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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공의성 [이런정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성 라퓨타’ 마지막 장면.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성 라퓨타’는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인 지난 1986년 개봉한 애니메이션이다. 귀여운 꼬마 남자·여자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만화영화의 스토리는 그러나 마냥 밝지만은 않다. 하늘에 뜨는 부력의 돌을 고도로 정제할 수 있는 기술력을 지닌 하늘민족이 지상의 모든 인간을 지배하는 데에 사용했던 과거 시대의 유물이 하늘에 떠 있는 성이 ‘라퓨타’다. 라퓨타는 지상에 강력한 레이저빔 폭탄을 내리꽂는 최첨단 무기로, 하늘민족은 말을 듣지 않는 지상의 인간을 다스리는 데에 라퓨타를 사용했다.

그야말로 공포정치로 세계를 지배했던 막강한 세력이 과거 존재했었다는 증거가 라퓨타성이다. 라퓨타에 사는 민족은 ‘라퓨시안’이라 불렸고, 그들에겐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부족 고유의 비밀 이름도 존재했다. 그러나 하늘민족은 내부 분열 탓에 몰락했고, 주인공들은 폐허가 된 공포스러운 유물 ‘천공의성 라퓨타’를 찾아 붕괴시키는 것으로 만화영화는 끝이 난다.

‘천공의성 라퓨타’가 개봉한 지 37년 뒤인 2023년 한국 정치판엔 역술인 ‘천공(天公)’이 정치권 중심으로 밀려 들어왔다. 천공이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인 지난해 4월 관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관용차 카니발을 여권 관계자들 및 유력인들과 함께 타고 육군 참모총장 공관과 서울사무소를 둘러봤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천공은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행보에도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던 그 인사다.

천공의 강의.

논란의 시작은 지난해 11월 김종대 전 의원의 폭로가 처음이었고, 최근엔 부승찬 국방부 전 대변인이 자신의 회고록을 책으로 출간하면서 더 세부적인 내용 일부가 공개됐다. 최근 추가된 내용은 부 전 대변인이 ‘천공이 관저에 들어갔다’는 내용을 확인했던 인사가 남영신 전 육군 참모총장이었다는 사실이다. 보고가 생명인 군 내에서, 그것도 하늘 같은 ‘포스타’에게 허위 보고가 갔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론 낮기에 ‘천공 개입설’은 김 전 의원의 폭로와는 다른 차원의 논란으로 확전 양상이다. 부 전 대변인의 저서에는 당초 대통령 관저 유력지는 육군 참모총장 공관이었는데 천공이 다녀간 이후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뒤늦게 바뀌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천공논란은 윤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6일 공개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론조사가 기간 내 40%를 넘었으나 ‘천공 사저 선정 개입 의혹’이 불거진 뒤 하락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2일 43.3%까지 올랐으나 다음날인 3일에는 39.7%로 떨어졌다. 지난 2~3일은 윤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천공에 대한 논란이 다시 급부상한 때다. 부 전 대변인이 그 내용을 폭로하는 책을 내면서 화제가 됐다. 대통령실은 해당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야당은 총공세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역술인 ‘천공’의 대통령 관저 이전 개입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며 국정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최 전 정무수석은 6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설정 자체가 여러 사람이 등장하지 않나. 부승찬 전 대변인이 있고 그다음에 남영신 참모총장이 있고. 부사관이 있고, 또 부 전 대변인이 남 총장의 이야기를 화장실에서 듣고 별도로 또 자기 자신이 확인하고 조사한 과정에서 또 익명의 등장인물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진성준 원내수석 부대표도 이날 “의혹이 사실이라면 무속인이 개입해 대통령 관저가 변경된 것”이라며 “당연히 국회 상임위원회에 출석해 사실관계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천공을 증인으로 채택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 문제의 핵심 당사자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간단한 사안이기 때문에 문제의 육군 참모총장 공관 또 육군 서울사무소를 방문한 인사들을 출석시켜서 진술을 들어보면 되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국방부와 육군은 천공 방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배석진 육군 서울공보팀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역술인 천공과 관련한 질문에 “공지를 통해 사실이 아님을 밝힌 바 있다”며 “현시점에서 추가로 할 말은 없다”고 말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도 “육군과 대통령실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입장을 발표했고 고발도 이뤄졌다”며 “이후 필요한 과정을 거쳐 사실관계가 확인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재미있는 지점은 최초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남 전 총장이 보인 행보다. 남 전 총장은 부 전 대변인의 ‘폭로’에 대해 사건 초기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 전 대변인은 이를 두고 “사실이 아니라고 했으면 남영신 (전) 총장이 전화를 해서 난리를 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관련 사실을 처음 제기한 부 전 대변인과 일부 언론사 기자 등을 고발했다. 결국 사건 수사를 위해서라도 관련 발언의 사실 여부는 수사기관에 의해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윤 대통령의 임기가 4년여가량이나 남아 있고, 당시 CCTV 화면의 존재 여부 등도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결국 부승찬 전 대변인이 사안을 입증하기는 매우 어려운 사안 아닐까 한다. 논란은 일겠지만 추가로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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