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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생도, 의대생도 MZ는 “취업 보장 이공계? 관심 없어”[의대 블랙홀]
의대·이공계 진학 MZ세대 7인 인터뷰
SKY 정시생 30% 등록 포기
대기업 퇴사 후 의대 ‘재도전’도
“대기업 취업 보장, 매력 없어” 쓴소리
한 수험생이 2023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통지표를 보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지영·김영철 기자] 20년 넘게 지속된 의과대학 선호 현상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의대 선호에서 의대 쏠림으로, 이제는 ‘의대 블랙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재수, 삼수, 자퇴 후 재입시를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 이공계 학과는 공동화되고 있다. 기초과학 연구는 물론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미래를 이끌 인재 양성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정시모집인원 4660명 중 30%에 가까운 1343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2022년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자연계열 재학생 중 자퇴·미등록 등으로 중도탈락한 학생 또한 1421명으로, 전년 대비 59.1%나 늘었다. 서울대에서만 275명 학생이 학교를 그만뒀다. 입시전문가들은 미등록자와 중도탈락자 상당수가 ‘의대’로 간 것으로 본다.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MZ세대에게도 ‘의대’는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였을까. 헤럴드경제가 최근 입시를 경험한 의대생 3명, MZ인턴 의사, 이공계 대학생 3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모두 “의대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데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정부와 산업계 대책이 의대 쏠림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의대는 일단 쓰는 것”…의대 권하는 사회

진로를 고민할 여유가 없는 한국의 수험생들에게 사회 분위기는 대학 진학에 큰 영향을 미친다. 평소에는 의대 생각이 없다가도 입시원서 앞에서는 망설이게 되는 것. 의대 본과 4학년인 A(23)씨가 대표적이다. 연세대 화학생명공학과가 목표였지만 원서를 쓰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A씨는 “졸업 후 취업까지 몇 년이 걸린다는 뉴스를 보고 고민해 보니 의대 미래가 제일 밝았다”며 “이공계를 가면 스펙을 관리하고, 졸업하고 취업준비기간을 거쳐야 하지만 의대는 낙제만 하지 않으면 취업이 보장돼 취업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 보였다”고 말했다.

고심 끝에 이공계 대학을 택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대 항공우주학과에 재학 중인 B(23)씨는 “예전부터 공과대학을 희망했지만 부모님이 의대 지원을 내심 바라셨기 때문에 지원서 1곳은 지방대 의대를 썼다”며 “막상 서울대, 의대 둘 다 붙으니 고민이 됐다. ‘의사가 돈을 잘 번다’는 인식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영재고등학교를 나온 C(21)씨는 “학교 특성상 이공계 진학을 권장하는 곳임에도 ‘의대를 안 쓰면 손해’라는 인식이 있었다”며 “서울대 공대, 자연대를 충분히 갈 수 있는 성적이어도 의대에 떨어져 재수를 하는 동창이 많다”고 전했다.

10년 만에 다시 입시를 치른 D(30)씨는 ‘무조건’ 의대를 쓰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진단했다. D씨는 2013년 서울대 공대에 입학, 졸업 후 4년 동안 대기업에 다니다 2022년 지방대 의대에 입학했다. D씨는 “2013년 입학했을 때 동기 중에 의대를 붙고도 안 간 애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의대가 서울대보다 무조건 ‘위’”라며 “확실히 의대 쏠림이 심해졌다”고 전했다.

“소득이 전부 아니야”…의사 되려 ‘퇴사’까지

통상 의대 진학 이유로 ‘높은 보수’가 꼽히지만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MZ세대는 의사의 직업적 자율성도 매력으로 꼽았다.

