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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시사] 나는 뇌물이라고 생각한다

대장동 개발사업을 추진하던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는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에게 무려 50억원을 왜 줬을까? 그것도 겨우 5년 남짓 재직한, 연봉 4600만원 받던 30대 초반의 직원에게. 김만배는 당시 국회의원이던 곽상도에게 법에서 허용하지 않는 뭔가 바라는 것이 있지 않았을까? 우린 이런 돈거래를 ‘뇌물’로 의심한다. 법원 판례에 흔히 등장하는 사회통념상으로 이해하면 말이다. 그런데 법원은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말 충격이었다.

법원은 곽상도가 국민의힘 부동산투기특별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직무권한 행사의 한 방편으로 판단했다. 즉 곽상도가 했던 국회의원으로서의 활동이 대장동 사업과 직무관련성이 있다고 봤다. 그리고 김만배가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 야당 정치인에 의한 대장동 개발사업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것도 느꼈고,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곽상도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것도 인정했다. 또한 김만배는 곽상도에게 50억원을 줘야 한다거나 곽상도 아들을 통해 50억원을 지급하려는 의사를 주변에 밝혔고(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에도 언급됐다), 실제로 그대로 동일한 액수의 돈이 곽상도 아들에게 전달됐다.

이쯤 됐으면 일반 국민의 법 상식으로는 김만배가 곽상도에게 50억원을 뇌물로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국민의 법 상식은 법원이 마지막으로 문제 삼은 쟁점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법원은 곽상도 아들이 아버지의 사자(使者) 또는 대리인으로서 뇌물을 수수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면서도 결혼해 독립 생계를 유지한 아들에 대해 법률상 부양 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하는 곽상도가 지출할 비용을 면한다고 보기 어렵고, 아들이 받은 돈 가운데 일부라도 곽상도에게 지급된 사정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곽상도 아들이 김만배로부터 지급받은 돈과 얻은 이익은 곽상도가 직접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성인인 자녀가 결혼했든 아니든, 독립생계를 유지하든 아니든 부모가 자녀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곽상도 아들은 아파트를 임차하기 위해 화천대유로부터 5억원을 빌렸다. 임대차 보증금이 부족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곽상도 아들로서는 만일 화천대유가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아버지인 곽상도로부터 지원을 받았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따라서 민법에 규정된 법률상 부양 의무를 뇌물수수자의 당사자를 판단하는 잣대로 꺼내 든 법원 판결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검찰 수사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알선수재나 뇌물에 대해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아들이 돈 받을 것을 제3자 뇌물로 처벌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제3자 뇌물은 ‘부정한 청탁’이 증명돼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대해 기소도 못했다.

이 사건 쟁점은 대장동 개발 주역인 김만배가 곽상도의 도움이 필요했고, 당시 곽상도는 국회의원으로서 대장동 사업과 직무관련성이 있었으며, 김만배는 평상시에 곽상도 내지 그 아들에게 돈을 줘야 한다고 주변에 알렸으며, 실제로도 불과 5년 남짓 근무한 말단 직원에게 지급한 ‘돈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다. 김만배가 곽상도 아들에게 무려 50억원을 지급한 것이 오로지 아들의 업무가 뛰어났거나 질병에 대한 보상금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공무원의 직무집행의 공정과 이에 대한 사회 신뢰에 대해에 중대한 가치를 두고 있다. 이번 곽상도 무죄 판결이 미치는 사회적 파장이 우려되는 것도 이 지점이다. 결혼해 독립생계를 꾸린 공직자 자식에게는 마음 놓고 돈을 줘도 된다는 것인가.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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