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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비즈] 절세와 조세회피 심리, 인간의 본성인가

현대국가는 시장경제 활동에 대해 세금을 징수해 운영하는 ‘조세복지국가’다. 복지국가에서 부유층과 중산층에 과세하는 세금은 비례적이 아닌 누진적으로 증가하는 구조다. 국민총생산액이 증가할수록 그렇다. 자본주의의 폐해와 관련, 최근 서구 철학자들이 제기하는 주된 주제는 ‘공정’이다. 국가가 공정을 실현하는 주된 정책수단은 고소득층 누진세율 조세와 취약계층 복지재정 확대다.

반면 인간의 본성은 누진적인 세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반비례해 세금납부에 저항하게 된다. 그렇다면 개인의 재산권 보호를 위한 조세회피는 자연스러운 본성일까. 정말 나쁘고 악(惡)한 것일까.

국회 청문회에서 매번 목격할 수 있듯이 명망있는 교수나 사회 지도층조차 자녀들에 대한 증여세 탈루가 단골 메뉴로 나오는 걸 보면 인간의 본성은 정직한 세금납부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소득세·상속세·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높은 누진세율 제도하에서 많은 사람이 세금에 대해 합법과 불법의 경계, 절세와 탈세의 경계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을 많이 한다. 세금회피 수단인 절세, 조세회피, 세금탈세 등의 경계가 모호하다. 따라서 세금회피를 자문하는 전문업체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국가의 조세권은 국가의 영토 범위 내에서만 미친다. 자본주의 성숙과 세계경제의 통합에 따라 자본·기술·노동은 특정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않은 영토 공간과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이동하고, 이동하는 목적 중의 하나가 세금을 적게 내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 부자들의 세금 회피를 유혹하고 도와주는 ‘조세천국(Tax haven)’, ‘세금 오아시스(Tax oasis)’라는 단어는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대표적으로 서인도제도의 케이멀제도, 앤틸러스제도 등이 비밀계좌를 통한 부자들의 재산과 소득의 은닉을 지원하고 수수료를 받아서 운영된다.

유럽의 신흥부국 아일랜드는 법인세율을 매우 낮게 적용해 다국적기업을 유치하는 전략으로 경제정책을 운용한다. 다만 내년부터는 최소 법인세율을 15% 이내로 적용은 국가 간의 협정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 낮은 법인세율을 통해 인접국 기업을 유치함으로써 인접한 국가를 궁핍하게 만드는 조세 유인정책을 억제하기 위해 합의한 선진국가의 협상의 산물이다.

이와 관련, “큰 부자는 자신을 위해 법을 만들고, 작은 부자는 합법적으로 세금을 회피하는 전문가를 고용하고, 가난한 자는 성실하게 납세하거나 아예 탈세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흔히 서구 기독교권 국가 소속 국민들이 ‘납세도의’가 높은 것으로 말한다. 막스베버의 명저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개신교도들은 신에 대한 헌신의 방법으로 자기가 맡은 직업에 충실하고, 불필요한 낭비를 자제하는 금욕적인 생활, 근검절약하는 풍조가 자본축적을 가져와서 오늘날 자본주의의 기초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산업화 초기 낮은 세율도 자본주의 발전과 정직한 납세문화 형성에 기여했으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종부세 세율인하가 여야간 뜨거운 쟁점이다.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중심축 역할을 하는 5060세대 중산층 납세자가 종합부동산세 세금부담에 얼마나 순응하고 있을까. 철학적으로, 공정성에 대한 논쟁의 문제로 다시 넘어갈 수 있다.

지난 정부에서 징벌적 목적으로 도입되어 현실을 왜곡하는 제도의 경우 조세원칙과 공정기준에 맞도록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상속세법상 성인 자녀에 대한 부모의 비과세 증여한도는 10년 누적으로 5000만원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국민이 합법적인 증여한도를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다. 세금회피에 대한 인간의 본성을 탓하기에 앞서 잘못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관세청장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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