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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흰 바지에 핏자국’ 그대로...‘월경 혈’ 노출한 女의원
케냐의 글로리아 오워바 상원의원이 지난 달 14일 붉은 자국이 묻은 하얀색 바지 정장을 입고 의회에 출근하고 있다. [글로리아 오워바 트위터 캡처]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케냐의 한 여성 상원의원이 흰 바지에 붉은 월경 혈을 그대로 묻힌 채 의회에 나타나는 파격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월경권 보장을 위한 것인데, 일각에서는 외설적이라며 비방하는 이들도 있다.

AP통신은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케냐의 여성 상원의원 글로리아 오워바(37)의 활동을 소개했다.

오워바 의원은 지난 달 14일(현지시간) 흰색 정장 바지 엉덩이에 붉은 자국을 묻힌 채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의회에 나타났다. 그날 오워바 의원은 국회 출석을 거부당했다.

의회 측은 '복장 규정 위반'을 문제 삼았지만, 월경혈로 추정되는 흔적에 대한 아프리카 특유의 거부감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라고 AP는 전했다.

그날 오워바 의원은 의회는 떠나면서도 옷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한 학교를 방문해 생리대 무료 배포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여성들은 내 바지를 가려주는 등 도와주려고 했는데 이런 선의의 행동조차 반갑지 않았다”며 “우리는 월경혈은 절대 남에게 보여서는 안된다고 배웠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도 바지에 묻은 걸 알고 있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니 갈아입지 않고 그냥 왔다”며 “월경(생리) 얼룩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오워바 의원은 '월경권 보장'을 위한 법안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정치가다.

월경권이란 모든 여성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월경을 할 수 있는 권리다. 월경으로 인해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고, 월경을 죄악시하거나 금기시하는 사회적 인식을 타파하자는 개념도 포함된다.

그가 월경권 보장에 적극 나선 이유는 지난 2019년 케냐의 14세 소녀 자살 사건때문이다.

당시 소녀는 학교에서 첫 월경을 경험했고, 교복에 묻은 피를 본 학교 교사가 소녀를 “더럽다”고 비난하며 교실에서 내쫓았다. 극도의 수치심을 느낀 소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녀의 어머니는 “첫 월경이라서 생리대를 준비해가지 못했다”고 눈물을 터뜨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워바 의원은 “월경혈을 흘리고, 남에게 보이는 것은 결코 범죄가 아니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여성의 월경을 죄악시하고 월경혈이 드러내는 걸 수치스러운 일이라 가르치지만, 정작 케냐 여성의 절반은 일회용 생리대를 구매조차 하지 못한다.

2020년 케냐 보건부 통계에 따르면, 도시 지역 여성의 65%, 농촌 지역 여성의 46%만이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는 인플레이션으로 생리대 가격이 2배로 뛰어올라 구매자가 더욱 줄었다.

결국 아프리카 여학생 10명 중 1명은 월경 기간마다 결석을 하고 있다. 생리대를 구하기 어려운데, 혹시 겉옷에 피가 묻을 경우 비난을 받게 되니 아예 결석을 하는 것이다.

케냐 정부도 해결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2004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생리대 등 위생품 수입에 대한 세금을 삭감하고, 2017년에는 저소득층에 생리대 무료 배급을 위해 수백만 달러를 투입했다. 하지만 이후 예산이 점점 줄고, 일부 지역에선 생리대를 빼돌리는 등 부정이 발생해 혜택을 본 여학생은 극소수였다.

이에 오워바 의원은 케냐 전역의 여학생에게 생리대를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정부 자금 지원을 늘리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월경권을 위한 최전선에 선 내가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며 “10대 아들에게도 월경하는 여학생에게 수치심을 주지 말라고 경고했다. 여성들은 과감하고 뻔뻔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월경 혈을 묻히고 나타난 오워바 의원의 행보에 온라인에서는 악의적인 비방글이 쏟아졌다.

한 남성의원은 “아내와 딸도 월경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지 않고 개인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여성의원은 “너무 외설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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