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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넬백 못사도 향수라도…불황의 경제학 ‘스몰 럭셔리’ [어떻게 보십니까 2023-新소비]
일종의 자기 위안…심리적 만족감 높아
6만원짜리 색연필 세트·21만원 샴푸 등
작은 사치 좇는 현대판 ‘립스틱 효과’



#1. 직장인 박모(30) 씨는 최근 백화점에 들러 3년 만에 맥 아이섀도 팔레트를 구매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명품 가방을 샀지만, 올해에는 대신 고가의 화장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박 씨는 “물가가 너무 올라 생활비도 많이 드는 데다가 최근 동남아시아로 해외 여행을 다녀오느라 명품 가방은 언감생심이다”라고 말했다.

#2. 최근 찾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더현대 서울. 1층 향수 매장은 고객으로 북적였다. 종업원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인기 상품들 대부분 품절됐다며 안내하기 바빴다. 반면 보테가 베네타, 구찌 등 평일에도 줄을 서서 입장하던 명품관은 발길이 뚝 끊겼다. 지하 2층에 입점한 소품샵도 수많은 고객으로 붐볐다. 연필 한 자루에 4000원, 색연필 세트 6만원에 이르는 ‘고급 문구류’도 인기였다.

경제 불황기에는 립스틱이 잘 팔린다는 ‘립스틱 효과’. 1930년대 대공황기에 사람들이 최대한 아끼면서도 작은 사치를 좇는 현상에 붙은 경제학 용어다.

최근에도 MZ세대 사이에서 ‘스몰 럭셔리’라는 용어가 새롭게 떠올랐다. 현대판 립스틱 효과다. 한 때 MZ세대 사이에서 ‘명품 플렉스’가 유행했다면 지금은 10만원 내외의 립스틱·향수부터 고가의 샴푸, 인테리어 소품, 호텔 먹거리 등을 구매하는 형태의 소비가 두드러지고 있다. 고물가 시대 명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건을 구매하면서 심리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이 같은 소비 양상이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유통업계 안팎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28일 신세계인터내셔날에 따르면 올해는 스몰 럭셔리 아이템인 니치 향수의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 딥디크, 바이레도, 산타마리아노벨라 등 향수 브랜드의 올해 매출은 전년 대비 22.7% 뛰었다. 고가의 헤어케어 제품도 스몰 럭셔리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한병 가격이 21만원이나 되는 ‘샴푸계의 샤넬’도 등장했다. 초고가 헤어 전문 브랜드 오리베는 올해 들어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하며 갤러리아 압구정점에 첫 단독 팝업 매장을 오픈하기도 했다. 오리베의 백화점 유통망을 통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9% 신장했다.

불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3분기부터 백화점 색조화장품·향수 매출도 신장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10월부터 이달 19일까지 현대백화점 색조 화장품·향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2.1%, 25% 신장했다.

반면 명품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최근 롯데멤버스가 리서치 플랫폼 라임을 통해 지난달 11~25일 전국 성인남녀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가 물가 부담으로 최근 가장 먼저 소비를 줄인 품목으로 명품(26.1%)을 뽑았다.

가장 늦게 소비를 줄인 항목으로는 식품 이외에 ▷생활잡화(12.2%) ▷의류·패션잡화(8.2%) ▷도서·문구용품(7.8%) ▷화장품·향수(5.9%) 순이었다.

일각에서는 이런 스몰 럭셔리 현상은 불경기에 양극화가 더욱 두드러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 위안’이라고 해석한다. 명품을 살 여력은 없지만 명품 화장품을 사면서 비슷한 만족감을 얻는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 화장품은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을 높여주는 대표적인 스몰 럭셔리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며 “내년에도 경기침체로 인한 불황형 소비 트렌드가 강화되면서 수요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신주희 기자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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