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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시간만 파산’ SVB,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SVB사태]
골드만삭스, 210억달러 ASF 매각 조언
18억달러 손실 실현에 신용등급 강등 악재
ASF 직접 인수해 장부 차익 남겨 ‘모럴해저드’
40년 간 거래 VC, 투자 기업에 예금 인출 부추겨
[신화]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설립 40년이나 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자금 위기를 공표한지 단 36시간 만에 초고속으로 파산한 배경에는 초대형 투자은행(IB)의 잘못된 자금 확보 자문과 SVB의 오랜 고객이었던 벤처캐피탈리스트(VC)의 배신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VB의 파산을 촉발한 210억달러(27조 5415억원) 규모의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 매각 건에 관여한 IB 관계자와 변호사, 투자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골드만삭스의 잘못된 자문이 SVB의 파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SVB 경영진이 골드만 삭스에 자문을 구한 것은 지난달 말이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저금리 시대에 매입한 미 국채 등 안전자산의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었던 때다.

골드만 삭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부가치 239억7000만달러의 ASF 포트폴리오를 약 210억달러에 매각하는 대신 17억 5000만달러에 달하는 세후 손실을 충당하기 위해 사모펀드로부터 22억5000만달러 규모의 증자를 단행하고 벤처캐피탈 제너럴애틀랜틱(GA)로부터 5억달러를 투자 받을 것을 자문했다.

지난 7일 SVB는 골드만삭스의 자문 대로 ASF 포트폴리오 매각과 증자 계획을 공시했다. 이러한 발표는 시장에서 SVB의 자금 사정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신호를 줬다. CNN 보도대로라면 내부 직원들조차 이같은 결정에 대해 ‘바보같은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시간외 거래에서 SVB파이낸셜그룹 주가는 8% 하락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8일 주식시장이 문을 연지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또다른 은행인 실버게이트 캐피털이 예금 고갈로 영업을 중단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오후 8시에는 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SVB은행에 대한 신용등급 1단계 강등을 발표했다.

[EPA]

골드만 삭스는 이미 SVB가 ASF 포트폴리오의 손실을 실현할 경우,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같은 결정이 뱅크런을 불러올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9일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SVB 주가는 폭락했고 고객들은 순식간에 420억달러(55조원)의 예금을 인출했다. 결국 캘리포니아 주 금융보호혁신국은 10일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임명했다.

WSJ는 “골드만삭스는 악재가 연이어 닥칠 경우 신뢰의 위기를 촉발할 수 있고 그 위기는 은행은 빠르게 몰락 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억만장자와 권력가들에게 합병을 주선하고 기업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 다양한 재정적 상황에 대해 창의적인 솔루션을 고안했지만 SVB에게 그들의 조언은 거대한 비용으로 돌아왔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SVB의 ASF 포트폴리오를 헐값에 인수해 18억달러의 장부 상 이득을 고스란히 취한 것이 바로 골드만 삭스였다는 점은 고객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IB의 책무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불러왔다.

지난 40년 간 SVB의 돈을 빌려 스타트업 투자에 투입했던 실리콘밸리의 VC들 역시 SVB의 몰락을 부추겼다.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SVB의 공시 직후 많은 VC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스타트업들에게 문제가 있는 은행으로부터 예금을 회수하라고 조언했다. 에릭반 허슬펀드 투자자는 공개적으로 SVB에서 현금을 인출하라는 트윗을 게재했다가 삭제했다.

이같은 행위에 대해 VC업계을 또다른 투자자들은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함께해온 파트너를 패닉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블룸버그는 “같은 회사에 투자하고 같은 트렌드를 따르는 VC업계가 이토록 분열된 것은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후 VC업계는 입을 모아 연방 정부가 SVB 구제에 나서야 한다는 서한을 발송하며 규제당국의 개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케발 데사이 투자자는 “어제 투자금 회수를 초래한 VC들이 오늘에 와서 정부의 구제금융을 요구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마이클 애링턴 애링턴캐피털 설립자도 “대부분의 자본가들이 자신의 돈을 모두 잃었다고 생각하면 급격한 사회주의자로 돌변한다”고 꼬집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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