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 “동양서 ‘테러리스트’가 왔다” 피아노 다 때려부쉈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백남준 편]
비디오 아트 선구자
.
편집자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을 함께 살펴봅니다.
TV 안경을 쓰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백남준의 모습.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이 남자는 소년처럼 웃었다.

그는 골동품점에 다녀왔다. 무슨 불상(佛像) 하나를 업고 왔다. 가문의 마지막 지원금을 싹 털었다고 했다. 마음에 들어? 내가 물었다. 응. 너무너무. 그가 말했다. 뿌듯해했다. 시아버지가 남긴 1만 달러는 그가 사들인 갖은 텔레비전과 골동품, 정체 모를 불상 값으로 동났다. 우리 부부는 전 재산을 다 썼다. 이제 빈털터리였다. 우리 뭐 먹고 살아? 내가 물었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가 말했다. 무슨 노래 가사 같았다.

우리는 작업실 바닥에 나란히 누웠다. 팔자 좋게 팔다리를 쭉쭉 폈다. 나, 그때 생각난다. 언제? 내가 당신한테 처음으로 용돈 준 날. 아하, 그날? 힘들게 번 돈이었는데, 당신이 반나절 만에 다 썼었잖아. 내가 그랬나. 당신, 신나게 밖으로 나가더니 엄청 비싼 치즈케이크 한 통을 다 먹고 왔어. 아, 나도 기억난다. 그거 엄청 맛있었어. 당신 하는 짓이 어찌나 귀여운지, 나도 같이 웃었잖아. 우리 둘은 킥킥댔다. 영문도 모른 채 따라온 불상도 함께 웃었다.

1974년 미국 뉴욕.

이 남자는 네 번째 개인전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자기 작품을 하나둘 들고 왔다. 문제가 있었다. 전시장이 생각보다 더 컸다. 나는 그의 입이 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원래 전시장 천장에 작은 TV를 주렁주렁 매달려고 했다. TV마다 물고기 영상을 띄우려고 했다. 그렇게 해 물고기가 하늘에서 팔딱대는 이미지를 만들 계획이었다. 일종의 장식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 남자라도 우주 같은 천장을 가득 채울 TV를 구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여보, 어쩔 수 없잖아. 나는 그를 토닥였다. 그렇지? 그는 뜻을 내려놨다. 문제가 또 있었다. 그의 작품은 다 들어왔는데도 빈 곳이 있었다. 한쪽 벽이 휑했다. 이 남자는 그 공간을 쳐다봤다. 가만 보니 알 수 없는 음악을 흥얼대고 있다. 고뇌가 아니었다. 그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또 무슨 작당 모의를 할지 상상하는 듯했다.

백남준, TV 물고기 [백남준아트센터]

이 남자는 악동이었다.

그는 '예술 깡패'를 자처했다. 언론은 그에게 대놓고 정신병자라고 했다. 우리는 그 신문을 보며 배를 잡고 폭소했다. 하긴, 이 남자는 대단하긴 했다. 자기 머리를 페인트 통에 푹 담근 후 장판만한 종이 위를 뒹굴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무대에 놓고는 갑자기 마구 때려 부쉈다.

아직 기억한다. 1967년 공연에선 갈색 머리털의 미인 첼리스트와 등장했다. 이 여성은 갑자기 옷을 다 벗어 던지려고 했다. 결국 공연 도중 경찰 무리에게 잡혀갔다. 그도 경찰 조사를 받고 왔다. "이게 외설이지, 무슨 예술이냐?"는 식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하여튼 이 남자가 하는 생각은 귀여웠고, 하는 짓은 섹시했다. 나는 그가 공연 중 자기 구두에 막걸리를 채워 원샷하는 모습을 보고 확 반했었다.

텅 빈 벽을 보고 있던 이 남자가 고개를 휙 돌려 나를 쳐다봤다.

