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하루 100만원도 벌었는데”...불황에 ‘꿀알바’도 사라졌다
사라지는 명품 오픈런 대행
대행중개로만 월 100만원 부수입
최근 작년 10분의 1로 수요 줄어
명품소비 줄고 대행막는 정책 영향
2020년 5월 롯데백화점 본관 앞에 명품 구매를 위해 대기줄이 늘어서있다. [연합]
최근 백화점 명품 브랜드관 앞. [연합]

“의뢰인이 기분 좋을 때는 보너스로 하루에 100만원을 주기도 했죠. 월평균 수입은 200만원 정도 됐습니다. 지금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배달 일을 하다 쉬고 있습니다.” 권모(22)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여행길이 닫히자 사람들의 발길은 국내 백화점 명품관으로 향했다. 대기줄이 길어지자 사람을 고용했다. 시간만 있다면 줄을 서는 것만으로도 하루에 10만원 이상 벌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오픈런 대행을 위해 몰렸다. 오픈런 대행은 매장 오픈 시간에 맞춰 줄을 대신 서주고 사례비를 받는 아르바이트다. 전문 대행업체는 물론 중개 플랫폼까지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이 바뀌었다. 불황에 소비자의 지갑이 닫히면서 명품 오픈런 대행 아르바이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알바에 대행 플랫폼까지...“지금은 쉬어요”
지난해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명품관 앞에서 고객들이 개점 시간을 앞두고 입장 대기 중이다. [연합]

김모(28)씨는 명품 오픈런 열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부업으로 발을 들였다가, 이내 본격적으로 오픈런 대행 중개에 뛰어들었다. 김 씨는 “당시 몸이 안 좋아서 쉬던 중 용돈이나 벌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며 “막상 해보니 온라인으로 오픈런 대행 주문을 받고, 이걸 개인 아르바이트생에게 소개해 주는 중개 형태만으로 월 100만원 수입을 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이맘때가 ‘절정’이었다. 지금은 주말에도 1~2건 들어올까 말까”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아직 오픈런 중개 창구는 열어두고 있지만 다른 일을 본업으로 삼아 돈을 벌고 있다.

이모(26)씨는 서울에서 오픈런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며 ‘팀’까지 꾸렸다. 때에 따라 10시간 이상 오래 기다려야 하다 보니 팀원들끼리 교대를 해가며 줄을 서고 수입을 나눴다. 이 씨는 “한창 때는 3~4명 소규모 팀은 물론 10명 이상 대규모 팀도 많았다”며 “작년에는 무조건 주 6일씩 일했는데 결국 올해 가을쯤 팀이 해체됐다. 3~4월 쯤부터 오픈런 수요가 줄더니 하반기 들어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는 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 씨는 “명품 시계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단골이 되고, 원하는 물건을 잘 구해오면 보너스로 수십만원씩 챙겨주기도 했다. 오픈런 대행이 유명해지자 50대 이상 어르신들도 많이 하셨다”며 “최근에는 작년의 10분의 1 수준으로 주문이 줄었다”고 아쉬워했다.

온라인 사이트에는 여전히 오픈런 대행을 하겠다는 이들이 많다. [중고나라 캡처]

중고나라에 따르면 11월 기준 해당 홈페이지에서 오픈런 대행자를 구하는 사람의 수요는 전년 동월 대비 60% 이상 줄었다. 반면 ‘오픈런 대행 해준다’며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오픈런 대행을 원하는 명품 구매자들은 중고나라, 당근마켓, 카카오톡 오픈 채팅 등을 통해 대행자를 찾는다. 오픈런 대행 중개를 위해 오픈 카톡방을 운영하는 최모(30)씨 또한 “오픈 카톡방에 모인 인원은 비슷한데 주문은 반 토막 이하”라고 전했다. 한때 법인 설립 직전까지 갔던 일부 명품 오픈런 대행 중개 플랫폼들도 수익성 악화로 사업을 전면 중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불황에 명품 소비↓ 대행 막는 정책 결정타
[연합]

올해를 강타한 고물가, 고금리에 소비자의 지갑이 닫히면서 명품 오픈런 대행 수요도 덩달아 크게 감소한 결과다. 경기 둔화가 본격화되자 명품 소비부터 확연히 줄었다. 최근 롯데멤버스가 리서치 플랫폼 라임을 통해 지난달 11일~25일 전국 성인남녀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물가 부담으로 최근 가장 먼저 소비를 줄인 품목으로 명품(26.1%)을 뽑았다.

실제 지난 한 해 무려 37.9% 고공행진을 했던 백화점 명품 매출 성장률은, 하반기 들어 급격히 둔화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백화점 해외유명브랜드 올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월 26.4%, 9월 14.2%, 10월 8.1% 증가하는데 그쳤다.

여기에 일부 명품 브랜드들의 대행 금지 대책이 찬물을 끼얹었다. 대행을 통해 명품을 구매할 수 없도록 막으면서 오픈런은 일부 남아있지만 ‘오픈런 대행’은 사라진 것이다. 일부 롤렉스 매장은 개점 시간 전화 예약, 웨이팅 10부제를 도입했다. 샤넬은 지난해 10월부터 인기 제품의 1인당 구매 수량을 1년에 1점으로 제한하고 있다. 오픈런 대행을 했던 한모(29)씨는 “4월부터 압구정쪽 브랜드 매장들이 대행을 막는 정책을 강화했고 9월 이후에는 사실상 유명 백화점 내 브랜드 대부분이 대행이 활동할 수 없게 조치를 취했다. 그때부터 대행 아르바이트는 자취를 감췄다”고 전했다.

이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명품 구매에 추가 비용을 지출할 여력이 줄어든 상황이다. 절대적인 명품 수요는 어느 정도 유지되지만 대행 아르바이트를 쓸 정도의 경제적 여유는 없기 때문에 사라지는 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오프라인 백화점에 몰리던 명품 수요가 온라인 채널로 다양화된 것도 한 가지 이유다. 오픈런 대행이 한창이던 때는 아직 온라인 명품 사이트를 통한 구매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박지영 기자

park.jiyeo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