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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법의 ‘0.3% 비율’…정용진 픽 ‘순후추콘’ 이렇게 만들었다
2주간 38만개 팔린 ‘순후추콘’
심현영 제스트코 대표 인터뷰
“80번 넘는 시도 끝 찾은 0.3% 비율”
“직원들 혀, 우리 회사의 보물”
심현영 제스트코 대표가 1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심 대표는 갓 나온 아이스크림을 가장 먼저 먹고 싶어 공장까지 찾아가는 열정의 소유자다. 그는 직원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작은 회사지만 반짝반짝거리는 보석같은 직원과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나눈다”며 “우리 회사의 중심은 직원들의 혀”라고 웃으며 말했다. 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성남)=김희량 기자] “엄마, 요즘 ‘후추러버(후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들고 다니며 뿌려 먹는 사람도 있어. 시대에 맞춰 가야지!”

최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인스타그램에도 등장하며 존재감을 알린 ‘이것’. 출시 2주 동안 38만개가 팔리며 겨울 아이스크림 바람을 일으킨 ‘순후추콘’이다. 이 기발한 맛을 탄생시킨 곳은 식품유통업체 제스트코. 헤럴드경제는 심현영(45) 제스트코 대표를 언론 중 처음으로 13일 만나 순후추콘의 탄생 뒷이야기를 들었다. 심 대표는 가장 먼저 중3인 큰딸의 이야기부터 들려줬다. 그가 순후추콘을 제작하게 된 계기가 된 말이기도 하다.

순후추콘의 시작은 ‘팬심’이었다. 심 대표는 종합식품기업 오뚜기의 나눔 경영 철학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오뚜기는) 어떻게든 함께 일해 보고 싶은 회사였다. 다만 아이스크림과 어울릴 제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심 대표는 운전하다 들은 딸의 한마디에서 힌트를 찾았다. ‘후추’였다.

‘0.3%’ 비율, 이렇게 찾았다

제품 개발부터 출시까지는 6개월, 준비기간을 포함해 총 2년이 걸렸다. 곰표 크림치즈바, 허니버터와플콘 등 이미 성공한 선례를 만든 제스트코였지만 쉽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순후추의 ‘비율 찾기’였다. 많이 넣으면 목구멍이 따가웠고, 적게 넣으면 후추맛이 안 났다.

여느 때처럼 전 직원 6명이 총출동해 머리를 맞댔다. 제스트코에는 R&D(연구·개발)부서가 없다. 모두가 기획자이자, 제품개발자다. 철판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앞에 두고 가장 맛있는 후추 비율을 찾아내는 블라인드 테스트까지 진행했다. 심 대표는 “저랑 직원들이 평생 먹을 후추를 다 먹었을 것”이라며 “식도에서 위까지 내려가는 알알함을 느끼면서 최적의 비율인 0.3%를 찾았다”고 웃었다. 순후추콘은 80번이 넘는 시도 끝의 결실이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순후추콘’ 인증샷. [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다음 관문은 오뚜기의 승인이었다. 여러 ‘컬래버 제품’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생긴 심 대표였다. “저희를 믿어보세요.” 오뚜기 임원과 회장의 맛 테스트를 통과한 후 이렇게 순후추콘은 세상으로 나왔다.

순후추콘의 출시일은 왜 11월 16일이었을까.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콘(아이스크림의 원뿔형 과자 부위)이 맛있어지는 계절, 다음날(17일)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라는 점을 겨냥했다. 심 대표는 “콘의 눅눅함이 덜하고 와플처럼 찍어 먹기 좋은 시기가 11월부터”라며 “수능을 끝낸 수험생이 알싸한 맛으로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공장 가 본 사람만 아는 ‘순후추콘’ 비밀은…

순후추콘에 대한 기대가 컸던 심 대표는 첫 생산된 아이스크림을 직접 맛보러 공장까지 갔다. 그는 공장을 가본 사람만 안다는 비밀도 알려줬다. 갓 나온 순후추콘은 사먹을 때보다 좀 더 맵다는 귀띔이었다. “사실 너무 맵지는 않을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신의 한 수가 있더라고요. 순후추콘이 소비자에게 도착할 동안 ‘숙성’된다는 거였어요.”