무언가 떠올린 듯한 그는 어떤 입 모양을 내게 보여줬다. 입술을 쭉 뺐다가 다시 입을 살짝 벌렸다. 그는 그런 장난을 자주 쳤다. 머릿속 발칙한 상상을 놓고 이렇게 슬쩍 힌트를 줬다. 그가 무성(無聲)으로 하는 말은 두 글자였다. 무…어…인가? 이 남자가 벌거벗은 첼리스트를 다시 떠올리나 했다. 그녀 이름이 샬롯 무어맨이었다. 누드 첼리스트를 앉히면 늘 그랬듯 화제 몰이는 확실할 것이었다.

무어맨? 내가 연락해? 그에게 물었다. 그는 킬킬댔다. 아니, 무어가 아니고 붓다를 말한 거야. 그는 내게 속삭였다. 붓다? 그러고 보니 무어와 붓다는 말할 때 입 모양이 비슷하긴 했다. 당신, 그때 그 골동품점에서 사 온 불상 말하는 거야? 응. 그걸 여기에 둔다고? 맞아. 진짜 최고로 재밌을걸. 그는 기어코 불상을 들고 왔다. 갑자기 생각난 듯 불상 옆에 TV와 비디오카메라를 함께 뒀다. 전시 준비를 아슬아슬하게 끝마쳤다. 그땐 우리 둘 다 몰랐다. 이 불상이 어떤 일을 할지.

백남준(1932~2006)은 그렇게 TV와 불상을 나란히 둡니다.

황당한 일도 그 수준을 넘어서면 파격적인 일이 됩니다. 생뚱맞은 일도 어느 경지에 다다르면 경이로운 일이 됩니다. 새로운 예술은 기적처럼 또 탄생합니다.

TV 보는 부처, 무언가 묘하다
백남준, TV 부처 [전북도립미술관]

부처TV를 보고 있지요.

TV는 비디오카메라에 담긴 부처의 모습을 실시간 중계합니다. 부처(초기작)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자세를 취합니다.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두 번째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모양입니다. 수행을 방해하는 악마를 무찌른 뒤 땅을 짚어 지신(地神·땅의 신)을 부르는 순간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는 지금 TV 앞에서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익히 알려진 보리수 그늘 밑이 아니고요. 첨단 문물 앞에서 성도(成道)를 향해 나아간 겁니다. 백남준의 'TV 부처'입니다.

"부처와 TV. 정말 이게 다야?" 전시장에 온 사람들은 이 작품 앞에 몰립니다. TV는 부처 뒤에서 눈을 크게 뜬 방문객의 모습도 그대로 비춥니다. 누군가는 고개를 쑥 내밀고, 또 누군가는 손을 흔듭니다. "너, 저기 나온다!" 현장은 웃음소리가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새 작품의 일부로 물들었습니다.

백남준, TV 부처 [전남도립미술관]

이 작품은 재미만큼 의미도 큽니다.

'TV 부처'는 뜯어보면 조화의 화신(化身)입니다. 동양의 명상 문화서양의 과학 기술이 어깨동무를 한 모습입니다. 동양적 지혜의 상징인 부처가 서양 현대 문명인 TV를 봅니다. 부처는 TV가 꺼지지만 않는다면 억겁의 시간 동안 자신을 마주합니다. TV의 도움으로 무한히 자아 성찰을 이어갈 수 있는 겁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저거 봐. 우리도 쓸데없이 서로 견제하지 말고 같이 무언가를 해보자"는 깨달음을 줍니다.

사실 경제·안보 등 분야는 어쩔 수 없다지만, 예술만큼은 같이 가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간 동서양 예술계는 당연한 듯 서로에 대해 의식하고 경쟁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TV를 예술판에 주연급으로 끌어당긴 일도 흥미롭습니다. 옛 예술가 중 상당수가 카메라를 째려봤듯, 당시 예술가 가운데 대부분이 TV를 떨떠름하게 봤기 때문이지요. 대놓고 배척하고 아예 "TV를 파괴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백남준, TV 부처 [네덜란드 스테델레이크 미술관]

더 나아가 옛것(불상)요즘것(TV)의 '케미'는 현대 사회에 고민할 거리도 줍니다.

