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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색코뿔소’는 고금리였다…높아진 침체 위협
한 시민이 10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 있는 실리콘밸리 은행 본사에서 폐쇄 공지를 읽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강승연·김광우 기자] ‘회색코뿔소’(개연성이 높고 파급력이 크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위험)는 결국 고금리였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초고속 파산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밟았던 긴축 패달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실물경제로 나타나는 신호라는 것이다.

SVB가 단 36시간 동안 무려 56조원의 돈이 무더기로 빠져나가면서 무너졌던 결정적인 배경에는 ‘고금리’가 있었다. 저금리 호황에 돈잔치를 벌였던 스타트업들이 맡긴 예수금을 채권에 투자했는데 고금리로 인해 장부상 손실을 보면서 채권을 매각할 수 밖에 없었다. 누적된 금리인상의 영향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지난해 보유 채권으로 장부상 손실을 본 국내 보험회사들이 유동성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채권을 내거 내다팔았던 경험과 유사한 셈이다.

전문가들이 SVB 파산 자체 보다는 시차를 두고 나올 고금리의 영향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국내에선 고금리에 따른 경기침체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SVB 파산 이후 국내 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도 “문제는 경기침체다. 올해 한국 경기가 내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금리에 따른 경기침체가 금융시스템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19에 풀린 돈을 투자한 미국 은행과 달리 국내 금융사들은 대출이 늘었다. 미 은행은 고금리로 보유자산(채권) 값이 하락해 타격을 입었지만, 은행 뿐 아니라 보험, 카드, 저축은행 등 전방위적으로 대출이 늘어난 한국 금융사는 경기가 악화되면 더 위험하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국내 금융사들은 이번 SVB 사태가 국내 시장에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14일 오전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현재까지는 국내 금융시장 영향이 제한적”이라며 국내 금융기관은 자산·부채구조나 유동성이 양호하고 관련 익스포저도 크지 않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문제는 부진한 경기 회복이다. 최우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비는 지난해 4분기부터 전월 대비 계속 마이너스 국면이다. 경기 부진,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1월 경상수지·무역수지가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성장을 밀어올릴 이슈도 마땅치 않다. 최 교수는 “정부는 중국 리오프닝에 따른 성장을 기대하고 있지만, 반도체 공급에 있어서 중간재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가 중국 수요가 나타난다고 기대만큼 확장적일지 의문이 든다”면서 “물가상승 이슈도 깔끔하게 떨어지고 끝나지 않을 것 같고 여기서 오는 불확실성은 쉽게 사라질 수 없기 때문에 하반기 경기 반등을 체감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금융규제 당국의 예금자 보호 조치로 예금 접근이 가능해진 13일 오전(현지시간) 고객들이 예금 인출을 위해 SVB 본사 정문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

금융권에서는 이에 따라 금융상품 수요 위축 및 소비 축소 현상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저출생·고령화, 1인가구 증가 등 사회·인구구조 변화의 충격에 취약한 생명보험사들은 우려가 더 크다.

조영현 보험연구원 금융시장분석실장은 “지난해 말 금리가 급등했을 때 저축성보험 해지가 늘어나며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긴 했지만, 최근엔 금리가 비교적 안정됐고 보험사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장기금리도 크게 상승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현 시점에서는 경기 문제가 더 크다. 보험 수요가 위축되고 해약률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생보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해약환급금(일반계정 기준)은 38조5299억원으로, 연간 기준으론 40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 규모로 증가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신계약액은 23조2284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8.9% 감소했다.

카드사나 저축은행 등 다른 2금융권에서도 경기침체의 그림자가 짙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업권 특성상 중·저신용 차주가 많은 데다, 그간 저금리 상황에서 크게 불어난 가계부채의 부실 위험이 커질 수 있어서다. 채권시장의 불확실성 탓에 조달비용에 대한 불안심리도 여전하다.

작년 말 기준 우리카드의 연체율은 1.21%로 전분기 대비 0.29%포인트 상승했고, 하나카드(0.21%포인트), 삼성카드(0.20%포인트), 신한카드(0.18%포인트) 등 다른 카드사들도 20bp(1bp=0.01%포인트) 안팎으로 연체율이 올라갔다.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평균 연체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3%로, 6개월 전보다 0.4%포인트 상승했다. 여기에 대형 대부업체의 연체율은 지난해 말 두자릿수로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와 금융당국은 무엇보다 금융시장 위험 증가를 경계하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SVB사태로 당장 큰 폭의 금리 인상을 못하더라도 물가가 올라 또다시 금리를 올리면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고, 문제가 심각해져서 지역은행이나 중소은행이 무너지면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또 확대될 수 있다”고 전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SVB 사태가 국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론 보이진 않지만, 불확실성이 커져 자금조달이 경색될 가능성은 있다. 은행 등 해외차입이 필요한 금융기관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자금조달 방안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spa@heraldcorp.com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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