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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지시위’ 처리 놓고 고민 깊어지는 中
지난해 11월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코로나19 봉쇄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자 경찰이 통제에 나선 모습. [AP]

[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지난해 12월 중국이 강력한 코로나19 봉쇄를 풀고 일상 재개장(리오프닝)으로 전환한 뒤 국제사회는 중국 정부에 두 가지 수치를 정확히 알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하나는 코로나19 사망자 및 감염자이고, 다른 하나는 ‘백지시위’로 대표되는 방역 정책 항의와 관련해 붙잡혀 구금된 사람들의 숫자다.

여전히 논란은 남아 있지만 코로나19 감염은 최악의 단계는 지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연초 코로나19 사망자가 가장 많았지만 이후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숫자뿐 아니라 달라진 거리 분위기에서도 코로나19가 내리막을 걷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베이징 등 대도시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고 춘제 연휴(1월 21~27일) 고속도로, 철도, 항공 등을 합친 인구 이동량은 2억2600만명으로 전년 대비 73.8% 늘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의 절반까지 올라왔다. 태국, 싱가포르 등 중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로의 항공편 예약도 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행 소비 증가로 인해 소비관련 업종 매출액은 1년 전보다 12.2% 늘었다.

반면 두 번째 숫자는 여전히 모호하다.

지난해 3연임에 성공하며 ‘21세기 황제’의 반열에 오른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백지시위라는 위기를 맞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2월 초 “14억명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소통과 협의를 통한 합의 구축을 언급했다. 중국에서 허용되지 않는 반정부 시위에 일부 공감한, 상당히 유화적인 대처였다.

중국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에서 대학생들이 일명 ‘제로(0) 코로나’로 불리는 초고강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를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튜브 'Zecheng Show' 채널 캡처]

하지만 시위 참가자들 모두에게 너그러운 것은 아니었다.

지난달 25일 중국 인권 문제를 제기해온 온라인 사이트 ‘웨이취안왕’은 베이징시 검찰이 백지시위와 관련해 9명의 체포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전국적으로는 100명 이상이 구금된 것으로 추정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보다 앞서 시위 참가자가 최소 12명이 구금돼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추정이다. 중국 당국은 공식적으로 백지시위 자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관련해 체포 및 구금된 사람이 몇 명인지 외부에선 알 수가 없다. 단편적으로 SNS 등을 통해 체포 임박설, 시위 참가자 실종 의혹 등이 퍼질 뿐이다. 백지시위에 대한 중국 안팎의 관심이 줄어들자 중국 당국이 조용히, 하지만 적극적으로 시위 참여자들을 쫓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한 시민이 목에 쇠사슬이 묶인 채 당국에 끌려가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백지시위 참가부터 최근 당국에 의해 체포된 젊은 여성들이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물밑 체포·억압은 백지시위 수습을 놓고 시 주석이 처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정책 전환 과정에서 보여준 혼란과 부실 대응으로 중국이 그동안 자랑해온 단일 지도체제의 우월함이 훼손된 상황에서 체제에 정면으로 대항한 백지시위를 이대로 덮고 넘길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동시에 공개적으로, 지나친 체포와 억압은 잠재된 불만을 부추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글로벌 통계플랫폼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2년 조사에서 자국 정부를 신뢰한다는 중국인 응답율은 89%로, 세계 평균 51%를 크게 웃돌았다. 하지만 백지시위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전무한 것이 아닌 침묵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영국 가디언은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사망자 급증과 리오프닝 이후 혼란으로 중국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 대한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시 주석 권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명성에 흠집을 냈다”고 지적했다.

자발적 네트워크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야추왕 중국 선임연구원은 “새로운 세대의 시위대는 더욱 광범위하게 다신들의 요구를 전파하고 있단 점에서 기존 활동가들과 구별된다”고 WSJ에 설명했다.

때문에 일단 중국 당국은 시위 참가자들이 외부 불순세력의 영향을 받았다며 화살표를 밖으로 세우고 있다.

다이애나 푸 토론토대 정치학과 교수는 블룸버그에 “시 주석은 권위주의 지도자로서 불미스러운 면은 숨기려하기 때문에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당국은 이번 소요 사태를 세뇌된 일부 인사들과 결탁한 외부 세력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장기적으로는 개혁개발 시대 이후 중국인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경제성장이 답이다. 하지만 서구 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중국인들이 그 대가로 얼마나 많은 권리와 자유를 포기해왔는지 코로나19를 통해 깨닫기 시작했단 점에서 근본적인 개혁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중국사회과학원 출신의 역사학자 장리판이 지적한대로 “개혁을 하지 않으면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고, 개혁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라는 오래된 중국 지도부의 딜레마가 백지시위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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