불상 옆에 설 수 있는 인간, 그 모습을 그대로 비춰주는 TV는 옛것(불상)을 품은 인류와 첨단 기술(TV)이 어떻게 공존해야 가장 '예술'적으로 어울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또 하나. 실재의 불상이 TV 속 가상의 불상을 보는데요. TV 속 가상의 불상은 그런 실재하는 불상을 바라봅니다. 서로서로 지긋이 쳐다보는 겁니다. 이 묘한 구도는 실재와 가상 영역에 대해 성찰도 하게끔 합니다. 백남준은 'TV 부처'를 만든 그해, 직접 법의를 입고 등장해 TV 앞에 앉는 퍼포먼스도 선보였습니다.

TV를 예술판에 쑥 끌어들이다
‘자석 TV’를 설명하는 백남준의 모습.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 선구자입니다.

비디오 아트에선 TV를 캔버스나 석고로 봅니다. 첨단 기술과 기기를 붓과 조각칼처럼 씁니다. 가령 TV에 다큐멘터리를 틀어놓고 전시하면 TV는 캔버스가 됩니다. TV를 어떻게 쌓고 배치한 뒤 이를 내놓으면 TV는 석고상이 됩니다. TV에 영상을 틀고 나름의 방식대로 설치하면 이는 혼합 미술로 재탄생합니다.

비디오 아트의 가장 큰 특징은 생동감입니다.

무엇보다 TV 속 영상은 시각을 극대화하기에 탁월하지요. 장면 전환 등 촬영기법으로 역동성을 더하고, 컴퓨터 그래픽(CG)과 자막 등 특수 효과를 입혀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영상은 시각과 함께 새로운 감각도 끌고 오는데요. 청각입니다. 영상은 음악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곳에 원하는 효과음을 마구 둘 수 있습니다. 'TV 부처'의 사례처럼 관람객이 직접 시각, 청각적 효과를 더할 수도 있습니다. 걸려있고 서 있기만 한 그림이나 조각상은 흉내도 못 낼 일입니다.

가만 보면 TV는 생김새도 흥미롭습니다. TV는 곧 죽어도 사각형인데요. 크기만 제각각 다릅니다. '사각형 패턴'이 있는 게 꼭 레고 블록 같습니다. TV를 모으면 레고처럼 특유의 형질은 살린 채 갖은 경우의 수로 배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TV 3개를 이으면 첼로 모양을 짤 수 있고, TV 수백 개를 쌓고 붙이면 로켓 모양도 만듭니다. 비디오 아트의 이런 생동감은 보는 이의 몰입도를 높입니다.

백남준, TV 첼로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트는 예술의 궤적을 넓히기도 하는데요.

이 말을 더 구체적으로 하면요. 예술가는 비디오 아트를 통해 작품 주제를 '풀어서' 보여줄 수 있습니다. TV 속 영상에는 '길이'가 있지요. 마음만 먹으면 1시간, 더 나아가 수백 시간도 담을 수 있습니다. 영상 속 시공간을 통해 말하고 싶은 바를 차근차근 보여줄 수 있는 겁니다. 그뿐인가요. 돈만 있다면(!) TV를 산처럼 쌓아 거대로봇도 비교적 수월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TV는 그렇게 그림과 조각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그림으로 치면 우주 같은 캔버스, 조각으로 치면 태산 같은 석고상이 된 겁니다.

백남준, 촛불 TV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로 새로운 미술 시장을 엽니다.

"같이 합시다!" 백남준은 TV에 손을 내밉니다. 붓과 조각칼을 내려놓습니다. 첨단 기술을 배척하지 않고, 외려 예술의 영역으로 빨아들입니다. 백남준은 TV를 훌륭한 도화지로 봅니다. 첨단 기술이 찍어내는 온갖 이미지를 담기에 최고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바보상자'가 아니었습니다. "콜라주가 유화를 대체했듯, 음극선관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 백남준이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선구자다운 선구적 전망이었습니다.

