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에 즉위하기 전인 1951년 6월 엘리자베스 2세. [AFP]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 96세의 일기로 8일(현지시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영국의 상징,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였다. '살아있는 현대사'로 영국을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1952년 25세에 선왕 조지 6세에 이어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는 2차대전 이후 격동의 시기에 강건한 모습으로 통합과 안정을 이끌어온 여왕으로 평가된다.

영국 최장수 군주이자 세계 역사에서 두번째로 긴 기간인 70년214일 재위했다. 기존 최장 기록인 고조모 빅토리아 여왕의 63년 216일 넘어선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루이 14세 프랑스 국왕(72년 110일) 다음으로 두번째다.

70년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격동기에 영국을 통합시키고 안정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EPA]

1926년 4월21일 태어난 엘리자베스 2세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다. 1952년 2월 6일 25세 나이에 영국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인 영연방의 왕위에 올랐다. 영연방에 포함된 국가는 영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을 포함해 50여개국이다. 영국 여왕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최고 통치자이기도 하다.

여왕은 윈스턴 처칠부터 리즈 트러스까지 영국 총리 15명을 거치며 2차 세계대전 이후 격동기에 영국민을 통합하고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영국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전광판에 8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를 알리는 이미지가 게재됐다. 영국 국민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이를 촬영하고 있다. [로이터]

그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영국 군주의 역할을 균형있게 해냈다. 올해 6월 즉위 70주년 기념 플래티넘 주빌리가 전국에서 성대하게 치러질 정도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여왕은 일찌감치 선언한 대로 건강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군주로서 책무를 다하며 불과 이틀전인 6일까지도 신임 총리 임명 행사를 치렀다. 70년 해로한 남편 필립공이 지난해 별세할 때도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켰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남편 필립공이 1947년 11월 20일 결혼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

여왕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의 부상과 식민지의 독립으로 대영제국의 위상이 무너지는 위기에서 영연방을 유지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해 영국의 영향력을 지켰다.

여왕은 1953년 대관식을 치른 뒤 바로 6개월간 영연방 순방에 나서 결속을 다졌다. 호주, 뉴질랜드는 영국 왕으로서 첫 방문이었고 인도도 50년 만에 찾았다.

영국은 인구 6700만명의 섬나라지만 영연방은 약 25억명으로 세계 인구의 30%에 달한다.

1994년 6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AP]

2011년 5월 버킹엄궁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난 영국 여왕. [AFP]

여왕은 외교무대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해리 트루먼부터 조 바이든까지 재위기간 미국 대통령 14명 중 13명을 만났고 중국 등 세계 100여개국을 방문했다.

교황과 각국 정상부터 유명 과학자, 운동선수, 연예인까지 다양한 이를 만나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대중적으로도 친숙한 이미지를 쌓았다.

1999년엔 한국을 찾아서 안동 하회마을 등에서 생일상을 받았고 김대중·노무현·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영국 왕실 가족. 여왕의 아들 찰스 왕세자(앞줄),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두번째 줄), 해리 왕자와 매건 마클 왕손비(세번째줄) [AP]

영연방의 사랑을 받은 여왕이었지만 가족사는 순탄치 않았다. 특히 아들 찰스 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나 비의 불화가 심화하고 이혼하는 과정에서 왕실 지지율은 떨어졌다. 설상가상, 이혼 후 1년 만인 1997년 다이애나비가 프랑스 파리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부군인 필립 공(에든버러 공작)과는 1947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했다. 평생 해로한 필립 공(99)이 2021년 4월 별세한 뒤 1년 5개월 만에 여왕도 영면에 들었다.

미국 워싱턴 영국 대사관 앞에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를 애도하는 꽃이 놓여져 있다. [AP]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부인 질 여사와 공동 성명을 통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군주 이상이었다. 그는 시대를 규정했다"며 "지속적인 변화의 시대에 여왕은 영국인에게 안정과 자존심의 지속적 원천이었다"고 기렸다.

이어 "여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엄한 지도자였으며, 기반암과 같은 미국과 영국의 동맹을 지속해서 심화시켰다"며 "우리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추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