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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지의 현장에서] "안타깝지만," 그 다음 글은 잠시 넣어두길

“재난영화 같았어요. 그냥 생지옥이에요. 수십명의 사람이 길거리에 쓰러져 있고... 어떡해요.”

15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던 생존자들은 당시의 상황을 전하며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고 표현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믿을 수 없는 사고에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원인불문 수많은 사상자를 낳은 참사에 정부는 이달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했다. 많은 사람이 추모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댓글창을 포함한 일부 온라인공간은 이태원만큼이나 참담했다. 사망자들을 향한 2차 가해성 댓글이 무분별하게 노출됐다. “술 마시고 춤추러 간 걸 추모까지 해야 하나” “요즘 MZ세대는 명절은 안 챙기면서 핼러윈파티는 왜 가나, 본인 잘못” “사망한 건 안타깝지만 세금으로 지원금 주는 건 반대” 등의 내용이다. “안타깝지만,”이라고 운을 떼면서도 사망자들을 탓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애도와는 거리가 먼 댓글이 많은 공감을 받으며 상단에 고정되기도 했다.

모두 사망자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2차 가해성 댓글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악성 댓글’로 분류되지 못했다. 욕설 또는 성적 표현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이버 댓글 필터링기술 ‘AI 클린봇’은 맥락적인 혐오 표현이나 언어폭력은 감지하지 못한다. 현재로서는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신고만이 2차 가해 댓글을 가릴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참사가 발생한 다음날인 지난 10월 30일 사회 섹션 뉴스에 댓글을 작성한 사람은 14만7000여명이었다. 이들이 작성한 총 댓글 수는 35만여개. 1인당 평균 2개가량의 댓글을 단 셈이다. 물론 이 중에는 진심으로 사망자를 추모하고 위로하는 글이 상당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악플러’가 미치는 악영향은 상당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기사 댓글을 아예 막는 것이 어떻겠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현재 네이버는 각 언론사가 기사별로 댓글 노출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끔 하고 있다. 헤럴드경제도 1일부터 해당 기능을 적극 활용해 일부 기사 댓글을 차단하고 있다. 사망자 및 유가족의 명예훼손 방지를 위해서다.

경찰도 나섰다. 현재 사이버수사관 46명을 투입해 사이버대책상황실을 운영 중이다. 악의적·허위 비방 댓글이나 이태원 참사 현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진 및 영상을 올린 경우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2일 오전 기준 네이버 온라인 추모게시판에 검은 리본으로 애도를 표현한 사람은 약 114만명이다. 이들은 그 어떠한 댓글도, 의견도 없이 순수한 위로와 안타까움을 표했다.

댓글 작성자 14만명 중 소수를 차지하는 악플러보다 이 100만여명의 진심을 더 믿는다. “안타깝지만,” 그다음 말은 잠시 넣어둬야 한다. 친구·가족들과 핼러윈파티를 즐기려던 젊은이들이 사망했다. 전 국민의 트라우마도 우려된다. 지금은 큰 충격을 받은 서로를 조용히, 따뜻하게 위로해야 할 때다.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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