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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록스타 CEO’ 개인기로 쌓아올린 모래성
일론 머스크·샘 뱅크먼-프리드 등
대중·투자자에 신화적 존재로 부상
안팎의 견제·이사회 관리감독은 소홀
인기 CEO 빈자리 ‘후임자 무덤’으로
모델 지젤 번천(왼쪽)과 화보를 찍은 샘 뱅크먼-프리드 전 FTX 최고경영자(CEO) [FTX 제공]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록스타다. 중국과 독일 등의 테슬라 공장에서 재킷을 벗어던지고 흥에 겨워 춤을 췄다. 대중들은 열광했다. 미국 대기업 CEO들이 정치, 사회적 발언을 거의 하지 않는 것과 달리 그는 정치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수많은 핵심 인사들이 머스크를 비판하며 테슬라를 떠나도 머스크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밴다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미국 개인투자자가 가장 많이 매수한 종목은 테슬라로 총 152억 달러에 달한다.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해외 주식 역시 테슬라로, 27억 4000만 달러에 달한다. 지속적인 주가 하락에도 꺾이지 않는 일편단심을 두고 루카스 맨틀 밴다리서치 연구원은 ‘종교적 매수’라고 표현했다.

파산보호를 신청한 FTX의 샘 뱅크먼-프리드 전 CEO는 가상자산 시장의 은혜로운 구원자이자 인기 연예인이었다. 지난 여름 ‘테라-루나’ 사태로 가상자산 업계가 흔들릴 때 경쟁사까지 선뜻 도우며 ‘가상자산의 모건’으로 불렸다. 1907년 금융위기 당시 뱅크런 진화에 큰 도움을 준 은행가 존 피어몬트 모건의 이름을 물러 받은 것이다.

뱅크먼-프리드가 수퍼모델 지젤 번천과 화보를 찍고 미 프로농구(NBA) 마이애미 히트 구단 홈구장 명명권을 사들이는 등 외도를 일삼아도 젊은 기업인의 야심으로 받아들여졌다.

대중과 투자자들 사이에서 이들이 신화적 존재로 떠오른 사이 안팎의 견제, 관리감독은 그만큼 소홀해졌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엔론 사태를 분석하며 2006년 ‘엔론의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기업문화’ 보고서를 낸 데니스 투리쉬 로버트고든대 애버딘경영대학원 교수는 “카리스마에 기반한 경영자들은 거품 같은 집단에 둘러싸여 있다”며 “그들 사이에 순응은 장려되지만 비판은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년 전 엔론사태의 값비싼 교훈은 어디로 = 머스크의 잦은 구설수로 인해 연초 이후 반토막 난 테슬라 주가와 이젠 수감자 신세가 된 뱅크먼-프리드의 모습은 CEO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진 기업의 성공가도가 얼마나 허망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머스크와 뱅크먼-프리드 이전에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가 있었다. 피 몇 방울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젊은 창업자에게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는 열광했다.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이교도로 낙인 찍혔다. 그 결과는 징역 11년형의 실리콘밸리 최대 사기극이었다.

미국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었지만 이제는 현금 창고가 바닥날 걱정을 하는 사무실 공유 기업 위워크의 애덤 노이만 전 CEO도 개인에 대한 인기로 기업 가치가 얼마나 부풀려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

원조격으로 올라가면 미국 역사상 최악의 회계부정으로 꼽히는 엔론 사태가 있다. 엔론 사태에 이어 이번 FTX 수습까지 책임진 존 J. 레이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이렇게 완전히 기업 통제에 실패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재무 정보가 하나도 없는 회사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간 투자자와 기업 모두 딱히 교훈을 얻진 못한 듯하다.

컨설턴트인 줄리아 홉스봄은 최근 블룸버그에 기고한 칼럼에서 “엔론 청산을 맡았던 레이가 2022년 FTX에서 다시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라며 “엔론, FTX, 테라노스 사태 등을 피하려면 기업가나 총수의 개인적 카리스마보다 건전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밥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CEO) [AFP]

▶인기 CEO의 빈자리는 후임자의 무덤=2년이 채 되지 않아 다시 디즈니 CEO로 돌아온 밥 아이거의 사례는 ‘핵심 인물’(key man)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이 경영 불확실성 요인이란 것을 보여준다.

