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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 막 다니는 아저씨’라고요?…승진날은 기억 안나도 아이 태어난 순간은 못 잊죠”
‘언젠가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저자·유튜버·카드사 대리 이동수씨 인터뷰
그가 밝힌 슬기로운 직장생활, 그리고 "결론은 뭐라도 하라"
지난 7일 경기 수원시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작가이자 유튜버, 카드회사 직원인 이동수(39) 씨를 만났다. [임세준 기자]

‘회사 막 다니는 아저씨’

1년 전 MBC 예능 프로그램 〈아무튼 출근〉 방송 직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진 인기 ‘짤방’의 제목이다.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은 이동수(39) BC카드 회사 대리다. 보수적인 금융회사에서 굵은 파마 단발머리를 한 채 활보하고, 언제든 본부장 방에 들어가 잡담을 나누며 야무지게 과자를 까먹는다.

이 씨가 2011년 회사에 입사한 이래로 그의 모니터엔 자필로 쓴 문구가 붙어 있다. ‘언젠가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라는 철칙이다. 그의 입사 동기들이 과장, 차장으로 승진할 때 그는 12년째 ‘만년 대리’에 머물러있다. 승진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점에 육아휴직을 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일보다 중요한 건 내 인생”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그러면서 “지나고 보면 승진 날짜는 기억이 안 나도 우리 아이가 태어난 순간은 잊을 수 없다”며 “승진 대신 육아휴직을 선택한 걸 저는 하나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MBC 예능 프로그램 〈아무튼 출근〉 에 출연한 이동수 씨의 모습. 그는 방송 출연 이후 ‘회사 막 다니는 아저씨’ 짤방으로 유명해졌다. [MBC 방송화면]

사람들은 그를 ‘신인류 직장인’이라고 부른다. 일도 잘하고, 책임감도 있고, 가정도 챙길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누군가는 ‘금전적 여유’ ‘유복한 가정환경’이라고 추측하지만 그는 스스로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으며 상상 이상으로 노력해 겨우 결과를 얻어내는 편”이라고 말한다.

지난 7일 경기 수원시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바닥엔 ‘무빙 스튜디오’라는 문구가 흰색 페인트로 휘갈겨져 있고, 천장엔 묵직한 샌드백이, 벽엔 각종 공구가 붙어있다. 이 씨의 자유로운 정체성이 집약된 공간이다. 카드 회사 직원이자, 10만 구독자 돌파를 앞둔 유튜버이자, 책 〈언젠가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의 저자인 그를 만났다.

이동수 씨는 승진과 바꾼 육아휴직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세준 기자]

▶MBC 〈아무튼 출근〉으로 이름을 알렸는데 방송 출연 계기는

“4년간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다. 구독자가 1만에 불과했지만 그 무렵 올렸던 ‘한 달 조깅’ 영상이 2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 영상을 보고 작가님이 댓글로 섭외 요청을 했다. 처음에 회사에선 방송 출연을 반대했다. 홍보팀, 인사팀을 설득하던 와중에 사장님이 바뀌면서 극적으로 방송 출연이 성사됐다. 새로 온 사장님이 ‘뭔 소리야. 방송 출연 해야지’라며 적극 지지해 주셨다.”

▶방송이 나간 이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방송 시청률 자체는 3%로 높지 않았다. 혼자 제주도에서 ‘안식월’을 보내고 있던 시기여서 보름간 방송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방송 공개 이후 ‘짤방’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100명이 넘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회사 사람들도 외근 나갈 때마다 ‘너네 회사 진짜 그러냐’는 질문에 시달리는데 그럴 때마다 ‘쟤만 그렇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보수적인 금융회사에서 장발을 고수한 이유가 있나

“신입 때부터 장발은 아니었다. 2019년 육아휴직 때부터 머리를 길렀다. 고등학교 때 머리를 밀고 다녀야 했기 때문이 긴 머리가 ‘자유의 상징’ 같았고 한 번쯤 해보는 것이 로망이었다. 복직할 땐 바로 장발로 들이댈 수 없어서 머리를 자르고 출근한 후 쭉 길렀다. 사장님한테 ‘장발해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코도 뚫고 다니라’고 하시더라.”

