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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재 취약 경고했는데...뒤늦은 국토부 “전국 방음터널 조사”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방염 소재 사용 의무화 규정 없어
2년 전에도 유사사례...예견된 재난
경기도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에서 화재가 나 5명의 사망자와 3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30일 오전 불에 탄 차들이 널브러져 있다. [연합]

예견된 재난이었다. 전문가들은 방음터널의 화재 취약성에 대해 꾸준히 경고했지만,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방염 소재사용을 의무화한 규정은 없었다. 도심 속 화재 ‘사각지대’가 방치된 결과 경기도 과천시 방음터널 화재로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가 화재 안전 기준 개선을 추진하는 사이 또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 29일 헤럴드경제가 찾은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 IC 인근 방음터널 현장은 참혹했다. 사고가 난 갈현고가교 아래에 검게 그을린 파편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터널을 덮고 있던 플라스틱이다. 70% 이상이 소실된 방음터널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사고 현장을 직접 목격한 시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1㎞가량 떨어진 건설사에서 근무 중이었던 조성민(28)씨는 “1층에서도 연기가 확연히 보였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놀라서 다 촬영하러 나올 정도”였다고 당시의 긴박함을 전했다. 조씨가 촬영한 영상 속 방음터널은 불길에 쌓여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고, 새카만 연기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또 다른 시민 전모(25)씨는 “폭발하는 것처럼 ‘펑펑’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연기가 1㎞ 이상 떨어진 저희 집까지 자욱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목격한 ‘검은 연기’는 방음터널을 덮고 있던 플라스틱에서 발생했다.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이라는 소재로 폴리카보네이트(PC)와 고밀도폴리에틸렌(HDPE)과 함께 방음벽에 자주 사용된다. 3개 모두 ‘방염’소재로 일반 플라스틱보다는 열기에 강하지만, 불에 타지 않는 소재는 아니다. 유독가스도 발생한다. 특히 PMMA는 PC에 비해 인화점이 낮아 이번 사고를 더욱 키운 원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방음터널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소재는 불이 나면 직접 옮겨 붙거나 착화될 가능성이 일반터널보다 훨씬 높다”며 “열과 연기가 안에 갇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방음벽에 비해서도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방음터널의 재질과 성능에 대한 정부 규정은 사실상 전무했다. 국토교통부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 재질 및 성능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없다. 환경부의 방음시설의 성능 및 설치 기준을 준용하는데, 해당 고시는 ‘한국산업규격(KS)에서 정하는 방음판 종류별 규격에 적합하거나 동등이상의 재료로 하여야 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KS 또한 소음 차단을 위한 플라스틱 두께를 정해뒀을 뿐 화재 상황에 대비한 품질 기준은 없다. 부족한 대피 시설도 피해를 키웠다. 2016년 국토교통부가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을 개정하면서 방재시설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일반터널에 비해 간소하다. 재방송 설비, 비상 조명등, 무선통신보조설비, 피난·대피 시설 등 일반 터널에 의무화된 다수 방재시설이 빠졌다. 화재 발생 직후 질서 관리와 빠른 대피를 도울 장치가 없었던 셈이다. 터널 내부가 양방향 도로였던 데다 연기가 가득 차면서 차와 사람이 뒤엉켜 탈출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방음터널 화재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2020년 8월 경기도 용인시 신대호수사거리 고가도로 위 차량에서 난 불이 방음터널에 옮겨 붙어, 터널 50m 가량이 불탔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때에도 전문가들은 방음터널이 화재에 취약하다며 안전 기준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결국 국토부는 올해 7월에 되서야 화재 안전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에 들어갔다. 국토교통부는 관계자는 “(연구용역이 끝나면)지침 개정 등 형태로 조치 할 예정”이라며 “전국 방음터널 현안을 조사하고 유사 시설 점검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과천=김빛나 기자, 박지영 기자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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