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취리히 증권거래소(SIX) 모습.[로이터]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중국 기업들이 기업공개(IPO)를 위해 스위스 증시로 몰리고 있다. 미국·영국 등이 중국 기업에 별도의 회계감사 자료를 요구하는 등 문턱을 높이자 스위스가 대체지로 부상하면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7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기업 9곳이 스위스 취리히 증권거래소(SIX)에 상장해 총 32억달러(약 4조2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중국 기업들이 미국 뉴욕 증시에서 모금한 4억7000만달러(약 6200억원)의 7배에 달하는 규모다.

올초엔 리튬 배터리 장비를 제조하는 중국의 저장 항커 테크놀로지 주식회사가 스위스 증시에 상장, 1억7200만달러를 조달한 바 있다.

SIX의 프라이머리마켓(발행시장) 책임자인 발레리아 체카렐리는 “스위스 당국은 스위스 감사 감독법에 따라 중국 기업을 다른 외국 기업과 동일하게 취급한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을 겨냥한 특별한 조건이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중국 상장이 급증한 것과 관련해 그는 “스위스가 금융 중심지로서 기업들이 자본을 조달하기에 매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추가로 십 여곳이 넘는 중국 기업이 지난해 설치된 상하이·선전 증시와 취리히 증시간의 주식·자금 거래 시스템 통로를 사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기업들이 스위스 증시로 몰려가는 이유는 미중간 정치·경제적 갈등이 심화되면서다. 미국은 중국 기업을 겨냥해 회계감사 자료 제출 의무화 등 규제를 강화했다. 이에 미 증시에서 상장 폐지로까지 내몰린 중국 기업들이 스위스 등 다른나라 증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만 중국 기업들의 스위스 증시 편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스위스 증시와 경쟁하는 유럽의 한 증권거래소 고위 임원은 “이대로라면 스위스가 중국시장이 될 위험이 매우 크다”면서 “상장 계획을 발표한 중국 기업들이 모두 진출할 경우 이들이 조달할 자금 규모가 지난해 유럽 전체 IPO 규모를 넘어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