사실 고전 미술은 첨단 기술에 차츰 잠식되고 있었지요. 팝아트 등 새로운 시도도 있었으나 명확한 호불호가 문제였습니다. 카메라가 막 나왔을 때 그랬듯, 예술계 인사 대부분은 TV를 적으로 취급했습니다. 하지만 TV의 영향력을 나날이 커졌습니다. 1960년대 미국의 TV 소유 가구 비율은 90%에 육박했습니다. TV의 폭발적인 배급에 "이제야말로 예술은 죽었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온 시기였습니다. 백남준이 때마침 TV를 가정집이 아닌 전시장에 두지 않았다면, 예술계는 더욱 긴 암흑의 터널을 통과했을지도 모릅니다.

백남준, 칭기즈 칸의 복권 [백남준아트센터]

"돈이 없어서요."

사실 백남준이 비디오 아트에 뛰어든 데는 헛웃음이 따라오는 계기가 있는데요. 백남준은 "돈이 없어서 비디오 아트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돈이 없어 어떤 예술도 하기 어려우니, 아예 남들은 비싸서 손도 못 대는 예술을 하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범인(凡人)이면 돈이 없으니 예술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판단했을 텐데, 반대로 어차피 빚을 낼 거라면 화끈하게 내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하여튼 재미있는 양반이었습니다.

“오웰·키플링, 당신들 말 다 틀렸죠?”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일부 캡처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스튜디오]

1984년 1월 1일 정오, 미국 뉴욕.

TV가 치지직 소리를 냅니다. 같은 시간 샌프란시스코는 오전 9시,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은 오후 6시, 서울은 하루가 지난 1월 2일 새벽 1시였는데요. 이 지역의 TV도 갑자기 화면을 바꿉니다. 전 세계 예술가 100여명이 등장합니다. 현대 음악가의 전설이 된 존 케이시, 프랑스 출신의 유명 배우 이브 몽땅, 현대 무용의 거장 머스 커닝햄,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등입니다. 백남준의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입니다.

이들은 각자 나라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칩니다. 유쾌한 쇼입니다. "좋은 아침, 조지 오웰. 당신이 암울하게 내다본 1984년이 밝았어요. 우리는 여전히 재미있는데요? 우리는 이 즐거움을 TV로 공유할 수도 있다고요. 당신의 예측은 조금 틀린 듯하네요?"란 식의 내용입니다. 전 세계 약 2500만명이 이 생중계를 봅니다.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일부 캡처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스튜디오]

백남준은 1984년을 맞은 이날을 고대했습니다. 이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서요.

백남준은 TV 등 첨단 기술이 '우리 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꺼내 듭니다. 활력과 창조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겁니다. 38년 전인 1946년. 조지 오웰은 소설 '1984'를 씁니다. 오웰은 그 당시로는 먼 미래인 1984년을 미디어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dystopia)로 묘사했습니다.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는 '빅 브라더'로 개인 일상을 24시간 감시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무한한 CCTV의 힘을 쥔 빅브라더는 국민이 숨죽여 말하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첨단 기기가 독재의 수단, 광기의 증폭제가 될 것으로 점쳤습니다.

백남준은 '디스토피아 전도사' 오웰에게 자기 방식으로 "아닌데? 아닌데?"라며 농담을 한 겁니다. 당시 백남준은 "TV는 인간을 폭압하는 수단이라고 한 오웰에게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반대 뜻을 전했다. 1984년에 오웰이 틀렸다고 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며 즐거워했지요.

백남준, '바이바이 키플링' 일부 캡처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스튜디오]
백남준, '바이바이 키플링' 일부 캡처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스튜디오]

2년 후인 1986년.

뉴욕과 서울, 일본 도쿄의 TV에서 또 갑자기 미국, 한국, 일본 각각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나옵니다. 동양과 서양의 모습이 뒤죽박죽 소개됩니다. 미국 영화배우 딕 카벳, 일본 영화 음악의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도 볼 수 있습니다. 제목은 '바이바이 키플링(Bye Bye Kipling)'입니다. 백남준은 이 영상을 통해 키플링에게 "외계인이 이 어지러운 영상 속 동양과 서양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결국 제3의 생명체가 보면 우린 다 똑같아요. 당신이 틀렸지요? 굿바이, 키플링!"이라며 손 키스를 날린 격입니다.

