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를 사랑한 자동차 브랜드들
혼다·폭스바겐·벤츠·BMW 눈길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 “축구황제 펠레(35·본명 에드송 아란치스 두나시멘투),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 혼다와 3년간 엔화 1억3500만엔(당시 한화기준 약 2억2950만원) 계약.” (1976년 신문기사)
1976년 겨울. 미국 축구 리그 오프시즌이었다. 14년간 몸담았던 산투스FC를 떠나 미국팀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해 1년을 보낸 축구황제 펠레가 일본의 자동차 브랜드 혼다와 광고 계약을 맺었다. 연간 기준으로 매년 4500만엔. 당시 스포츠 스타의 개인 광고 계약으로는 최고 액수였다.
광고업계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스포츠 스타 광고 최고액은 천재 골프 스타 조니 밀러와 피겨여왕 재닛 거하우저가 세운 2000만엔,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연간 3000만엔이었다. 펠레는 이 계약을 통해 혼다 오토바이와 혼다 자동차의 광고모델을 맡았다.
최근 영면한 ‘검은 진주’ 펠레는 월드컵 3회 우승을 이룬 사상 최고의 축구 스타다. 그는 세간에 ‘자동차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수많았던 ‘애마’가 새삼 화제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다르게 말하면 많은 완성차 브랜드가 펠레를 활용해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는 얘기다.
신시장 개척에 나섰던 당시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 남미의 축구스타는 큰 홍보수단이 됐다. 현재 공개적으로 알려진 펠레의 자동차는 완성차 업체나 현지 수입업자가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포츠 스타이자 자동차 마니아인 펠레의 등에 업혀보려는 계산이 엿보인다.
펠레와 광고를 계약한 혼다가 대표적이다. 오토바이 브랜드에서 시작한 혼다는 1963년 트력 T360과 스포츠카 S500을 출시했다. 혼다 시빅(CIVIC)은 1972년 등장했다. 완성차 업계에선 후발주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가장 앞서 친환경 엔진(CVCC엔진)을 개발할 만큼 기술 수준은 최고였다.
혼다에 펠레는 최고의 홍보모델이었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도전의 상징이었다. 펠레는 최연소 월드컵 득점·최연소 해트트릭과 월드컵 3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보유했다. 새 축구 시장을 개척하고자 브라질팀 산투스FC를 떠나 ‘축구 불모지’였던 미국 뉴욕의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한 것도 ‘도전 정신’으로 비쳤다.
혼다는 당시 남미에 출시한 CG125의 모델로 펠레를 선택했다. 1976년에는 대형 광고 계약을 추가로 맺었다. 혼다가 생산한 차량과 오토바이를 모두 펠레를 통해 홍보했다. 현재까지 펠레가 나온 광고를 찾아볼 수 있다. 덕분에 CG125는 브라질에서 가장 많이 팔린 오토바이로 이름을 남겼다.
이런 펠레의 첫차는 폭스바겐 ‘푸스카(비틀의 중·남미 판매 차량명)’였다. 펠레에게 반한 독일인 윌터 허버트가 펠레에게 이 차를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펠레가 첫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상파울루 시장이던 파루 말루푸가 브라질 선수단에 제공했다는 후문도 있다.
펠레는 첫 차를 수십 년간 차고에 둘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브라질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비틀은 지난해 10월 약 50만 달러(한화 약 7억원)의 가격으로 현지 경매시장에 나왔다. 현지 언론은 “펠레가 대장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차량을 매물로 내놓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폭스바겐에 대한 펠레의 사랑을 알았는지 2009년부터 브라질 대표팀을 후원했던 폭스바겐은 2013년 펠레를 공식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펠레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과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폭스바겐을 대표하는 모델로 활약했다.
펠레의 두 번째 자동차는 BMW 이세타였다. 마찬가지로 BMW를 브라질에서 수입하던 수입업자에게 선물로 받았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에어 윌리스(Aero Willys·이후 아메리칸 모터 코퍼레이션, 1988년 해체)도 브라질에서 생산하던 에어 윌리스 2600을 펠레에게 선물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특별한 스포츠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펠레에게 새 차를 선물했다. 펠레가 산투스 FC 소속이던 1969년 1000호 골을 넣자 메르세데스-벤츠는 250 W114를 펠레에게 선물했다. 독일 월드컵이 다가오자 메르세데스-벤츠는 차를 280 SE W108 모델로 바꿔줬다. 펠레는 공식 석상에서 메르세데스-벤츠 차를 타고 나타났다. 메르세데스-벤츠는 펠레를 상징하는 차처럼 여겨졌다. 펠레는 해당 차량을 곧 팔았다. 그러자 메르세데스-벤츠는 2004년 해당 차량을 다시 구매해 펠레에게 선물했다. 당시 펠레의 280S 차량은 이미 18번이나 손바뀜을 한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완성차 업체나 수입사의 스포츠 스타를 활용한 홍보는 지금도 여전하다. 손흥민이 타는 마세라티 르반떼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수입업자가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르반떼는 전장이 5m가 넘는 준대형 SUV다. 배기량에 따라 1억2000만원부터 2억4000만원의 가격대를 갖추고 있다. 속도와 기술이 축구와 자동차의 공통점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두 분야의 교집합이 마케팅 역사를 축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