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바퀴벌레는 한 마리뿐인 적이 없었다"…SVB發 혼돈의 자본시장 [투자360]
미국의 벤처캐피털(VC)·기술 스타트업 전문은행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사태가 글로벌 자본시장의 향방을 짐작하기 어려운 쪽으로 이끌고 있다. 투자자 사이에서도 금·미 국채 등 ‘안전자산’과 주식·가장자산 등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모양새다.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파크애비뉴에 있는 SVB 지점 앞을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바퀴벌레(고강도 긴축으로 인한 부작용)는 한 마리뿐인 적이 없었다. 사모펀드(PEF)와 사모부채펀드(PDF)들이 지나치게 높은 밸류에이션에 투자한 만큼 기준으로 삼았던 담보가치가 나오지 않으면 마진콜을 당하고 경제에 악순환을 일으킬 것이다.”

셰어드캐피털의 빌 블래인이 미국의 벤처캐피털(VC)·기술 스타트업 전문은행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사태를 두고 한 말이다. 이번 위기의 핵심이 과잉 유동성에 따른 ‘버블(거품)’인 만큼 지방은행 몇 개를 솎아낸다고 금융 시스템 전반의 문제가 치유되긴 힘들다는 것이 블래인의 진단이다.

SVB 파산 사태가 글로벌 자본시장의 향방을 짐작하기 어려운 쪽으로 이끌고 있다. 시스템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금과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에 대한 쏠림 현상이 빚어지는 와중에도 글로벌 경제를 짓눌러온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매파(긴축 선호)’적 정책이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술주(株)를 중심으로 증시가 반등하고 가상자산 가격이 오르는 등 ‘위험자산’ 선호 현상도 동시에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커진 탓에 향후 국내 증시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게 될지를 두고 전문가들의 셈법 역시 복잡한 상황이다.

金·美 국채 등 안전자산 쏠림 심화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제 금 시세가 급등했고, 미 국채금리는 역대급 속도로 하강 곡선을 그렸다. SVB와 뒤이어 파산한 시그니처은행의 예금주를 보호하고 다른 은행들의 ‘뱅크런’을 막기 위한 미 연방당국의 조기 진화로 초반 위기를 넘겼다는 평가에도 자본시장 참가자들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모양새다.

13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금은 온스당 2.4% 오른 1913.5달러로, 1900달러 선을 재돌파했다. SVB 파산 전인 9일(1830.89달러)과 비교하면 2거래일 만에 4.5%나 오른 것이다.

이날 2년물 미 국채금리도 전거래일(4.5880%) 대비 0.5722%포인트 급락한 4.0158%로, 1987년 10월 이후 최대 규모의 일간 낙폭을 기록했다. 불과 사흘 전(8일, 5.0660%) 5% 선을 넘어섰던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시장금리의 벤치마크인 10년물 미 국채금리도 3.5449%까지 떨어졌다.

월가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거의 2포인트 오른 26.69로, 지난해 말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장중엔 28.7을 돌파하며 최근 5개월 새 최고치를 보이기도 했다.

고개 든 3월 FOMC ‘금리 동결’ 가능성에 美 기술株 ↑

자산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진 상황 속에서도 대표적인 ‘위험자산’으로 꼽히는 주식시장은 선방했고, 심지어 가상자산은 상승 곡선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였다.

13일(현지시간) 미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각각 전장 대비 0.28%, 0.15% 내린 31,819.14, 3,855.76으로 거래를 마쳤다.

지역 중소은행들은 물론 대형 금융사들까지 두 자릿수 퍼센트 급락세를 보였음에도 일각에서 우려했던 ‘블랙먼데이(Black Monday·월요일 증시 폭락)’ 사태를 피했다는 점에서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오히려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지수는 0.45% 오른 11,188.84에 장을 마감하기도 했다. SVB 파산 사태가 급격한 금리 인상 정책의 대가란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연준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기존에 유력했던 ‘빅스텝(한 번에 0.5%포인트 금리 인상)’ 대신 ‘베이비스텝(한 번에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심지어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가능성이 ‘제로(0)’로 평가됐던 금리 동결 확률이 32.1%까지 올랐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까지도 3월 금리 동결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단기 ‘기대감’ vs 중·장기 ‘리스크’…外人 수급 놓고도 팽팽

전혀 상반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글로벌 자본시장의 흐름에 향후 국내 증시의 흐름에 대한 전망 역시 엇갈린다.

국내 증권가에선 SVB 사태가 국내 증시에 결과적으로 긍정적일 수 있다는 평가에 대한 목소리가 더 큰 상황이다. 한국과 미국 등 각국 금융당국의 신속한 대응 덕분에 SVB 사태의 악영향이 국한될 것이란 예측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내 증시를 압박했던 미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가 완화될 가능성도 호재라는 것이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IT 대형주, 경기 민감주, 엔터주를 중심으로 반등 기미를 보이고 있고, 금융주 역시 약세 전망과 달리 선방 중”이라며 “SVB 사태가 긴축 부담 완화로 해석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미국 정부의 신속한 조치와 긴축 강도 완화에 대한 기대감 덕분에 시장이 비교적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제2, 제3의 SVB 사태 발생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은 국내 증시엔 위험 요소란 분석도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 연준이 금리 인상폭을 완화하거나 최종 금리 수준을 예상보다 낮출 수는 있지만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인해 시장이 기대하는 연내 ‘피봇(pivot·기준금리 인하)’을 단행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며 “장기간 고금리 체제가 이어질 것이며, 이럴 경우 추가적인 은행 파산 사태 등으로 인한 금융 시스템 전반의 리스크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고 평가했다.

이 밖에도 원/달러 환율이 전날 22.4원이나 급락하고, 14일에도 1300원 초반 흐름을 이어가는 등 ‘약(弱)달러’ 가능성이 커진 것도 외국인 투자자 유입 가능성을 키워 국내 증시엔 호재란 분석과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3월 들어 두드러진 ‘셀 코리아(Sell Korea·국내 주식 순매도)’ 현상이 강화될 것이란 예측이 맞부딪치는 양상이다.

realbighead@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