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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자람, 동시대가 요구한 독창적 작창가…“옛 문화 답습 말고 방향성 찾아야”
창극 ‘나무, 물고기, 달’…10월 4일 개막
작창ㆍ작곡ㆍ음악감독 ‘1인 3역’

전통공연계의 ‘멀티 플레이어’
새로운 시대의 작창가로 자리매김
사설ㆍ음악의 동시대 해석이 관건…
‘낡고 재미없다’는 편견과 싸운 창극
“지금은 새로운 관객 유입된 시기…
과거 답습 말고 방향성 찾는 것이 숙제”
소리꾼이자 작창가이며 작곡가이고 작가인 이자람이 국립창극단의 ‘나무, 물고기, 달’을 통해 작창, 작곡, 음악감독까지 세 명의 역할을 맡았다. 이자람은 “나는 중간자의 역할”이라며 “작가와 연출이 그리는 드라마를 최대한 서포트 하되 창극의 색깔을 잃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국립극장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갓 나무로 살아도 좋다 말다. 슬픈 가지 한가득 꽃이 핀다면, 피울 수 있다면.”

창극 ‘나무, 물고기, 달’의 한 장면. 사슴나무의 기구한 운명과 간절한 소망이 두 명의 소리꾼이 쌓아올리는 아름다운 화음으로 태어난다. 절절하고 애달픈 노래는 변화무쌍하다. 가요로 치면 요즘 트렌드라는 ‘믹스팝’ 스타일. 5분 20초 가량 이어지는 한 장면 안에서 치열한 조바뀜과 ‘밀당’(밀고 당기기)이 벌어진다. 분명히 ‘우리 소리’인데, 전통을 뛰어넘는 곡조의 향연이다. 뛰어난 작창과 작곡이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그 곡을 들을 때마다 저도 놀라요. ‘삑사리’로 나왔나? (웃음) 판소리가 가진 시김새가 화려하게 수놓아졌는데 과하지 않고, 듀엣이 어우러져 드라마와 잘 어울리더라고요. 언어가 주는 영감에 따라 썼을 뿐인데, 운이 좋았어요.”

90분의 창극 안에 무려 39곡이 쏟아진다. 난생 처음 듣는 수십 개의 노래는 탄탄한 대본과 엮여 매 장면 ‘킬링 파트’다. 지난해 3월 초연한, ‘나무, 물고기, 달’(10월 4~12일)이 1년 6개월의 기다림 끝에 돌아온다. 이 작품에서 작창, 작곡, 음악감독까지 세 명의 역할을 한 이자람을 만났다.

동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작창가인 이자람은 “‘옛날 것, 늙은 것, 오래된 것, 재미없는 것’이라는 명제와 싸워온 것이 판소리의 역사였다”며 “그 오랜 싸움에서 창극과 판소리는 이제 약간의 밸런스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제공]

■ 작창·작곡·음악감독 ‘1인 3역’…“창극의 색 지키며 소리꾼 빛내주는 역할”

이자람은 하는 일이 많다. ‘꼬마 가수’ 예솔이로 데뷔해 소리꾼이면서 작창가, 인디밴드(아마도 이자람밴드)의 멤버, 작곡가, 작가로 창작 세계를 넓혀 왔다. 이자람의 행보가 눈에 띄는 것은 오직 이자람만이 할 수 있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영역이라도, 누구와도 같지 않다. 창극 ‘나무, 물고기, 달’은 이자람 안에 응축된 ‘음악 스펙트럼’이 폭발한 작품이다.

그는 “작품의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를 상상했다”고 했다. 한국, 중국, 인도의 설화를 모티브로 삼은 이야기는 저마다의 마음 안에 간절한 소망 하나씩 품고, ‘소원나무‘를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결론”으로 향하지만, 개개인의 사연과 모험이 함께 하는 신비한 이야기는 이자람 안의 무수한 감각을 깨웠다.

“처음 작업자를 만나면 언어를 확인하는 일을 먼저 해요. 이 사람의 언어와 내가 쓰는 언어가 같은 땅에 있는가 확인하는 거죠. 대본에서 주어지는 감각들로 곡을 써서 레퍼런스를 주고받은 뒤 배요섭 연출님과 서로의 언어가 잘 맞겠다는 확인을 가졌어요.”

