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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위기는 어떻게 오는가

“제가 IMF(국제통화기금)에서 온 사람입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외환보유가 충분한 지 묻자 설명을 돕기 위한 말이었다. 이 총재는 IMF 적정 유동성 기준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모자라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어느 IMF 직원도 (외환보유액 전 세계 8~9위 수준인) 한국이 외환보유액을 (연간 수출액 등 여러 지표 합계의) 150%까지 쌓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국제금융기구 가운데 IMF만은 유일하게 전 국민이 알 정도로, ‘IMF 외환위기’는 우리 국민에게 남긴 상처가 컸다.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던 1997년 원화와 바꿔 쓸 달러가 바닥나면서 한국은 국가부도에 직면했다. 당시 IMF는 200억달러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강도 높은 긴축을 요구했다. 20%가 넘는 두 자릿수 금리에 기업은 무너지고 월급을 못 받는 가계는 파산했다.

이 총재도 ‘IMF에서 온 사람’이란 수식어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무게를 모를 리 없다. 그런 그가 현재 외환 상황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와는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위기는 갑자기 속도를 높여 다가온다.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석 달 전 만해도 1%대였던 미국 정책금리는 이달 3%대로 올라갈 전망이다. 금리를 한꺼번에 0.75%포인트씩 두 차례 연속 올렸는데도 미국 물가가 잡히지 않을 것이란 것은 시나리오에 없던 이야기였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계속 고쳐 쓰이고 있다. 한은은 물가상승률(전년 대비)을 애초 2.0%에서 2월 3.1%로 상향한 데 이어 5월 4.5%, 8월 5.2%로 네 차례 올렸다. 이 과정에서 애초 예측치의 배 이상 숫자가 올라갔다. 연초 전망이 무의미하다. 게다가 5.2%란 숫자는 외환위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97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4.4%를 웃돈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1300원을 뚫고 1400원을 목전에 둔 것도 금융위기 때나 일어나던 일이다. 외환보유가 충분한데도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위기 앞엔 펀더멘털(주요 거시경제 지표)도 무기력함을 체험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가져왔던 과도한 국내외 부채와 쌍둥이 적자는 당시만큼은 아니지만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장 지난달 무역수지는 94억7000만달러 적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이에 따라 8월 경상수지도 적자를 보일 수 있다고 예상된다. 가계빚은 37분기 연속 상승하며 1900조원이 코앞이다.

정부는 그럼에도 지금의 상황을 위기가 아니라 ‘비상’이라 말한다. ‘과도한 위기론’이 오히려 불안을 키우고 경제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계한다.

하지만 새로운 위기는 다가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전인 올 초 금융위원회는 경제·금융전문가 간담회에서 한국 경제에 ‘회색 코뿔소’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갑자기 발생한 위험이 아니라 계속적인 경고로 알려져 있지만 이를 간과하다 큰 위기에 봉착한다는 경제용어다. 경고는 계속되고 있다. 큰 위기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막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윤 정부가 표방했던 ‘일 잘하는 정부’는 여기서 판가름날 것이다.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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