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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칼럼]식용유 세트가 내심 반가운 이유

올 추석 오랜만에 모인 가족 사이에서 화제는 단연 물가였다. 추석 상차림 준비를 위해 시장을 몇 번이고 오갔던 어머니는 한 단에 1만원 가까이 하는 시금치 가격에 놀라 결국 잡채는 포기했고, 손주의 최애 메뉴인 갈비찜을 위한 미국산 갈비도 3팩에서 2팩으로 줄였지만 지난해보다 고깃값을 더 냈다고 푸념하셨다. 형님도 과일을 사러 갔다가 높은 가격에 한참을 망설였다고 했고, 필자 역시 요즘 안 오른 품목이 없어 장보기가 참 어렵다고 말을 보탰다.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명절물가는 늘 주부들에게 부담이 됐지만 올 추석은 유독 더 심했다. 추석이 유난히 빨리 찾아온 데다 폭염이나 폭우 등 이상 기후 탓에 햅쌀 수확을 앞둔 쌀 외에 가격이 안 오른 품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쇠고기, 돼기고기 등은 이미 사료 가격 상승과 글로벌 물류 불안 등으로 가격이 떨어질 줄 모르고, 채소나 과일은 최근 불어닥친 폭우와 태풍으로 작황이 안 좋았다. 덕분에 올해 추석 상차림비용은 평균 31만7142원으로, 처음으로 30만원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추석을 정점으로 고물가 논란이 마무리가 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으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가격인상 쓰나미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15일부터 신라면이 1봉지가 1000원으로 오르며 라면값 인상이 본격화됐고, 과자와 음료, 조미료 등의 가격 인상도 이미 예고된 상황이다. 원자재 가격인상이 뒤늦게 가공식품까지 영향을 미치며 가격인상이 전이된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릴레이 가격인상’이 일회성으로 그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밀이나 옥수수, 대두 등 국제 식품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강(强) 달러’라는 복병 탓에 원자재 가격하락분을 상쇄하고 있다. 여기에 올겨울 역시 라니냐(동태평양 적도 지방의 저수온 현상) 영향으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지역의 파종과 작황이 나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강 달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하향 안정화됐던 식품 원자재 가격이 반등하면 지금보다 더 극심한 고물가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 벼나 과일, 채소 등의 수확이 본격화되는 9월 중순 이후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태풍이 무려 3개나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14호 태풍 ‘난마돌’은 추석 직전 포항지역을 할퀴고 간 ‘힌남노’처럼 경로 예측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만약 제주 남쪽까지 올라왔다가 북태평양 고기압에 밀려 중국 쪽으로 방향을 틀면 한반도가 태풍의 위험반원 안에 들어가 심각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요즘 서태평양 수온이 28도가 넘는 만큼 가을태풍이 추가로 발생해도 이상할 게 없어 태풍의 위협과 이로 인한 농산물 피해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서민의 “먹고살기 어렵다”는 푸념은 해마다 있어 왔지만 올해처럼 먹고살기가 버거웠던 해는 없었던 듯하다.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과 달리 올 추석은 고물가 때문에 차례상을 간소화하고 먹거리 씀씀이도 줄여 예년만큼 풍요롭지 못했다. 무겁기만 했던 식용유나 참치캔 세트가 올해 유독 반가운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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