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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시대 독립군처럼…헤르손 탈환 이끈 텔레그램 활동그룹
러 軍 위치 알리는 사진·좌표 전달
남녀 노소 곳곳서 러시아 군 감시
FSB 탄압에도 기밀 유지하며 활동
헤르손 시민 한명이 크름반도는 우크라이나 땅이라는 내용의 문구가 적힌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지난달 11일 우크라이나 군은 남부 전선 드니프로 강 북단의 헤르손 지역을 수복했다. 2월 24일 개전 직후 러시아 군에 헤르손이 점령된 지 약 10개월만이다. 감격적인 이 탈환을 도운 것은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 군의 정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한 헤르손 주민들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헤르손 탈환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군이 HIMARS를 이용해 러시아 군을 공격한 이면에는 텔레그램 채널로 공격 위치를 알리는 사진과 좌표를 전달한 헤르손 시민들이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인들은 집으로 (Ruzzians Go Home)’이라는 이름의 이 텔레그램 그룹에는 총 20여명의 회원이 속해 있었다. s를 z로 바꾼 이 이름은 러시아 군이 아군 식별을 위해 탱크, 트럭, 장갑차에 Z 표식을 한 것을 비꼰 것이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을 모두 포함하며 헤르손 시내 곳곳에 있었다.

이들은 러시아가 헤르손 점령 이후 우크라이나 통신망을 무력화하자 러시아제 심카드와 VPN을 이용해 트래픽을 위장했다. 한 시민은 아파트에서 주변 도로를 하루종일 확대하며 새로운 것을 확인하면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전달했다. 그는 “나는 전투 방법은 몰랐지만 적어도 이런 식으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의 시민들이 드니프로 강에서 물을 긷고 있다.[로이터]

막심이라는 이름의 자동차 수리공은 차량 수리를 해 준 러시아 장교와 함께 크름 반도를 3차례 여행하며 보고 들은 것을 우크라이나 군에게 전달했다. 심페로폴로 떠난 세번째 여행에서 대다수 러시아 군이 헤르손 시가 아니라 남쪽의 타라시브카에 주둔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세부사항을 우크라이나 군에 알렸다.

개전 3일 이후 IT 개발자이자 그룹의 일원인 올렉산드르는 헤르손 외곽 공항 근처 도로에서 군용 차량의 이미지를 촬영하고 좌표를 그룹에 올렸다. 다음날 아침 우크라이나 군 사령관 발리레 잘루즈니는 이 차량이 폭발하는 비디오를 게시했다.

우크라이나 군은 제보를 접수한 이후 통상 15분 이내에 공격을 감행했다. 한 우크라이나 여단의 정찰 장교는 “시민들의 제보가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지난달 16일 남부 헤르손을 수복한 뒤 아이들을 안아주고 있다. [로이터]

그룹의 한 구성원은 러시아 군 통신을 가로채서 화이트노이즈를 제거해 분석했다.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군의 위치를 파악한 뒤 포 사격을 지시하는 것을 알아채면서 미리 선제타격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들의 활동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말 러시아 비밀경찰 FSB 요원이 그룹 내 일원의 집에 들이닥쳐 그를 체포했고 뒤이어 다른 두 명도 붙잡혔다.

그룹 내 누군가 기밀을 누설한 자가 있다는 점을 간파한 뒤 이들은 매일 모든 회원들에게 구금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집에서 촬영한 비디오를 보내도록 했다.비디오를 보내지 않은 사람은 즉시 퇴출시켰다.

우크라이나 군의 한 보안 관계자는 “텔레그램 그룹이 없었다면 우리 군대가 러시아 탱크가 움직이는지, 저녁식사를 위해 어디로 가는지, 어디서 세탁을 하는지 알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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