작품에서 이자람이 맡은 ‘세 개의 배역’(작창·작곡·음악감독)은 상당한 지분을 차지한다. 작창(한국음악의 장단과 음계를 바탕으로 극의 흐름에 맞게 새로운 소리를 짜는 작업)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창극’의 ‘핵심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는 “작창은 사설이 가진 이면을 잘 그려 극을 돕는 작곡”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작품에선 작창과 작곡의 역할이 나뉘지만, 이자람은 혼자 해냈다.

그는 작업 과정에서 “중간자의 역할”을 자처했다. “작가와 연출이 그리는 드라마를 최대한 서포트 하되 창극의 색깔을 잃지 않도록”하는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워낙에 판소리에 대한 이해가 높은 작가님(김춘봉)의 작품이라, 대본에 기본 골격이 갖춰져 있었어요. 판소리에 대한 이해가 바탕하면, 소리 자체가 서사의 신축(늘이고 줄임)이 쉬워요. 순식간에 100년의 시간을 넘어갈 수도 있고, 일 분 짜리를 5분으로 늘릴 수도 있죠. 그게 판소리의 묘미이고 특징이거든요.” ‘서사의 신축’이 자유로워 ‘나무, 물고기, 달’에선 지난한 여정, 긴박한 사건이 한 곡의 노래로도 담긴다. “그 안에서 전 소리꾼의 소리가 빛이 나도록 하면서, 작품에서 질감이 멀어지거나 너무 실험적이지 않도록 하는 작업을 했어요.”

음악을 만들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각 넘버가 독립적이되 같은 줄기 안에 맺혀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전체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도, 하나의 노래로도 존재할 수 있도록 썼다.

그는 “탐스러운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맺힌 대본이라 내가 가진 음악적 아이디어를 여러 가지로 펼칠 수 있었다”며 “밴드의 노래를 쓰듯이 넘버 별로 자유롭게 시도해 봤다”고 말했다.

다양한 악기를 사용해 작품은 더 풍성해졌다. 가야금·거문고·대금 등 국악기는 물론 인도 악기 하모니움, 타악기 운라를 사용해 장면 장면에 생생함을 불어넣었다. “손으로 하는 풍금”처럼 꽉 채운 소리를 내는 하모니움은 “소원나무를 상징하는 공간적 악기”로 쓰였다. 운라는 “신비한 일, 예상치 못한 마법이 벌어질 때” 사용된다.

“요즘 연습하면서 계속 배꼽을 잡아요. 배우들이 쉬운 말로 ‘까불이’가 됐거든요. 연출님에게 대체 무슨 디렉션을 줬기에 배우들이 이렇게 됐냐고 물어봐요.. 1년 6개월, 초연과 재연 사이 각자의 삶이 쌓인 만큼 그들이 표현하는 모든 것에 깊이가 생기고 솔직해졌어요. 더 깊어지고 다양해진 이야기가 될 거예요.”

이자람은 국악뮤지컬 집단 타루에서 ‘바퀴벌레 약국의사’를 통해 생애 첫 작창을 시도한 이후, 자신의 창작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 동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작창가’

이자람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독창적 작창가’다. 국악뮤지컬 집단 타루에서 ‘바퀴벌레 약국의사’를 통해 생애 첫 작창을 시도한 이후, 자신의 창작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국립창극단과는 ‘나무, 물고기, 달’은 물론 ‘흥보씨’, ‘소녀가’, ‘패왕별희’, ‘시’로 호흡을 맞추며 새로운 시대의 작창가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작창가’라는 직업은 귀하다. 철저하게 ‘소리꾼의 영역’이기에 진입장벽이 높다. 이자람은 안숙선 명창, 한승석 중앙대 교수와 함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작창가로 꼽힌다. 게다가 개인의 창작활동을 통해 작가, 연출도 겸하니 창극계의 ‘멀티 플레이어’다. 현재 그는 국립창극단의 ‘작창가 프로젝트’ 의 멘토로 참여, 그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 작창가들에게 들려주는 중이다.