MBC 예능 프로그램 〈아무튼 출근〉을 통해 공개된 이동수 씨의 회사 자리. 그의 모니터엔 12년째 ‘언젠가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MBC 방송화면]

▶화제가 된 ‘언젠가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란 문구는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처음 입사했을 때 카드 명세서를 만들어 발송하는 청구팀에 발령을 받았다. 카드회사의 핵심 업무 중 하나였지만 끊임없이 데이터를 추출해 검수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체크, 리체크, 더블 체크, 제로 디폴트’라는 검수 문구가 있었는데 볼 때마다 힘들었다. 그래서 나만의 문구를 만들어 모니터에 붙였다. ‘내 삶을 살아보자’라는 의지에서였다. 자리를 옮겨도 12년째 이 문구를 붙이고 있다.”

▶‘회사원 이동수’는 어떤 사람인가. 바람직한 회사 생활의 모습은?

“간섭하는 거 싫어하는 사람. 알아서 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 새로운 일을 좋아하는 사람. 두루두루 친한 사람이다. 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평판과 몸값을 올리기 위해 일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일이 끝나고 연락하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신입 땐 습관처럼 “퇴사하겠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는데

“그렇다. 직장인의 ‘2대 허언증’이 있다. ‘퇴사할 거야’와 ‘유튜브 할 거야’다. 직장인 100명 중 100명이 모두 생각해 봤지만 그중 10명만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5명만 실천에 옮긴다. 그리고 그중 한명만 꾸준히 노력을 한다. 신입 때부터 대안을 찾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수제 맥주를 만들어 대회에 출품하기도 하고 일식 요리·복싱 학원 등도 다녔다. 그 과정에서 남은 것이 유튜브다. 구독자가 늘지 않아도 4년간 꾸준히 했다.”

MBC 예능 프로그램 〈아무튼 출근〉 에 출연한 이동수 씨의 모습. 그는 방송 출연 이후 ‘회사 막 다니는 아저씨’ 짤방으로 유명해졌다. [MBC 방송화면]

▶청년 세대와 중장년층 세대가 회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것 같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개인의 인생이 얼마만큼 소중하냐의 비중이 달라진 것 같다. 회사에서 한솥밥 먹으면서 일하면 직장 사람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반면 가족과의 관계가 멀어진다. 결국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과 체력에 한계가 있어서다. 과거와 달리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해지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 같다. 각자의 인생이 중요해지면서 직장 생활과의 간극이 생긴 것 같다.”

▶인생에서 가족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것 같다. 승진을 포기하고 휴직을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나.

“후회할 수가 없다. 올바른 선택을 했다. 항상 아이와 함께 있고 싶어 퇴근 후 집에 달려가곤 했다. 8년 차 승진 시기가 왔을 때 인사팀에 육아휴직을 사용하겠다고 하자 ‘승진하고 가야지’라며 말리더라. 저는 ‘괜찮아요’라고 거절했다. 사실 육아휴직을 하는 순간 승진에서 밀리는 것은 기정 사실화 됐다. 그저 예견된 것이 찾아왔을 뿐이다.”

▶상사를 어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눈치 보지 않는 회사 생활을 위한 조언은.

“처음엔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결국 회사도 사람 만나는 곳이 아니겠나. ‘회사에서 모두가 동등하다’는 이상향을 잡고 따라가려고 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위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릴 순 없지만 내가 올라갈 수는 있다. 신입 때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경우도 많았지만, 상사에게 가벼운 농담도 건네며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러워졌다.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업무 효율도 올라갔다.”

MBC 예능 프로그램 〈아무튼 출근〉 에 출연한 이동수 씨의 모습. 그는 방송 출연 이후 ‘회사 막 다니는 아저씨’ 짤방으로 유명해졌다. [MBC 방송화면]

▶방송 직후 ‘자유로운 영혼’ 같다는 반응이 많았다. 유복한 집안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라 구김살 없는 사람 같다는 첫인상도 있었는데 실제 모습은 어떤가.

