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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원의 현장에서] ‘침묵’이라는 대답

“여기로 돌아오는 마음이요? 당신이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침묵이 흘렀다. 조용히 가게 문을 닫았다.

참사 당일 새벽부터 이태원역 일대에 머문 시간을 세어보니 30시간을 조금 넘는다. 두서없이 말을 건넨 시민이 수십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그들은 생존자이면서 목격자이거나 영웅이면서 죄인이기도 했다. 그들로부터 들은 대답에도 슬픔, 애도,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가장 많이 들었던 대답은 사실 ‘침묵’이었다.

국가애도기간 어느 평일 저녁, 참사 현장 인근 세계음식문화거리의 한 술집에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택배상자를 뜯고 있던 점주에게 참사 당시의 상황과 영업 계획을 물었다. 그때 돌아온 대답 역시 침묵이었다. “말해봤자 그 마음을 당신이 어떻게 알겠느냐”는 말에 다시 문을 닫았다. 적막 그 자체였던 상가와 불과 100m 남짓 떨어져있던 이태원역 추모공간의 간극이 컸다. 참사 당일, 새벽 첫차를 타고 이태원역에 도착한 기자를 가로질러 서둘러 귀가하던 시민들 역시 대부분 팔을 뿌리쳤다.

질문이야말로 공감의 시작이라고 한다. 작가 레슬리 제이미슨은 “상대방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공감의 전제조건”이라고 했다. 경찰서 민원실에 앉아 초면인 이들에게 신상과 피해를 소상하게 물어보곤 했던 교육 기간, 가장 힘이 됐던 글귀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는 이 글귀를 다시 무력화시켰다. 대답을 거부하던 상인과 시민들 앞에서 어떤 취재정신을 더 발휘했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차치하고 싶다. 그건 살아남은 이의 침묵할 권리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침묵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침묵을 고집한다. 사망자만 156명이 발생했지만 주요 인사 중 ‘책임’을 언급하는 이가 극히 드물다. 참사 직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소방 인력 배치 부족 문제가 아니다”라는, 용산구청장은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라는 메시지를 냈다. 기자간담회에서 서울경찰청장은 “현장에서 보고가 지연돼 사실을 늦게 인지했다”고 말했다.

때론 사물의 침묵이 가장 강력하다. 지난 주말 찾은 ‘이태원 참사 유실물센터’는 고요했다. 피 묻은 외투와 한 짝뿐인 신발, 스티커 사진들이 정렬된 체육관 내부에선 온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사람을 짓누르는 침묵의 물성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 당초 경찰은 1.5t 규모의 유실품 1040점을 모았다. 700점 이상이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

질문에 대답을 거부하는 것도, 잃어버린 물건을 찾지 않는 것도 일종의 절박한 의사표시다. 참사에 대해 더 많이 말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여론의 관심이 참사 당일 책임자들의 행적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다. 공권력 부재 속에 국민들이 말 그대로 짓눌리는 동안 권력의 무게를 내려두고 어디에 있었느냐는 질문이다. 용산경찰서장이 관용차에 머무른 시간, 뒷짐을 지고 걸어가는 모습에선 권력의 무게감을 실감하기 어렵다. 전 국민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1.5t의 침묵이 엉뚱한 곳을 짓누르고 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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