D씨는 ‘워라밸’을 의대 진학 이유로 들었다. 그는 “야근, 회식, 사회생활… 의대를 선택한 건 ‘돈’보다 ‘삶’을 위해서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회사원이 일을 잠시 쉬고 재취업하는 것은 어렵지만 의사는 자격증과 실력만 있다면 휴식기간을 가지고도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라고 말했다. 물론 퇴사 후 재입학 결심이 쉽지는 않았다. 입시에 실패할까 불안했고, 의대에 가더라도 향후 인턴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나이가 감점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됐다. D씨는 “어른들은 퇴사를 만류했지만 친구와 동료는 공감했다. 대학 동기 중 5명이 퇴사하고 의대, CPA 등 전문직 공부를 다시 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병원 인턴 E(32)씨는 ‘안정성’을 이유로 꼽았다. E씨는 대학 때 생명공학부를 전공한 뒤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 현재는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중이다. E씨는 “(생명공학에 대한) 열악한 지원 환경을 알고 나니 이공계에서는 안정적인 삶을 누리기 힘들겠다고 판단했다”며 “의사는 정년퇴임 걱정 없이 평생 자신의 직업을 유지할 수 있어 의전원 진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어 “학자금대출과 자취비용을 모두 감당하고 있지만 향후 수입을 생각하면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며 “전문의 취득까지 오래 걸리는 게 고민됐지만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취업 보장 반도체학과, 관심 없어”…번지수 잘못 찾은 대책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바라보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반도체 인재양성 방안을 발표하고 수도권 대학 정원 증원, 재정지원사업 신규 추진 등 대책을 발표했지만 올해 연세대 등 유명 반도체학과 상당수가 미달 사태를 겪었다. [대통령실 제공]

이공계 선호도를 높이기 위한 대책에도 쓴소리가 쏟아졌다. 산업계는 인재양성을 위해 직접 대학과 손을 잡고 취업 연계 학과를 선보이고 있다. 반도체학과가 대표적이다. 정부 또한 계약학과 정원을 늘려주는 등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공계 대학생 B씨가 보기에 대학 선택에 ‘취업 보장’은 큰 메리트가 없다. B씨는 “대기업이 보장된 반도체학과에 갈 성적이 되는 수험생은 명문대 인기 학과는 물론 의대도 합격할 확률이 높다”며 “그 정도 성적이면 어느 학과를 가도 취업을 못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직업이 목표면 의대를 가고, 의대가 싫다면 직업 선택이 자유로운 다른 학과를 갈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의사처럼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닌 데다 특정 기업 취업이 오히려 선택의 폭을 좁혀 부담이 된다는 의미다.

실제 삼성전자 취업이 보장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학과는 2023년 정시모집 1차 합격자 전원이 등록을 포기했다. SK하이닉스가 만든 한양대 반도체공학과 또한 모집인원 16명의 3배에 달하는 44명이 등록하지 않았다.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재학 중인 F(21)씨는 “계약학과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도 “사실 수험생들은 그런 학과가 있는지도 모른다. 학과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고 결과가 알려지지 않아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웃풋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의대 아닌 선택지도 있어…쏠림은 문제, 개선돼야”

당사자인 MZ세대 또한 의대 쏠림을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기초학문이나 첨단과학·기술로 가야 할 인재들이 ‘현실적’인 이유로 의대 진학을 결정하는 모습을 흔하게 본다. 이공계 대학생 C씨는 “영재고에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제대로 연구하면 큰 건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뛰어난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의대에 간다”며 “의대 쏠림이 당연한 현상으로 자리 잡으면 사실상 의대를 ‘반강제적’으로 선택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의대생 A씨는 “교수들도 의대 공부는 정형화된 순서를 따라가는 공부라 창의성이 필요하지 않다. 의대 공부를 하면 창의성이 ‘죽는다’는 말을 한다”고 했다. 창의성이 뛰어난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면 사회 전체의 창의성, 생산성이 저하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공계 재학생들은 ‘의대’가 아닌 선택지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F씨는 “공대에도 전망이 좋은 학과가 많다. 당장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미래와 적성을 고려해 학과를 선택했다”며 “실제 미래 산업 관련 기술 대부분이 전공과 맞물려 만족 중”이라고 말했다. F씨가 전공 중인 물리화학은 반도체, 배터리 등과 관련이 깊다. B씨는 “학창시절 로보 키트를 만들면서 기존에 없던 것을 ‘개발’한다는 것에 희열을 느껴 공대에 진학했다”며 “대기업이나 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KAI)에 취업해 노하우가 쌓이면 창업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첨단산업이 발전하면 국내 인재들이 자연스레 관련 학과에 몰릴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의대생 G(26)씨는 “의대를 지원하던 6년 전만 해도 컴퓨터공학, 데이터사이언스가 이렇게 뜨지 않았다”며 “각광받는 직업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의대 선호 현상도 기술 발전에 따라 줄어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공계 인재 육성을 위해 대학원을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E씨는 “이공계 인재가 성장하려면 대학원 생활이 필수적이지만 대학생들은 대학원을 ‘감옥’이라고 표현한다. 연구에 행정까지 업무가 막중한데 보상은 없고 국가 지원은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미국 등 선진국은 이공계 대학원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사회적 분위기나 정책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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