “컴퓨터의 노이즈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며 “아직 인간적인 실수가 살아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가 완전무결해지면 인간은 로봇처럼 진화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챗GPT의 등장으로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인식되던 사고 능력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음이 명확하진 동시대에, 박종규의 설명은 일종의 경고처럼도 다가온다.

시각화된 노이즈엔 소리가 없다. 노이즈를 포착한 그 순간을 정지시켜 영원성을 부여한다. 노이즈들을 그린 작업들은 ‘수직적 시간’ 시리즈라고 이름을 붙였다. 작가는 “일상적 시간을 수평적 시간이라고 한다면 예술 경험으로 일상적 시간이 바뀌는 순간을 수직적 시간이라고 봤다”고 말한다. 세계를 관통하는 어떤 원리나 진리가 피안의 저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 주체인 우리 내면에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깨달음의 순간은 예상치 못할 때 찾아온다. 2022년 2월 대구 동성로의 한 전광판에 영상 작품 ‘수직적 시간’을 상영했을 때, 갑자기 노이즈가 발생해 흑백이어야 하던 모래 폭풍 장면이 분홍색으로 바뀌었다. 흙 모래는 만개한 벚꽃과 진달래를 연상시켰다. 그는 이를 두고 “완벽한 테크놀로지로 향해가는 우리에게 노이즈야 말로 휴머니즘의 보루”라고 해석했다.

최근 그는 회화의 평면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목재를 CNC커팅으로 잘라 그 위에 캔버스를 덧입혔다. 비뚤어진 캔버스는 입체도 평면도 아닌 그 중간 어딘 가에 위치한다. 회화가 평면 위에서 벌어지는 게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뒤집기 위한 시도다.

박종규 작가는 프랑스 현대미술작가인 클로드 비알라(87)의 제자다. 비알라는 캔버스 없는 회화를 추구하며, 회화의 본질이 평면성이라는 주장에 문제를 제기해 왔다. 박종규 역시 회화도 입체 예술일 수 있음을 넌지시 지적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진명 미술비평가는 “박종규는 인간과 테크놀로지 관계에 관한 철학적 사유로써 추상 회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고 말한다. 전시는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에서 4월 29일까지 이어진다.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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