“유년 시절엔 불행한 삶을 살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맞벌이였고 집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유치원 때부터 혼자 버스를 타고 다녔고, 끼니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용돈을 받을 때마다 악착같이 모았다. 가정폭력도 있었다. 학교에선 성적이 하위권이었고 맨날 친구들과 놀러 다녔다. 이후 순천향대학교에 입학했지만 20살 때 ‘올 F’를 받고 자퇴했다. 4년 뒤인 25살 때 학교에 재입학하면서 삶이 바뀌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삶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나.

“2년 늦게 군대를 갔는데, 만회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 지원했다. 운전병으로 파병가기 위해 대형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2달간 특전 훈련을 받았다. ‘해외는 갑부만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어 해외에 나가보니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 모래바람이 부는 곳에서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다’는 생각을 하니 비장해졌다. 그때부터 모든 일에 의미 부여를 했다. 이라크에 있으면서 책을 많이 읽었고, 생명 수당으로 1200만원도 받았다. 그 돈으로 대학교에 재입학했다. 술과 담배도 끊었다.”

2005년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 당시 이동수 씨의 모습. [이동수 씨 제공]

▶25살에 대학교에 재입학한 후엔 학업에만 매진했나

“그렇다. 2년 넘게 말이 안 되는 생활을 했다. 매일 16시간에서 18시간 공부만 했다. 밥은 생존을 위해 제일 싼 학식만 먹었다. 처음엔 영어 장학금을 주는 반에서 성적이 꼴찌였지만 가장 먼저 미국 교환학생에 붙었다. 처음에 비웃던 친구들도 ‘미쳤다’며 충격을 먹었다. 미래에셋 장학생으로도 선발돼 미국에서도 공부에만 집중했다. 인생의 가장 큰 성취 경험이었다.”

▶쉽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음에도 긍정적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친구였다. 초등학생 때 우울한 삶에서 꺼내준 건 친구들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가족에게서 얻지 못한 감정적인 결핍을 채웠다. 이후 스스로 내린 결정에 책임지고, 그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경험으로 확인하면서 자신감이 쌓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친구, 아내, 자식 같은 인간관계다.”

▶유튜브 채널 ‘무빙워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기술을 갖고 싶었다.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아이의 성장 기록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었고,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기술을 배울 수 있어서였다. 그래서 제 이름을 딴 ‘무빙(이동)워터(수)’라는 채널을 개설하게 됐고, 2년간 영상 편집을 독학하면서 하나씩 배워나갔다.”

방황하는 청춘들을 위해 이동수 씨는 "영어든, 운동이든, 독서든, 결론은 뭐라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조차도 시도할 마음이 없다면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라며. [임세준 기자]

▶유튜브 채널의 방향성은

“저는 개인주의자이고, 채널의 주제가 없다. 그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시도 해보는 과정에 있다. 조깅 영상을 올리다가 인생 잡담 영상을 올리면 구독자가 50명씩 줄어들기도 하기도 한다. 고생해서 영상을 만들었는데 수치를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저를 좋아하는 ‘찐 구독자’만 남아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얕고 넓은 인간관계보다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제 가치관과도 맞는 것 같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나

“그동안 관심 있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려고 한다. ‘버킷리스트 뽀개기’인 셈이다. 먼저 저의 고향인 한국과 수원 광교가 ‘살기 좋은 곳인 이유’에 대한 영상을 만들고 싶다. 과거 네덜란드에 살면서 한 송이의 꽃이 얼마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 깨달았다. 그곳에선 튤립 20송에 5유로다. 한국에서도 모두가 꽃을 볼 수 있도록 공실을 빌려 저렴하게 판매하고 싶다. 꽃집 이름은 ‘플라워워터’로 이미 지어둔 상태다.”

▶인생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는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결론은 뭐라도 해야 한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일단 영어·운동·독서 중 하나라도 시작해라. 세 가지 중 아무거나 시작하면 감이 온다. 뭐가 맞고 아닌지 알게 된다. 이것조차 시도할 마음이 없으면 변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다.”

dodo@heraldcorp.com
j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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