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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상의 구제금융 비판에 책임 규명으로 ‘민심달래기’
SVB 무제한 예보한도 논란
연준, SVB 경영진 고강도 조사
법무부도 파산전 지분매각 수사
은행관련 규제강화 등도 재논의

미국 당국이 실리콘밸리은행(SVB) 예금보호한도를 무제한으로 올리면서 사실상 구제금융을 한 것이란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금융계의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를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1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전날 SVB 지원을 발표하면서 세금이 낭비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기억 때문이라고 전했다. 당시 대형은행과 그 경영진 책임을 국민 혈세로 메우면서 큰 반발을 불러왔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때문에 금융 당국은 ‘구제금융’(bailout)이란 표현 자체의 언급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 동시에 SVB 모기업 경영진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에 들어갔다.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를 명백히 가려 민심을 달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연준이 SVB가 작년 한해 동안 최고위험책임자(CRO)가 부재했던 정황을 포착, 이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로라 이즈리에타 전 SVB CRO는 공식적으로 작년 10월에 회사를 떠났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인 4월부터 사실상 업무에서 벗어나 있었다. 또 퇴직금으로 약 46만달러(6억원)를 챙겼다.

미국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도 SVB 파산에 관한 조사에 각각 나섰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통상 검찰과 규제당국은 금융기관이나 상장회사가 예상하지 못한 대규모 손실을 낼 경우 조사를 개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매체는 전했다.

법무부 조사에는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의 사기 사건 전담 검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SVB 모회사인 SVB 파이낸셜 경영진이 파산 전 지분을 매각한 사실을 집중적으로 들여다 볼 전망이다.

SVB 측 공시 자료에 따르면 그레그 베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7일 SVB 파이낸셜 주식 1만2451주에 대한 옵션을 행사한 뒤 곧바로 매각해 230만달러(약 30억원)의 순이익을 챙겼다. 대니얼 벡 최고재무책임자(CFO)도 같은 날 보유 지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0여주를 57만5000달러(약 7억5000만원)에 판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내부자 지분 매각 계획을 30일 전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한 SEC 법규에 따라 진행한 것이지만, SEC는 최근 이 기간을 90일로 늘려 베커 회장 등이 보유 주식을 팔았던 2월 27일부터 새 규정을 시행한 바 있다.

아울러 회사 측이 무너지기 전 고객과 투자자들에게 금융 위험 가능성과 사업상 불확실성에 대해 정확하게 알렸는지도 당국의 조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규제당국이 발 빠르게 수사를 진행하는 배경에는 구제금융 논란이 정치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잘못을 저지른 은행 경영진은 살아남고 평범한 소시민들이 직장과 집을 잃는 ‘대마불사’로 비화된 전례가 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졌고, 오바마 행정부는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이미 시장과 다수의 전문가들은 납세자와 다른 은행 예금주들에게 책임전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있다.

피터 콘티 브라운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이번 조치는 파산한 두 은행의 무보험 예금자들에 대한 구제금융과 같다”며 “명백하게 25만달러 이상을 은행 계좌에 보관한 사람들과 기업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고 WSJ와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연준이 SVB 외에 다른 은행들에서도 고객들이 온전히 예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새로운 대출 수단(BTFP)을 만들고, 재무부가 연준의 대출로 인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250억달러(약 32조6500억원)를 지원하는 것도 문제삼았다. 콘티 교수는 “재무부는 연준의 대출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으로 250억 달러를 제공함으로써 은행들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며 “이것이 바로 납세자의 돈”이라고 강조했다.

애런 클라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도 “궁극적으로 더 높은 은행 거래 수수료, 더 낮은 예금 금리 등으로 다른 은행 고객들에게 비용이 전가될 것”이라며 “미국 대형 은행에 예금을 넣은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은행의 무보험예금자와 테크회사와 암호화폐업체를 구제하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완화된 금융 규제를 언급하면서 의회와 금융 당국에 은행 관련 규제를 강화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2018년 의회가 은행의 건전성을 심사하는 스트레스테스트를 매년 받아야 하는 자산규모를 500억 달러에서 2500억 달러로 대폭 상향 조정하면서 SVB도 규제 완화의 혜택을 받았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이 같은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의회에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민경 기자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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