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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 백가지 백색...학의 군무인듯 군자의 매력에 빠지다
리움, 개관 이래 첫 번째 도자전 개최
국보 10점·보물 21점 등 명품 42점 망라
국내외 14개 기관 참여 블록버스터 전시
단아·세련·화려함 품은 ‘조화의 美’ 물씬
백자청화 매죽문 호(국보)을 위시해 명품 백자 42점이 한 전시장에 펼쳐진다. 보이는 곳곳이 보물이고 국보다. 백자로 플렉스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전이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헤럴드DB]
18세기 백자대호 [헤럴드DB]
조선시대 일상에서 쓰였던 백자들 [헤럴드DB]
백자철화 초화문 호 [헤럴드DB]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블랙박스, 컴컴한 복도를 따라 전시장에 들어서면 갑자기 장관이 펼쳐진다. ‘백자청화 매죽문 호’(국보)를 비롯한 조선백자의 ‘챔피언스리그’ 대표 주자들이 존재감을 뽐내며 관객을 압도한다. 정부가 지정문화재로 관리하는 백자는 총 59점(국보 18점, 보물41점). 그중 절반이 넘는 31점(국보 10점, 보물21점)이 한 곳에 모였다.

그 뿐이랴. 문화재급 국내 백자 3점, 일본에 소재한 수준급 백자 8점 등 최고 명품 백자도 그 옆에 자리 잡았다. 조선백자의 최고 미감으로 꼽히는 달항아리 3점도 전시에 나온다. 이쯤 되면 널린 게 국보고, 깔린 게 보물이다.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리움이 선사하는 ‘백자 플렉스’다.

▶국보부터 보물까지...조선백자 총망라=리움미술관은 오는 28일부터 조선백자 명품을 한 자리에 선보이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을 5월 28일까지 개최한다. 리움이 도자기전을 개최한 것은 지난 2004년 개관 이래 처음이다.

전시는 그간 해왔던 장식 기법이나 기종에 맞춰 소개하던 조선백자전과 달리 500년 역사 전체를 총망라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준광 책임연구원은 “조선 시대 유교사회의 근간인 군자의 풍모가 백자에도 그대로 들어있다”며 “기존 백자전과 달리 도자에서 사회를 읽어내고 선조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를 찾아보려 한다”고 설명한다.

조선의 백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청화백자, 철화·동화백자, 순백자 등의 순으로 바뀐다. 금값과 맞먹던 청화안료를 사용한 청화백자는 왕실에서 주로 사용됐고, 왕실의 위엄과 품격을 높이는 도구였다. 도안도 한폭의 수묵화처럼 정교하고 화려하다.

반면 철화·동화백자는 17세기 주로 제작됐다. 철화나 동화는 청화안료에 비해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다. 이전에도 종종 쓰였으나 고급 재료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다. 17세기 조선은 왜란과 호란에 이어 대기근이 들면서 나라 전체가 어려웠다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청화’라는 비싼 안료 대신 저렴한 다른 재료가 전면에 나선 건 필연적이다.

이준광 연구원은 “논어의 위령공편에 보면 ‘군자는 곤궁함 속에서도 굳세지만, 소인은 궁하면 멋대로 군다’는 구절이 있다”며 “철 안료 특유의 강렬함과 변화무쌍한 색변화로 오히려 독특한 미를 창출해냈다”고 말한다.

▶시대·지방·제작 방식에 따라 다른 매력=지방과 중앙의 차이도 흥미롭다. 완성도나 마감을 보면 중앙의 백자가 단연 엄숙하고 단정하며, 또 화려하고 세련됐다. 그러나 정겨우면서 질박한 멋은 지방 백자만의 맛이다. 용 문양도 엄숙하고 무섭지 않고 오히려 귀엽다. 선비의 곧은 정신을 상징하는 국화는 형태만 단순하게 뽑아냈다. 원래는 8각 병이어야 하건만 9각으로 제작된 항아리도 있다. 8각이냐 9각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본질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것이 핵심이다.

‘백자’의 흰색은 수 백 가지다. 유약을 발라 굽는 과정에서 다양한 색이 펼쳐지는 덕이다. 눈 같이 맑고 청명한 백색, 우윳빛처럼 기름진 백색, 회색빛이 살짝 감도는 회백색, 푸른빛이 반짝거리는 벽옥같은 백색 등 시기에 따라 그 색이 달라진다. 지방 도자에서는 백색에 회색, 갈색, 핑크색까지 섞여있다. 모두 같은 흰색 같아 보여도 자세히 보면 모두 색감이 다르다.

전시의 마지막은 백자대호가 자리한다. 유리관 안이 아니라 전시장 밖에 설치됐다. 투명한 창 너머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맨 눈으로 백자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이 연구원은 “‘바탕이 외관보다 나으면 촌스럽고, 외관이 바탕보다 나으면 호화스럽다. 외관과 바탕이 어울린 뒤에라야 군자답다’는 논어 옹야편의 구절이 있다”며 “조선 백자 전체를 놓고 보면 중앙이든 지방이든 외적인 형식과 내적인 본질이 서로 거스르지 않고 조화된 군자의 모습을 갖췄다는 생각이든다”고 말했다.

이같은 블록버스터급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부산박물관, 호림박물관, 간송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동국대학교박물관 등 국내 8개 기관과 도쿄국립박물관, 일본민예관, 이데미츠미술관,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 야마토문화관, 고려미술관 등 일본 6개 기관의 참여로 성사됐다.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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