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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용으로 만든 美반도체법...경제적 목적 달성 실패 ‘경고음’
“美자국산업 육성 목표에 되레 해” 지적
동맹국 희생 강요...美 전략목표도 침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7일(현지시간) 뉴욕 주 시라큐스를 방문해 반도체 제조사 마이크론의 사옥에서 ‘반도체산업지원법’의 성과를 강조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받는 대신 중국에 대한 투자를 멈추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반도체지원법’ 세부조항을 공개하며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는 “해도 너무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이 경제적 목표 뿐 아니라 국내 정치 이슈 등 너무 많은 목표를 내걸면서 정작 정책 성공의 가능성을 위태롭게 한다는 경고음도 나온다. 미국 중심의 동맹체제 강화라는 전략적 목적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 속에 반도체법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주 반도체지원법의 보조금 신청 요건을 발표했다.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총 390억달러(약 51조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신 반도체 시설 접근 허용, 예상 초과 이익 공유, 10년간 중국 투자 금지 같은 까다로운 조건이 달렸다. 당장 미국 투자를 해야 하는 한국과 대만 기업 입장에서 독소조항이 한둘이 아니다.

이에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대만 반도체 업계는 “미국은 인건비 등 반도체 생산 비용이 다른 나라보다 비싸기 때문에 보조금이 필수적”이라며 “너무 까다로운 조건에 도대체 투자를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헷갈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미 관계를 의식해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한국 반도체 업계도 속이 끓고 있다.

수혜자인 미국 내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미 정가는 바이든 정부가 표를 의식해 보육, 노동, 고용 기준 등 민주당의 다양한 진보 정책을 끼워 넣어 법이 누더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2024년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목적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일 민주당 하원의원 연찬회에서 반도체지원법을 주요 입법 성과로 자랑하며 “이 법의 시행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고 미국 국민이 투자 혜택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분과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이 보조금 중심의 산업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는 것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이 중간선거 참패를 막은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업체 네비게이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등록 유권자의 65%가 IRA 법을 지지했다. 특히 민주당원의 64%,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63%가 IRA의 통과로 인해 투표를 해야 할 동기를 더 강하게 느꼈다고 밝혔다.

하지만 IRA나 반도체지원법처럼 정치적 고려가 포함된 산업정책이 결국엔 미국에 독이 될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 “미국 반도체법이 크리스마스 트리가 됐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미국 반도체법이 너무 많은 목표를 달성하려다 도리어 이도저도 안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반도체 산업 육성이라는 초기 정책 목표에 노동, 인력, 보육, 지자체, 내수경기 등 다양한 정책 과정을 추가해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의미다. FT는 “모든 이익 단체에 ‘싸구려 선물’을 뿌려주는 ‘크리스마스 트리’ 같다”고 표현했다.

신문은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10년 간 중국과 기술협력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금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에 쓰지 못하게 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보육센터를 갖추도록 하는 조건을 포함했다고 거론하며 “백악관이 지나치게 많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 안보를 내세워 산업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법이 오히려 미국내 산업 육성을 달성하는데 해가 될 것이며 실패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포린폴리시(FP)는 “중국 칭화유니그룹은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도 세계 정복자가 되기는 커녕, 파산에 이르렀고 더 많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면서 “수십만명을 고용하고 지역 경제가 의존하는 반도체 팹 공장의 경우 경쟁력이 없더라도 문을 닫을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보조금을 끊임없이 제공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도체법이 대만이나 유럽, 일본과 한국 등 동맹국의 희생을 요구하는 만큼, 중국의 패권 도전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적 목표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미국의 동맹국들은 기업들의 투자를 확보하기 위해 보조금 경쟁에 나설 수 밖에 없고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용이 더 많이 들게 될 것”이라며 “미국 정책 입안자들이 여러 부문에 있어 전략적 투자를 고려해야 하는 시기에 이는 낭비”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정부가 동맹국을 희생시키면 미국 내 소비자에게 반도체 공급을 보장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위기를 연장시키고 세계 경제에 더 큰 해를 끼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원호연 기자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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