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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우의 현장에서] 용퇴당한 회장님

‘후진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스스로 관직 따위에서 물러남.’흔히 통용되는 ‘용퇴’의 정의다.

18일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세대교체 흐름에 동참하겠다”는 말과 함께 연임 도전을 포기하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언론에서는 일제히 ‘손태승 회장 용퇴’ 등의 제목으로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용퇴’라는 단어의 적절성에는 의문이 남는다. 손 회장이 ‘스스로’ 물러났다고 단언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손 회장이 재연임을 포기하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애초 손 회장은 재연임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완전민영화를 이끌고,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한 탓에 무난한 재연임을 점치는 시각도 많았다. 지난달에는 DLF 징계 취소소송에도 승소하며 일부 사법리스크도 해소됐다. 그러나 금융당국에서 ‘라임펀드 징계 취소소송을 포기하고 사퇴하라’는 메시지가 나오며 재연임 가능성은 무색해졌다.

실제 금융당국 수장들은 줄곧 사퇴를 촉구하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발언이 계속될수록 ‘관치금융’ 논란은 커졌지만, 압박의 수위는 약해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라임펀드의 경우 CEO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명확하게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퇴진을 압박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경우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며 사퇴 압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세대교체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힘들다. 재연임이 유력하다는 시각은 많았으나 라임펀드 사태 징계리스크가 남은 손 회장의 연임을 반기지 않는 시각도 존재했다. 다만 손 회장의 재연임 포기선언이 완전민영화를 이뤄낸 우리금융에 외압이 작용한 결과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관치를 위한 세대교체라는 비판도 피할 길이 없다.

물론 최근 기업은행장에 내부 출신 인사가 임명되며, 금융권 수장 인선과 관련한 ‘낙하산’ 우려는 다소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관치금융’ 논란은 계속될 듯하다. “금융당국이 누군가를 수장으로 만드는 건 어려워도 수장을 못 하게 만드는 건 쉽다”는 한 금융권 관계자의 말이 현실이 되면서다. 이번 손 회장의 재연임 포기는 결국 금융권이 관치의 그늘에 있으며, 수장을 좌지우지할 힘 또한 외부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전날 오후 이복현 원장은 손 회장의 연임 포기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개인적인 의사 표명에 대해 말하기는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의외의 답변이다. 지난해 그는 3연임 도전을 포기했던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을 두고 “리더로서,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스럽다”고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용퇴’를 선언한 금융권 수장들의 결정은 다를 게 없었다. 이에 대해 상반된 말을 전한 이 원장의 속내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일련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거센 발언들 뒤, 이를 매듭짓는 말로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다. 그간의 행적을 감추듯 이제 와 애써 말을 아끼는 것이 용퇴당한 회장님을 위한 가장 적절한 방식의 배웅은 아니었을 터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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