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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량의 현장에서] 술값이몽(異夢)

통장 잔고를 보면 한숨 나오는 사람이 요새 한둘이 아니다. 경제불황에 정부도 세금이 적게 들어와 울상이다. 올해 1월 국세만 해도 지난해 동월 대비 7조원이 덜 걷혔다. 1월 기준 역대 최대 감소액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늘어난 세수가 있다, 뭘까. 답은 ‘주세(酒稅)’다. 술에 붙는 세금의 세수는 1000억원이 늘었다.

주세는 국세다. 납세의무가 주조업자에게 있지만 실제 소비자가 그 가격을 부담하게 되는 ‘간접세’다. 정부가 한 해 거둬들이는 주세는 2015년 이후 3조원대 수준이다. 지난해 외교부 예산이 3조53억원이었다. 주세는 전체 국세 수입 중 1% 정도로, 과도한 술 소비도 규제와 공공재원 확보를 위한 정책 수단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주세가 요즘 골칫거리다. 추경호 부총리는 9일 맥주와 탁주의 현행 주세 과세 방식에 대해 부적절하다며 폐지를 시사했다. 맥주와 탁주의 주세는 2020년 종량제로 징수 방식이 바뀌면서 전년도 물가와 ‘연동’하되 물가상승률의 70~130% 내에서 정부가 정한다. 그는 “주세를 몇 원 올리면 시장에선 몇백 원이 오른다”며 “일정 시점 국회에서 세액을 정해주면 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주세 인상의 나비효과가 심하다며 ‘주세 인상시기’와 ‘세율 결정 주체’를 국회의 몫으로 돌렸다.

주세는 정부·주류업체·소비자·판매자의 이해가 모두 걸려 있다. 얼핏 보면 술값 인상 요인이 줄어 좋아 보인다. 주세가 0.5% 인상된 2021년과 2.49% 오른 지난해의 맥주 출고가는 각각 평균 1.36%, 8% 올랐다. 그러나 세금만 오른 게 아닌 것이 문제다. 파는 입장에서는 ‘다 올랐는데 세금마저 오른 것’이라고 하소연한다. 한 주류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캔값 같은 생산비용이 올라 정당하게 가격을 올려도 주세 때문에 편승해 올린다는 오해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식당은 어떤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마트 맥줏값이 5.9% 오를 때 식당은 10.5% 인상됐다. 식당 주인들의 이기심이 문제인가. 자영업자의 커뮤니티를 보면 이들도 술값에 대한 고심이 깊다. 파는 가격은 주인 마음이라 해도 상황은 제각각이다. 고물가 속에서 오히려 술값을 내려 손님을 끄는 이도, 올린 술값으로 매출 공백을 채우는 이도, 올려도 손님이 오니까 인상하는 이도 있다.

여기에 이달 초부터 일부 대형 식품기업은 가격 인상 랠리를 멈추고 “가격 동결”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물가 안정 요구에 의한 것이라는 평이 우세하다. 한 맥주회사는 올해 인상된 주세가 가격에 반영이 안 되면 영업이익이 450억원가량 줄 것으로 예상한다. 내년부터 주세가 고정되면 고물가 상황에서 정부의 실질 세수까지 줄어들 수 있다. 2015년 이후 고정돼 있는 담배세와 더불어 ‘술까지 권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주세의 물가연동제가 폐지돼도, 술 세금이 고정돼도 계속 물가가 잡히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 식당과 주류업체는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결국 본질은 물가다. 주세보다 물가인 이유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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