백남준, '바이바이 키플링' 일부 캡처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스튜디오]
백남준, '바이바이 키플링' 일부 캡처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스튜디오]

'정글북' 등을 쓴 영국 작가 키플링이 한 말,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다. 동양과 서양은 절대 어울릴 수 없다"를 정조준한 겁니다. 이 영상을 쏜 1986년은 키플링이 죽은 뒤 50년이 된 해였습니다. 다만 이 영상에는 우리나라 심기를 건드리는 장면도 제법 등장했는데요. 가령 1등으로 뛰는 일본인 마라토너의 등장 등입니다. 일본을 아시아 문화의 '원톱'으로 두는 듯한 뉘앙스였지요. 우리나라 언론은 이에 백남준을 비난키도 했습니다.

백남준,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또 2년 후인 1988년.

1988 서울 올림픽을 맞아 들뜬 한반도에 초대형 TV 탑이 들어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온 이 작품은 동양 불탑과 서양 바벨탑을 섞은 듯했습니다. 백남준의 '다다익선(The More, The Better)'입니다. 높이 18.5m, 무게 16t짜리로 TV를 1003대나 동원했습니다. 백남준의 TV 설치 작품 중 가장 크고 무겁습니다. TV 1003대에선 제각각의 영상을 나옵니다. 동양과 서양 곳곳의 풍경과 서로 다른 피부색이 사람들이 쏟아졌습니다.

백남준,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당시 서울 올림픽은 냉전 시대를 허문 첫 평화 이벤트였습니다. 실제로 1984 LA 올림픽에는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불참했습니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보이콧합니다. 서로 으르렁댄 모든 국가가 1988 서울 올림픽에 모입니다. 정정당당하게 힘을 겨룹니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에는 이 순간 화합의 감동이 물씬 담겨있습니다.

‘황색 재앙’, 대기업 도련님이었다고?
백남준, '로봇 가족할아버지'(왼쪽), '로봇 가족 할머니(1986)' [갤러리현대]

백남준은 한반도가 낳은 최고 별종입니다.

백남준은 평생 소년의 순수함을 간직합니다. 죽을 때까지 종잡을 수 없는 기인이기도 합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뭘 벗기고 깨고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는 데는 아주 선수였습니다. 정색할 때는 자기 작품에 인공위성을 끌어들일 만큼 스케일이 남다른 대가였습니다. 오죽하면 서양에선 그의 기행적 예술 행위를 놓고 존경심을 담아 "황색 재앙", "동양에서 온 테러리스트"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백남준을 그저 비디오 아트 선구자로 묶어두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김홍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마셜 매클루언 등 문명 비평가부터 데이비드 보위 같은 가수까지, 전 세계 수많은 인사가 백남준의 친구였다. 백남준이 연하장을 보내는 이는 1000명이 넘었다. 그야말로 국제적 스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백남준, TV 정원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은 1932년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서 태어났습니다.

백남준은 "돈이 없어 비디오 아트에 손을 댔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는 한국 최고의 '금수저' 출신입니다. 할아버지 백윤수는 큰 포목상을 일굽니다. 국상 때 벼슬아치들이 입는 상복과 제복을 도맡아 만든 곳입니다. 아버지 백낙승은 태창방직을 이끕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재벌 기업이자, 그 시절 최대 섬유업체입니다. 백남준은 1940년대 당시 국내 딱 두 대뿐인 캐딜락 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백남준은 집안의 '사업가 마인드'를 이어받지 못합니다. 백남준은 마르크스 사회주의 사상에 빠집니다. 6·25 전쟁(1950~1953) 당시 북한군이 서울에 왔는데도 피난을 가지 않을 만큼 심취합니다. 하지만 북한군은 백남준의 집을 뒤엎고, 키우는 개를 잡아먹습니다. 백남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립니다. 1952년, 일본 도쿄대로 갑니다. 1956년에는 아예 독일로 향해 음악, 철학, 건축 등을 배웁니다.

백남준,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테이프와 피아노를 위한 음악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은 독일에서 자기 삶을 바꿀 사람을 만납니다.

