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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 가해·징계불복에 속수무책…학폭 피해자는 고통 연장
본지, 대법원 판결 분석해보니
학폭 불복소송으로 징계 미뤄져
소송과정에서 2차피해도 빈번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김빛나·김영철 기자] 학교폭력 피해자인 초등학교 6학년 A. A는 지난해 자신을 괴롭히는 가해자 B를 학교폭력위원회에 신고했지만 가해자의 불복 소송으로 서면 사과만 받았다. 첫 처분은 1호 ‘서면 사과’와 7호 ‘학급 교체’였다. B 학생 부모는 학폭위 신고가 들어오자마자 변호사를 선임했다. 학폭위 모든 과정에 변호사가 개입했고, 7호 처분이 나오자 행정소송까지 맡아서 진행했다. B는 A와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고, 결국 A는 다른 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아들 사례처럼 가해 학생이 징계를 피하기 위해 사법 제도를 이용하고, 피해 학생은 고통을 겪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2일 헤럴드경제 대법원 판결 열람시스템을 통해 학교폭력 불복 소송 등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가해 학생의 소송으로 징계를 미뤄지는 경우가 잦았다.

가해자의 소송이 길어지면서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고등학생 C는 성폭행 혐의로 학폭위에 회부되어 전학처분 등을 받았다. 하지만 C는 재심과 행정소송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C와 그 가족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등 2차 가해를 가했다. 결국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는 가족들과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갔다. 전학 후에도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C는 지난해 서울고법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학폭위 결정에 불복하는 사례가 느는 이유는 관련 기록이 상급학교 진학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학폭위가 가해자에게 내릴 수 있는 처분은 1호에서 9호까지다. 1~3호 처분은 생활기록부에 기재되지 않는다. 강도 높은 4~8호 처분은 생활기록부에 기재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삭제된다. 9호인 강제 퇴학 처분은 생활기록부에 영원히 남게 된다.

생활기록부에 학폭위 처분이 기재되면 고등학교나 대학 입시에 지장을 받을 것을 우려해 가해자 부모는 각종 소송전을 벌인다. 정순신 변호사도 아들이 강제 전학 처분을 받았지만 재심 청구부터 대법원까지 1년 넘게 행정소송이 이어졌다. 행정소송이 승소할 가능성이 적어도 대입까지 학폭위 징계를 미루는 ‘시간끌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개 시·도교육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가해 학생이 제기한 학교폭력 행정소송 325건 중 승소한 경우는 57건(17.5%)에 불과했다.

문제는 소송과정에 피해자들이 2차 가해 등 각종 피해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학폭위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더 큰 폭력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 중학생 D는 2021년 4월 경기 한 시의 건물 주차장에서 자신을 학폭위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친구와 공모해 피해자를 때렸다.

김석민 푸른나무재단 연구원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피해자 발언에 대한 다른 증거자료를 제출해 학폭위 처분을 지연하거나 무마하려는 시도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학교에서나 상담센터가 있다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상태를 계속 확인할만한 여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가해자를 피하려다 피해 학생 부모가 위법 행위를 저지른 경우도 있었다. 학교폭력 피해자 부모인 E씨는 학교폭력을 당하는 딸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갈 수 있도록 위장전입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E씨는 부산 모 구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나 해당 구 내 다른 주소로 주민등록지를 이전했다. 부산지법은 E씨가 반성하고 있고, 딸의 전학을 위한 것이었다는 진술을 받아들여 E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binna@heraldcorp.com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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