이자람은 “작창가의 제 1덕목은 소리꾼”이라고 했다. “판소리를 배우지 않고 작창을 한다는 것은, 물을 다루되 바다가 아닌 호수를 다루는 것과 같아요. 소리꾼이면 드넓은 바다를 다룰 수 있죠.” 여기에 동시대의 시선으로 해석이 더해져야 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와 호흡할 ‘동시대 창극’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 판소리 다섯 바탕은 이미 조선의 ‘미친 예술가’들이 온갖 기교와 실험을 했고, 동시대마다 이면을 그리는 일을 했어요. 이면을 그린다는 것은 사설이 가진 깊이를 동시대적으로 해석하는 일을 말해요. 지금 우리 시대의 문화와 감성이 들어갈 때 동시대 해석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대본을 펼쳐 들면 이자람은 자신 안에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감성을 불어넣는다. “내 안의 오리지널리티가 생생하게 살 때 매력적인 작품”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되려고 하거나 흉내 내려는 순간 망해요. 내 것이 아닌 것을 하면 그 때부터 작품의 매력은 사라지죠.”

작창의 어려움은 ‘100인 100색’이라는 데에 있다. 세상엔 여러 시각과 입장, 감성이 존재한다. 이자람 역시 “사실 정답은 없다”며 “한 문장에서도 다양한 경우의 수가 나온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창작자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휴대폰이 박살났다’는 사설의 이면을 그릴 때 결과만 언급할 것인지, 과정을 설명할지 다 달라요. 그걸 표현하는 방식과 감성은 정말 다양하거든요. 작창가가 가진 문장에 대한 경험치는 해석의 방향과 태도를 달라지게 해요. 유머를 더할 수도 있고, 진중함을 더할 수도 있고, 결과를 통해 휴대폰 금액을 생각할 수도, 연인과의 이별을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현재와 소통할 음악 작업도 이어져야 한다. “판소리에 나오는 여러 장단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경우에 따라 현대적 리듬도 끌어오는” 과정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텍스트를 중심에 두고 음을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작창의 제2덕목’이라고 이자람은 강조한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음악이 보사노바라면 그것도 작창의 소스가 될 수 있어요. 주의할 것은 그것을 쓰기 위해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대본이 원할 때 써야 한다는 거예요. 무엇을 위한 작업이 아닌 대본이 원하는 변화와 실험을 해야 하는 거죠.”

과거의 감성을 넘어 ‘음악적 동시대성’도 갖춰야 작창은 완성된다. 이자람은 “전통 판소리의 공식을 사용하면서 달라진 감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전엔 슬프면 목 놓아 울었지만, 지금은 멍하니 앉아 있는 것으로도 슬픔을 표현해요. 판소리에서도 전통적으로 진계면(시나위 성음에 가까운 조)에 중모리(판소리 장단 중 진양조 다음으로 느린 장단)가 슬픔을 표현하는 악조와 장단이었다면, 지금은 자진모리(판소리 장단 중 하나로 빠른 장단)로도 표현하는 시대가 된 거예요.”

창극과 판소리는 오랜 시간 ‘변화’를 강요받았다. ‘낡고 진부한 것’, ‘박제된 전통’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왔다. 이자람은 “1930년대에 극장이 생기고, 오디오 문화가 들어온 이후부터 ‘옛날 것, 늙은 것, 오래된 것, 재미없는 것’이라는 명제와 싸워온 것이 판소리의 역사였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 창극이다. 국립창극단은 김성녀 예술감독 시절부터 이어온 실험을 통해 창극에 새 생명을 입혔다. 서양의 고전, 그리스 로마 신화, 이국적 설화와 만난 창극들은 시대와 국경을 넘는다. 개막을 앞둔 ‘나무, 달,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활자로 적힌 ‘나무, 물고기, 달’의 신비한 이야기는 ‘전통의 어법’을 기꺼이 넘어선 음악과 만난다. 판소리의 원형을 지키내며 시도한 실험과 도전은 ‘동시대 창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중심에 이자람이 함께 하고 있다. 이자람은 “그 오랜 싸움에서 창극과 판소리는 이제 약간의 밸런스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금 창극을 보기 시작한 젊은 관객들은 판소리가 낡았다는 의식조차 없어요. 오히려 멋지다고 해요. 전통적인 것들의 힘이 계속 보여지면 좋겠는데, 이 다음은 잘 모르겠어요. 판소리가 인생에 아예 없던 세대가 관객으로 형성되고 그들이 판소리로 유입되기 시작한 지금, 앞으로의 창극과 판소리가 나아갈 방향을 찾는 것은 소리꾼들의 숙제예요. 옛날 문화를 답습한다면 퇴보하겠죠. 그 앞이 어디인지 아무도 몰라요. 아직 아무도 간 적이 없으니까요. 저 역시 지금은 주어진 일을 하고 있어요. 어디로 갈지는 저도 궁금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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