존 케이지. '음악계의 마르셀 뒤샹'으로 평가받는 전위(前衛) 예술가입니다. 사람을 모아놓곤 4분 33초간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 '4′33″'를 쓴 작곡가입니다. "공연장 안 소음, 즉 우연의 소리 그 자체가 음악이다!"라고 주장한 그 음악가입니다. 1959년, 백남준은 존 케이지의 공연을 본 후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습니다. 존 케이지 추종자들과 어울리며 함께 예술을 논했습니다.

이들은 "우리, 제대로 미쳐보자!"며 모임을 꾸립니다. 바로 '플럭서스(Fluxus)'입니다. '변화', '흐름', '움직임'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영감을 딴 이 모임은 국제적 전위 예술운동에서 돌격대를 자처합니다. 젠체하는 예술을 뻥 찹니다. 온갖 특이한, "이걸 아트라고 할 수 있어?"라고 할만한 예술을 합니다. 당시 서독 언론은 조지 마키나우스, 백남준,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배우자가 되는 오노 요코 등 플럭서스 멤버들을 놓고 "기어코 정신병자들이 탈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백남준,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퍼포먼스의 한 장면 [백남준아트센터]

그렇게 백남준은 '테러'에 나섭니다.

이 시기에 백남준이 선보인 대표적 퍼포먼스는 '머리를 위한 선(Zen for Head)'입니다. 잉크와 토마토 주스가 가득 담긴 통에 머리를 담급니다. 젖은 머리카락을 붓처럼 다뤄 큰 종이에 선을 그립니다. 끝이 아니었습니다. 백남준은 도끼를 듭니다. 씩씩거리면서 무대 위 피아노로 갑니다. 쾅, 내려칩니다. 이번에는 바이올린을 쥡니다. 바닥에 마구 찍어버립니다. 붓과 캔버스,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 예술계가 쥐고 있던 고고한 이미지를 박살 냅니다.

백남준이 1971년 샬롯 무어맨과 협연 형식으로 선보인 ‘TV첼로’와 ‘TV안경’ [TATE]
백남준, 샬롯 무어맨(1990) [갤러리현대]

1967년 뉴욕, 백남준은 매력적인 외모의 첼리스트 샬럿 무어맨과 작당 모의를 하는데요. 공연 제목은 '오페라 섹스트로니크'입니다. 1부 공연에선 무어맨이 비키니를 입습니다. 2부에선 상의를 벗습니다. 3부에선 하의를 완전히 벗고, 4부에선 완전한 나체로 연주합니다. 이 또한 젠체하는 예술의 권위를 깨부수기 위한 퍼포먼스였습니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터집니다. 2부가 막 진행될 때 사복 경찰들이 뛰어와 무어맨을 끌고 갑니다. 외설·음란 행위를 했다는 겁니다. 백남준은 이 사건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릅니다. '황색 재앙'은 '황색 돌풍'이 됩니다. 무어맨은 다행히 풀려납니다.

“30세기에 무슨 일 있을까?”…“네?”
백남준, ‘나의 파우스트’ 13점 연작 중 대표작 격인 ‘자서전’ [삼성미술관 리움]

백남준이 TV를 향해 손을 뻗은 건 운명과도 같은 일입니다.

무엇보다 백남준은 새로운 무언가를 보면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1964년 미국에 온 건 사실 TV 공부를 위해서였습니다. 누드 첼로 쇼만 생각하고 온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쯤 한국 땅에서 슬픈 소식이 들립니다. 백남준의 집안이 기울고 있다는 겁니다. 태창방직은 불황과 경쟁업체 등장, "일제를 도왔다!"며 들이닥친 군사정권의 재산 몰수 등으로 가루가 됩니다. 백남준은 하룻밤 사이에 도련님이 아닌 가난뱅이가 됩니다. TV를 접할 때쯤 "돈이 없었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상남자는 그런 일 따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집안의 마지막 지원금 1만 달러를 TV와 골동품, 불상(!)을 사는 데 다 씁니다. 백남준은 TV가 현대인의 삶을 통째로 바꿀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의 선구안이 통합니다. 'TV 부처' 결과도 좋았기에 망정이지, 그는 크게 망할 뻔했습니다.

