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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 시스템의 실패”…57명 사망한 그리스 열차사고, 막을 순 없었나
EU, 10년간 9000억원 투입했으나 헛수고
철도 노조 수차례 항의에도 국가는 요지부동
지난달 28일 자정 직전 그리스에서 두 열차가 같은 선로로 마주보고 달리다 라리사역 인근에서 정면 충돌해 최소 57명이 숨진 참사가 발생했다.[NYT]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대부분의 사망자는 어린 학생들로, 기차의 앞부분인 식당칸에서 모여 어울리다가 참변을 당했다.”(그리스 열차사고 브리핑 중)

5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영국도로철도청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그리스 철도 시스템이 조사가 진행된 2017년과 2021년 동안 유럽 내 국가 중 가장 위험한 철도로 꼽혔다.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승객은 물론, 철로를 점검하고 보수하는 직원은 물론 기찻길을 건너는 시민들에게도 위험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경제위기를 겪었고 인구 역시 많지 않은 그리스를 철도 투자가 넉넉하기로 유명한 프랑스 같은 나라와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겠으나, 유럽의 옛 동구권인 슬로베니아와 체코와 대비했을 때도 위험수준이 5배나 높다”고 강조했다.

그리스의 철도 시스템은 왜 이렇게나 위험한 상태로 방치돼 끝내 57명이 숨지는 참사를 불러일으켰을까.

가장 큰 이유로 그리스 정부의 안전의식 부재와 현대식 안전 시스템 도입이 무기한 지연된 것이 꼽힌다.

뉴욕타임스(NYT)는 복수의 철도 및 교통 분야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을 인용해 “만약 현대적인 안전 시스템이 제때에, 계획한 대로 마련되었다면 두 열차가 같은 선로를 마주보고 달리다 정면 충돌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의 여타 선진국이었다면 시스템상 당연히 충돌 직전에 경고음이 울리거나 자동 브레이크가 작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물론 가장 EU의 작은 나라인 룩셈부르크 역시 자동 제동 시스템 및 기타 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며, 벨기에는 2025년까지 이 시스템의 전궤도 완전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지난 10년간 7억달러(약 9107억원)의 현대화 자금을 투입해 그리스 철도에도 이같은 제어 시스템을 설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안전시스템의 설치는 지속적으로 지연돼 왔고, 결국 책임 담당자가 작년 그리스 정부의 부당한 일처리를 문제삼으며 사임하고 말았다.

그리스 철도노조가 24시간 파업을 선언하며 폐쇄된 아테네역 모습.[게티이미지]

키리아코스 미조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이번 사고를 “비극적인 인간의 오류”라고 불렀다. 교통부 장관은 철도 안전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불충분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임했다. 여객열차를 잘못된 선로로 보낸 라리사 역장은 과실치사 등 혐의로 체포됐다.

NYT도 “그리스는 단 한 번도 자동화된 안전시스템을 가져본 적이 없으며, 수동으로 선로를 변경할 수 있었던 라리사역은 심지어 기본적인 신호장비 부품이 사라진 채로 운영돼 왔다”고 전했다. 기본적인 부품조차 수급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노조와 안전관계자, 전문가들은 부족한 예산,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문제, 관료적 지연, 계약 분쟁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책임있는 인사들이 잘못을 시인하고 법적 처분을 받게 됐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리스 정부의 총체적인 태만을 완전히 뿌리뽑지 않는 한, 같은 사고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

요제프 도펠바우어 유럽 철도청장은 수년간 그리스의 철도 안전 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실행 계획을 세우고 그리스 당국에 실행 계획에 대한 보고를 요청했지만, 우리의 힘은 제한되어 있었고, 국가 정부가 변화하도록 만들 수 없었다”고 NYT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리스 철도 노조원들도 지난 2016년부터 시스템 부재에 항의해왔고, 심지어는 사건 직전인 2월 초에 대형 참사 가능성을 경고하는 서한까지 당국에 보냈지만 묵살당했다.

한편, 이 사고는 지난달 28일 자정 직전 350명을 싣고 수도 아테네에서 그리스 제2도시인 테살로니키로 가던 여객열차가 테살로니키에서 라리사로 가던 화물열차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여객열차는 같은 선로에서 화물열차가 마주 오는 줄도 모르고 시속 150㎞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여객 열차의 기관부를 포함한 1·2호 객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3호 객차는 탈선했다. 희생자 대다수가 사흘간의 황금연휴를 즐기고 귀향하던 20대 대학생으로, 이들은 기차 앞부분에 해당하는 2호차 식당칸에 타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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