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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션계 악동’ 마르지엘라, 작품을 감추니 작품이 보인다 [아트 플러스]
롯데뮤지엄서 국내 첫 ‘마틴 마르지엘라展’
마틴 마르지엘라, 토르소 시리즈, 롯데뮤지엄 전시 전경. 인체의 어느곳인지 알기 어려운 토르소 조각이다. 대리석 대신 실리콘으로 제작해 작품의 기원을 불분명하게 흐렸다. 작품을 받치는 좌대와 오브제도 하나의 재료로 연결해, 받침대까지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헤럴드 DB]
마틴 마르지엘라, 립 싱크, 롯데뮤지엄 전시전경. 청각장애인 교육용 비디오에서 이미지를 차용했다. [헤럴드 DB]

솔기를 노출하고, 단 처리를 끝마치지 않았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옷은 이른바 ‘해체주의’라 불린다. 옷의 기능 중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는 디자인적 실험을 계속하는, 새로운 착장 방식을 고민케 하는 옷이 바로 메종 마르지엘라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업자, 마틴 마르지엘라(65)의 예술적 자아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은 국내 최초로 ‘마틴 마르지엘라’전을 지난 24일부터 개최했다. 설치, 조각, 영상, 퍼포먼스, 페인팅 등 50여 점을 통해 작가는 패션 시스템과 인체의 한계, 미술관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마르지엘라는 벨기에 출생으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프랑스로 이주했고 1988년 메종 마르지엘라를 설립했다. 1997∼2003년에는 에르메스의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했다. 2008년 메종 마르지엘라 20주년 기념쇼를 끝으로 패션계에서 은퇴했다.

은둔자를 자처하는 그는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역으로 활동할 때는 물론 은퇴 이후에도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이번 전시에도 작품만 왔을 뿐, 작가는 방한하지 않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자판기를 마주하게 된다. 버튼을 누르면 종이 상자가 나온다. 상자 안에는 전시장 지도가 그려져 있다. 미로처럼 구성된 전시장에서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관객을 위한 가이드인 셈이다.

자신에 대해 절대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전시도 베일에 쌓여있다. 작품이 놓인 곳마다 블라인드로 가려 공간을 만들었다. 작품 하나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구도다. 작품들은 개념 미술에 가깝다. 원래 작품이 놓여있어야 할 곳에 회색의 음영만 남았다. 흔적을 보면서 원작을 짐작케 한다. 두상 전체를 모발로 덮은 ‘바니타스’는 머리카락 색상만으로 유년에서 노년까지를 나타낸다. 인체 일부를 3차원(D) 스캔해 실리콘 조각으로 제작한 ‘토르소시리즈’는 고대 조각상 개념에서 탈피하는 한편, 젠더의 의미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또한 작품이 놓인 좌대와 작품을 같은 재질로 만들어 ‘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도발한다.

패션에서 ‘전복’을 자신의 언어로 사용했던 것처럼 마르지엘라는 예술에서도 같은 문법을 구사한다. 작품은 걸렸다 사라지고, 보였다 은폐된다. 예술 작품을 더욱 숭고하게 보이도록 하는 미술관의 장치에 질문을 던지고 뒤집는다. 오랜 시간 동안 작품을 잘 보존하고 최상의 상태로 보여주는 대신, 작가는 작품을 펼쳤다 접었다 하면서 일부러 흐려지고 뭉개지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퍼포먼스를 하는 미술관 스태프들은 메종 마르지엘라 직원들이 입었던 것처럼 흰색 가운을 입었다. 가장 싸지만 가장 파워풀한 유니폼이다.

앞서 마르지엘라는 2021년 프랑스 파리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Lafayette Anticipation)에서 첫 전시를 열었고, 올해 베이징 엠 우즈(M Woods)에서 같은 전시를 선보였다. 서울 전시는 베이징에 이은 세 번째 전시다. 내년 3월 26일까지.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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