백남준과 구보타 시게코
백남준과 구보타 시게코

백남준과 그의 부인 구보타 시게코의 사랑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둘은 1963년 도쿄에서 열린 백남준의 공연장에서 처음 만납니다. 구보타는 백남준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집니다. 막걸리를 구두에 부어 들이켜고, 붓 대신 머리로 선을 쭉쭉 긋는 게 매혹 그 자체였습니다. 자신도 전위 예술가였던 구보타는 백남준을 끈질기게 따라다닙니다. "예술가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절을 무시하고 직진, 또 직진합니다. 결국 1977년에 사랑을 쟁취합니다. 그쯤 구보타가 자궁암 진단을 받는데요. 엄청난 치료비로 수술을 포기했을 무렵, 백남준이 "내 명의의 의료보험 혜택을 활용하자"며 먼저 청혼했다고 하지요.

둘은 이후 평생 함께 삽니다. 1996년, 구보타는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그해부턴 아예 찰싹 붙어 간호합니다. 누군가가 안부를 물으면 "백남준을 오래 살게 하는 일이 내 일생에서 마지막 할 일"이라고 합니다. 백남준은 그런 구보타의 도움으로 10여 년간 왕성하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2006년 1월. 구보타는 백남준이 눈을 감는 그 순간에도 함께했습니다. 그날 백남준은 구보타가 만들어준 장어덮밥 한 그릇을 싹 비우곤 "맛있어, 맛있어"라고 활짝 웃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백남준
"백남준은 어려울 때마다 정신적으로 기댄 내 마음속 부처였다."
오노 요코, 백남준 장례식 추모 연설

백남준은 1996년 독일 '포쿠스'지가 선정한 올해의 100대 예술가에 오릅니다. 1997년 독일 '카피탈'이 선정한 '세계의 작가 100인' 중 8위를 찍고, 그 다음 해에는 독일 최고의 문화 훈장인 괴테 메달을 받습니다. 1998년에는 교토 상, 2000년에는 금관 문화 훈장도 쥡니다. 백남준은 미래에서 온 예술가였습니다. TV의 저력을 눈치채고, 더 나아가 SNS와 OTT의 세계까지 엿본 그는 그 시대 선구자들의 선구자였습니다.

"30세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선생님. 혹시 21세기를 말하는 걸까요?" "아니. 1000년 후 30세기 말이야." 1994년 백남준이 설치미술가 강익중과 한 대화를 보면 그가 얼마나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낮에도 별을 보는 사람'. 강익중은 백남준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후암동 미술관 이론 편 읽는 순서〉

1)천사가 이렇게까지 운다고? 무섭게 왜 그래[후암동 미술관-조토 편] - 르네상스 선구자(2022. 7. 2.)

2)뻥 아냐, 600년전인데 이 정도 ‘입체 그림’ 있었다[후암동 미술관-마사초 편] - 원근법 선구자(2022. 8. 27.)

3)세계서 가장 유명한 이 ‘레이저 눈빛’, 그것은 사랑?[후암동 미술관-얀 반 에이크 편] - 유화 선구자 (2022.5.21.)

4)‘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악마의 아들? 나 원 참" [후암동 미술관-보스 편] -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5.28.)

5)아리따운 금발 여인, 외간남자 목을 베고 있는거야?[후암동 미술관-카라바조 편] - 바로크 선구자 (2022.6.11.)

6)아름다운 여인, 끌어안고 난리난 옆 커플이 부러워[후암동 미술관-와토 편] - 로코코 선구자(2022.10.8.)

7)맨몸 여인들, 전쟁 뛰어들어 “그만!” 사자후…싸움 막았다[후암동 미술관-다비드 편] - 신고전주의 선구자 (2022.10.15.)

8)표류 D+13, 왜 몰랐지? 뗏목 위 널린 게 먹을건데[후암동 미술관-테오도르 제리코 편] - 낭만주의 선구자 (2022.5.14.)

9)“천사요? 데려오면 그려드리죠” 이놈의 똥고집[후암동 미술관-귀스타브 쿠르베 편] - 사실주의 선구자 (2022.5.7.)

