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력없는 곳은 주민간 갈등의 골
무이자라던 이주비 이자부담까지
사업장 따라 시공사와 마찰도
서울 주요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지가 크게 뛰어버린 금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력이 있는 사업지는 사업비를 조기상환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곳에서는 이자 부담으로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서울의 한 재건축 공사 현장. [연합] |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대출금리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색 여파로 정비사업에 나선 단지들이 사업비 대출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단지는 조합이 빌렸던 대출금을 조기 상환하는 형식으로 금리 부담을 낮추고 있는 데 반해 자금 여력이 부족한 단지는 올라간 이자 탓에 조합원 혜택을 축소해 주민 사이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1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아파트 리모델링사업을 추진 중인 서울 강동구 둔촌현대1차 리모델링조합은 최근 대출받았던 사업촉진비 일부를 조기 상환했다. 앞서 조합은 대출을 받은 조합원을 대상으로 조기 상환 의사를 묻는 사전 수요조사에 나섰는데 상환조건에 맞는 조합원 30명 중 23명이 실제로 대출금 21억원을 상환했다.
조합원들이 이처럼 대출금 조기 상환에 나선 것은 최근 대출금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10월까지만 하더라도 대출이자는 4.11%에 그쳤는데 한 달 사이에 금리가 껑충 뛰어 6% 중반대까지 치솟았다.
한 조합원은 “분담금 납부에 어려움을 겪었던 조합원들이 사업촉진비 대출을 받았는데 최근 대출이자가 큰 폭으로 오른다는 소식에 일찍 대출을 상환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게 됐다. 그나마 조합에서 대주단과 협상에 성공해 최초 계약에는 없던 중도 상환이 가능해졌다”며 “대출금리가 더 오른다는 소식에 여유가 있을 때 중도 상환을 하겠다는 조합원들이 더 나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대출을 조기 상환해 이자 부담을 낮추는 정비사업단지는 점차 늘고 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정비사업 조합도 최근 조합원 설문조사에서 “사업비 대출을 일부라도 조기 상환하자”는 의견이 절반을 넘어 대주단과 사업비 대출 상환조건을 협상 중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사업 초기 단계인 사업장에서는 최근 변동금리 대출을 받는 사례가 많아 조기 상환이 가능하다면 상환하는 것이 더 이득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늘어난 대출이자 부담 탓에 조합 내 갈등이 이어지는 단지도 목격된다. 현재 재개발공사가 진행 중인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은 과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조합이 무이자로 제공했던 이주비 대출을 유이자로 전환키로 했다. 2019년 이주 당시 조합에서는 감정평가액의 40%까지 무이자 대출, 20%는 유이자 대출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최근 금리 부담 탓에 이를 모두 유이자 대출로 전환하겠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3년간의 이자를 소급해 지급하라는 내용이 전해지면서 조합원 사이에서 불만이 더 커졌다. 한 조합원은 “계산해보니 일시 지급해야 하는 소급분 이자가 600만원에 달한다”며 “조합의 예정대로 오는 2026년에 입주한다고 하면 추가로 내야 하는 돈이 1500만원 이상이다.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밖에도 서울 서초구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조합 역시 최근 이주비 대출이자 대납을 중단하고 조합원들이 이자를 앞으로 직접 납부해야 한다고 통보했고, 경기 성남시의 한 재건축조합은 올라간 금리 탓에 시공사와 계약 협상을 잠정 중단했다.
정비사업 현장마다 고금리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는 상황에 대해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사업장마다 조합의 추가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대출을 받아도 이자가 문제여서 조합원들이 직접 돈을 모으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반대로 여유가 없는 단지의 경우에는 시공사와의 마찰이 생겨 시공사로서도 난감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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