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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라리 소아청소년과 폐과하겠다”
임현택 소청과 의사회장 29일 기자회견

“도저히 병원을 운영할 수 없으니... 국민께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9일 소아청소년과 의사회에 따르면 의사회는 이달 29일 서울시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과목 폐과’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임현택(사진) 소청과 의사회장은 전날 헤럴드경제와 전화인터뷰에서 “그저 ‘제스처’를 취하는 게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임 회장은 앞서 지난 2019년에도 폐과를 언급한 바 있다.

임 회장은 “장시간에 걸친 긴급 이사회를 진행한 끝에 더는 보건복지부와 질병청, 기획재정부가 소청과 의사들에게 미래가 있다고 보여주는 실질적인 대책들을 내놓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부는 34개인 달빛어린이병원을 100개로 늘리는 등을 담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미 운영 중인 34개 달빛어린이병원조차 소청과 전문의가 없는 곳이 수두룩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인턴 의사 중에 소청과 전문의가 되려고 하는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올 상반기 전국 대학병원 38곳은 소청과 레지던트(전공의)를 한 명도 뽑지 못했다.

그는 ‘폐과’의 의미에 대해 “아이들 건강과 관련 없는, 전혀 다른 일을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설명하는 동안 임 회장은 수차례 목이 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의사회는 소아청소년 진료가 아닌 전혀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도 충분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철저히 교육하고 자신감이 충만해질 때 소청과 간판을 내리고 다른 분야 간판을 올려서 일을 하도록 단계적으로 일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의사회는 현재 홈페이지 ‘페드넷’을 통해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전국의 소청과 진료 가능 병원은 지난해 8월 말 기준, 3247개소다. 지난 5년간 소청과 617곳이 새로 개업했고, 662곳이 폐업했다.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된 2020년, 2021년 두 해에만 소청과 78곳이 문을 닫았다. 임 회장은 “지난 수년간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냐”고 반문했다. 그는 “당장 오늘(6일) 질병청은 생후 2~6개월 영아에 대한 로타바이러스(장염)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포함시켰다”면서 “이렇게 되면 동네 소청과에서 백신 접종으로 얻는 수익은 지금의 40%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는 거짓이 아니다.

질병청에 따르면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포함되는 백신의 약값은 조달청 공개 입찰을 통해 ‘조달가’로 결정이 되고, 접종수당(시행비)은 건당 ‘1만9610원’으로 정해져 있다. 국가필수예방접종이 아닌 백신은 각 병원에서 제약회사와 약값을 계약하고 시행비도 시장가격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로타바이러스 백신처럼 새로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포함되면 약값 마진을 포기해야 하고 지금껏 시장가격에 따라 받던 시행비를 받지 못한다.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이 고가의 의료장비나 미용 시술을 통해 ‘비급여’ 수익을 내는 것과 달리 ‘생명’을 다루는 소청과의 거의 유일한 ‘비급여’가 백신인 탓에 수익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포함시킨다면 ‘접종률’이 높아져 손실을 메울 수 있다고도 주장하지만 로타바이러스는 국가필수예방접종이 아닐 때에도 접종률이 이미 80%대다. 동네 소청과 폐업이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다. 실제 지난해 요양급여비용은 18조771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20% 증가했다. 이 중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연평균 진료비가 감소한 유일한 곳이 소청과다. 수치화해도 2021년 소청과의 진료비 규모는 5134억원으로, 최하위다.

지난 2021년 자신이 원장으로 있던 소청과를 폐업한 후 현재 일반의로 일하고 있는 A씨는 “소청과 의사들이 경영난을 호소하면 일각에선 ‘의사들이 돈벌이를 위해 비싼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으로 전환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여론을 호도한다”며 “어떤 의사가 더 많은 국민이 백신을 맞는 것에 반대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국가필수예방접종 전환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동네 소아과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17년 영유아 필수 예방접종 시행에 들어가는 의료인 임금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당시에도 시행비를 최소 2만6923원은 지급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A씨 같은 소청과 전문의들은 의사회의 ‘폐과’ 결정에 지지하고 있다. 또 다른 개원의 B씨는 “4년간 많은 것을 포기하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과정을 밟았다”면서 “힘들게 소청과 전문의가 됐지만 오히려 ‘일반의’로 간판을 달아야만 병원을 유지할 수 있다면 전문의를 포기하고 ‘폐과’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고 말했다. 김용훈 기자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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