이 같은 제스트코의 성공은 직원을 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제스트코에서는 맛 보는 게 일이다. 끊이지 않았던 먹고 떠드는 소리에 같은 층을 쓰는 다른 회사들로부터 이상한 회사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이에 대해 심 대표는 ‘직원의 혀가 회사의 중심’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오롯이 지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맛없는 건 버리라고 해요. 다 먹으면 혀가 둔해지거든요. 반짝반짝 보석 같은 직원들의 귀한 혀를 지켜주는 게 제 역할이죠.” 이런 이유로 제스트코의 면접 질문 중 하나는 “잘 먹나요”다. 2년 전 여름 2박 3일 제주로 다녀온 워크숍에서 전 직원은 60가지가 넘는 음식을 맛보고 왔다고 한다.

심현영 제스트코 대표가 1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박해묵 기자

20대 때 작은 마케팅대행사를 다녀 본 심 대표는 작은 회사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잘 아는 친숙한 브랜드와 협업이 필수적이었다. 그는 협업하는 브랜드에 로열티를 지불하되 세상에 없던 제스트코의 맛을 만드는 방식을 선택했다.

시작은 강릉초당순두부아이스크림이었다. 칼로리 적은 몽글몽글한 아이스크림을 딸들에게 먹이고 싶던 그는 반찬 재료인 순두부를 얼려도 보고 우유랑 갈아도 보며 맛을 찾았다. ‘안 팔리면 우리가 먹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강릉초당순두부를 평소 즐겨먹던 심 대표는 곧바로 강릉시청으로 향했다. 이어 ‘강릉초당’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회장님을 찾아가 어렵게 허락을 받아냈다.

심현영 제스트코 대표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순후추콘’ 인증샷. 인기 때문에 자신도 사먹어야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심현영 대표 인스타그랩 캡처]

제스트코의 숨겨진 조력자는 심 대표의 아이들이다. 17년 동안 육아에 전념하다 3년 전 회사를 인수하며 일터로 복귀한 심 대표였다. 커피·제과제빵은 물론 요리교실을 다니며 먹이고 먹는 즐거움을 느껴 본 경험은 상상력의 양분이 됐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빠르고 직설적인 피드백을 줬다. 심 대표는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걸 먹을지 함께 고민해 온 두 딸은 저희 회사의 비공식 제품개발자인 셈”이라며 미소를 보였다.

‘세상에 없던 아이스크림’ 끝나지 않았다

맛을 발견하는 즐거움 뒤편에는 보이지 않는 어려움도 있었다. 반년 넘게 준비한 제품이 단가나 시장 상황에 따라 엎어지는 일이 예사였다. 온라인은 물론 편의점, 시장까지 처음부터 뚫어야 했다. 하루에도 수백개의 제품을 포장해 배송시키다 어깨에 석회가 생기는 바람에 의사로부터 ‘뭐 하시는 분이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대표도 발로 뛰어야 탄탄한 제품이 나오니까요. 대표라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요.”

올해에는 어린이날을 맞아 제스트코는 전국푸드뱅크에 1억원 상당의 오레오아이스크림을 기부했다. “참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이거든요. 기부하고 온 날 혼자 택시 안에서 눈물 흘릴 정도로 기뻤답니다.” 오뚜기를 닮고 싶었던 심 대표는 이제 제스트코의 색깔로 세상을 만나고 있다.

제스트코는 내년 상반기에도 세상에 없던 아이스크림을 선보일 예정이다. “뭐냐고요? 하아~ 아직은 비밀이랍니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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