약 15년 간 디즈니 CEO로 재임하며 디즈니를 ‘콘텐츠 제국’으로 키운 아이거는 지난해 12월 디즈니의 모든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불과 11개월만인 지난달 밥 체이펙 해임과 동시에 복귀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디즈니랜드 영업중단과 영화 개봉 차질 등의 어려움 속에 주가가 반토막 나자 디즈니 이사회는 새 CEO에게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고 서둘러 과거의 영광을 소환했다.

물론 과거 애플, 스타벅스, 구글 등 적지 않은 기업이 조직을 구할 적임자로 전직 CEO에게 구조신호를 보내왔다. 지난 4월 복귀한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의 경우 주가가 반등하면서 ‘구관이 명관’이란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몇몇 성공사례를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다. 1992년부터 2017년 사이 같은 직장으로 복귀한 CEO 167명의 성과를 추적한 2019년 연구는 일반적인 CEO보다 복귀한 CEO의 성과가 현저히 낮다고 결론 내렸다. 크리스 브링엄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 등 연구진은 “ ‘부메랑 CEO’는 기업을 앞으로 발전시키기보다 오히려 뒤처지게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특정 CEO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해당 CEO가 물러난 뒤 경영 승계를 하는 과정이 기업 전체의 리스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런던비즈니스스쿨의 랜덜 피터슨 교수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부족한 것은 기업 지배구조의 실패라는 것을 디즈니는 기억해야 한다”며 “핵심 인물에 의존하는데서 오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승계 계획은 이사회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월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열린 모델3 발표 행사에서 춤을 추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AFP]

▶머스크의 테슬라는 과연 변할까=블랭크샤인자산운용의 로버트 샤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브랜드 측면에서 머스크가 곧 테슬라”라고 지적했다. 그런 머스크가 달라져야 테슬라도 변화할 수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

무엇보다 테슬라엔 2인자가 없다. 테슬라 최고경영진은 머스크와 재커리 커혼 최고재무책임자(CFO), 드류 바그리노 최고기술책임자(CTO) 이렇게 단 3명이 사실상 전부다. 한때 시가총액 1조달러를 넘은 초거대 기업이 맞나 싶을 정도다.

반면 핵심 참모로 꼽히던 제롬 기옌 트럭 부문 사장과 앨 프레스콧 최고법무담당 대행이 지난해 잇따라 사표를 던졌다.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머스크에 직언을 하거나 그를 견제할 사람이 하나둘씩 사라진 것이다.

“테슬라 CEO가 되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던 머스크는 사실 스페이스X 등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심지어 테슬라 스스로 분기 보고서에서 “머스크는 테슬라에 상당한 시간을 보내고 있고 경영에 적극적이지만 모든 시간과 관심을 테슬라에 쏟는 것은 아니다”고 밝힐 정도다.

그럼에도 머스크와 테슬라 추종자들은 테슬라 본사에서 쪽잠을 자는 그의 헌신과 멀티태스킹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스페이스X의 2인자 그웬 쇼트웰 같은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스크 덕분에 승승장구하던 테슬라는 이제 머스크가 자초한 ‘머스크 리스크’를 처리해야할 과제가 놓여 있다.

민주당 소속의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 상원의원은 최근 테슬라 이사회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머스크와 이사회가 테슬라 주주에 대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으며, 트위터 인수가 테슬라에 이해충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새 CEO를 찾아 나선 머스크를 바라보는 트위터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모닝컨설트에 따르면 트위터를 신뢰한다는 응답보다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11월 말 기준 11.8%포인트 더 높았다. 이는 연초 -3.2%보다 더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특히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10월 이후 민주당 지지층에서 신뢰도가 급락했다.

미 경제매체 배런은 “머스크의 인수 이후 트위터가 광고를 하기 안전하지 않은 곳이란 우려가 퍼지면서 많은 기업들이 광고를 철회했다”며 “머스크가 트위터 파산을 막고 싶다면 브랜드(신뢰)를 되찾는 것이 핵심”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트위터의 새 CEO가 되는 것은 잠재 후보자들에게 엄청난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김우영 기자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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