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마신 학교 후배와 공원 화장실에서 성관계한 남성

“나랑한 거 싫었어?” 물음에 “아니” 대답 반복

1심 무죄 선고, 피해자 항거불능 상태 인정 안해

2심은 징역 3년…“사후 표현이 사전동의 될 수 없어”

피해자 ‘폭탄주’ 10잔~13잔 마셔…“의사표시 불가능”

가해자 “술마셔서 그랬다, 미안하다” 사과 문자도 근거

피해자가 무고할 정황 없어, 금전 목적 합의도 요구안해

성관계 후에 “싫었어?” “아니”대화했어도…법원, “성폭행 유죄”
[연합]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술을 마신 여성 친구와 성관계한 남성이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가해자는 성관계 후 “내가 너랑 한 게 싫었느냐”고 물었고, 피해자는 “아니”라고 했지만, 법원은 이를 사전 동의로 볼 수 없다고 봤고 술에 취한 상태를 이용해 성관계한 여러 정황을 고려해 유죄를 선고했다.

대구고법 형사1부(부장 진성철)는 준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40시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과 장애인복지시설 취업제한 3년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1월 경북 구미의 한 공원 여자화장실에서 술에 취한 상태였던 초등학교 후배 여성 B씨를 성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둘은 식당에서 술을 마셨고, A씨는 B씨가 귀가하는 것을 돕겠다며 동행했다. 술에 취한 B씨는 집 근처 공원 화장실에 들렀고, A씨는 B씨를 따라들어가 성관계했다. A씨는 B씨가 먼저 불렀다고 주장했다.

1심은 B씨가 술을 마시긴 했지만,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폐쇄회로(CC)TV 영상을 봤을 때 A씨와 B씨가 여자화장실로 이동하는 자세를 보면 거동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상태가 아니라는 점, 피해자가 헤어지면서 혼자 서 있는 채로 A씨를 껴안는 모습과 대화를 나누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는 모습 등을 고려했다. 특히 A씨는 사건 발생 직후 피해자에게 “혹시 내가 너랑 한 거 싫었어?”라고 물었고 B씨가 “아니”라고 여러번 대답한 대화 내용을 볼 때 피해자가 정상적으로 의사표현을 했다고 봤다.

하지만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피해자가 A씨를 무고할 동기가 없는데다, A씨가 B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술을 마셔서 그랬다, 미안하다”고 사과한 것은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은 근거라고 판단했다. 결정적으로 A씨 증언에 따르더라도 피해자가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10잔에서 13잔 정도 마신 상태였기 때문에 정상적인 의사표현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 당시 19세였던 B씨에 대해 “피해자는 성인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본인의 주량을 잘 모르는 상태였다”고 했다.

B씨는 A씨가 사과를 하자 경찰에 전화해 CCTV를 확인해줄 것을 요청했고, 이 영상을 확인한 뒤 A씨를 고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과정에 문제가 없고, 피해자가 합의를 요구하지 않아 금전을 목적으로 무고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설령 A씨가 “너랑 한 게 싫었느냐”고 물은 데 대해 B씨가 “아니”라고 했더라도, 사전에 동의를 하지 않은 것을 소급해서 성관계를 하겠다는 의사로 볼 근거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밖에 공중화장실이 부모님이 거주하는 아파트 근처이고, 범행시각이 밤 9시여서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성관계를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장소라는 점도 감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