10)“관상가 양반 아니었어?” 조선의 ‘얼굴’, 몰랐던 사실[후암동 미술관-윤두서 편] - 사실주의 특별 편 (2022. 11. 19.)

11)벌거벗은 이 여자, 뭐 때문에 빤히 쳐다보나[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2022. 4. 23.)

12)“못 그렸는데 폼만 잡아” 욕먹던 이 그림, 3300억이요?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⑵ (2022.4.30.)

13)‘점투성이’ 수상한 커플 정체는? [후암동 미술관-조르주 쇠라 편] - 신인상주의 선구자 (2022. 6. 25.)

14)반 고흐 최애작, 별밤·해바라기 아닌 ‘이 사람들’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 표현주의 선구자 (2022.6.4.)

15)이 ‘사과’ 때문에 세상이 뒤집혔다, 도대체 왜?[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근대 회화 선구자(2022. 7.9.)

16)‘생각하는 사람’ 진짜 정체, 남모를 사정도 있었다[후암동 미술관-오귀스트 로댕 편] - 근대 조각 선구자 (2022. 10. 22.)

17)“로댕 아이를 뱄다” 폭탄선언 여성, 30년 수용소에 갇혔다[후암동 미술관-카미유 클로델 편] - 근대 조각 특별 편 (2022. 11. 5.)

18)화끈한 키스, ‘이 여성’ 사르르 녹아내리다[후암동 미술관-구스타프 클림트 편] - 분리파 선구자 (2022. 8. 13.)

19)나체 여인, 어쩌다 사자 득실대는 정글 한복판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루소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 7. 30.)

20)당신은 모르실거야, 키스하는 두 사람 왜 이 꼴인지[후암동 미술관-르네 마그리트 편] - 근대 초현실주의 특별 편 (2022. 9. 3.)

21)헐크색 피부 갖게 된 ‘이 여성’…이 놈의 ‘남편’ 때문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야수주의 선구자 (2022. 7. 16.)

22)피카소도 ‘이 그림’에 “대박!” 감탄, 각성했다는데[후암동 미술관-피카소·마티스 편] - 야수주의·입체주의 특별 편 (2022. 9. 10.)

23)잘생긴 법학 교수님, ‘이것’ 그렸더니 미술계 '발칵'[후암동 미술관-바실리 칸딘스키 편] - 추상회화 선구자 (2022.7. 23.)

24)“이건 나도 그리겠다!” 1순위 그림, 그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몬드리안 편] - 추상회화 선구자⑵ (2022. 8. 6.)

25)스파게티 면발? 1315억에 팔린 그림, 충격적 이유[후암동 미술관-잭슨 폴록 편] - 액션페인팅 선구자 (2022. 10. 29.)

26)몸 좋은 보디빌더, 거대 막대사탕 들고 ‘의문의 포즈’[후암동 미술관-리처드 해밀턴 편] - 팝아트 선구자 (2022.11.12.)

27)“동양서 ‘테러리스트’가 왔다” 피아노 다 때려부쉈다[후암동 미술관-백남준 편] - 비디오 아트 선구자 (2022.11.26.)

28)권총도 채찍도 버텼는데, ‘이 남자’ 행동에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편] - 행위예술 특별 편 (2022. 8. 20.)

〈후암동 미술관 현장 편 읽는 순서〉

1)이건희 컬렉션, 이 ‘다섯 작품’ 놓치지 마시라[후암동 미술관-‘어느 수집가의 초대’ 출장 편] - 전시 특집 (2022. 6. 18.)

2)알코올 중독 ‘이 남자’, ‘파리’에 미치자 놀라운 일 터졌다[후암동 미술관-몽마르트 언덕 편] - 동행자 : 모리스 위트릴로 (2022. 9. 17.)

3)고흐 “슬픔은 왜 나한테만” 펑펑 울었다, 고작 2평 다락방에서[후암동 미술관-오베르 편] - 동행자 : 빈센트 반 고흐 (2022 9. 24.)

4)모네 “앞이 안 보여도 상관없어”…백내장도 못 막은 그의 ‘최후작’[후암동 미술관-지베르니 편] - 동행자 : 클로드 모네 (2022. 10.1.)

yul@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