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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에서 부친이 막노동으로 번 돈, 은행 "못 내줘"...100억원 가치
김규정씨의 작고한 부친이 일본에서 막노동으로 모은 돈을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 맡길 당시 받은 현금보관증. 3대째 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한희라 기자]일제시대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 돈을 맡겨 뒀으나 은행이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3대째 돈을 찾지 못한 가족의 사연이 알려졌다. 현재 가치로는 100억원 가량이다.

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상북도 예천군의 김규정(79)씨는 부친이 조흥은행에 남긴 거액의 돈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인출하지 못하고 있다.

김규정씨의 부친 고(故) 김주식씨는 14세이던 1910년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45년 해방을 맞자 고생해서 모아둔 엔화를 들고 귀국했다.

김주식씨는 이듬해 조흥은행 예천군 지점에 1만2220엔을 예치하고 ‘현금보관증’을 받았다. 이 보관증에는 ‘1946년 3월5일 조흥은행 풍천 지점의 박종선 지점장이 예천군 보문면 미호동에 사는 김주식씨의 일본 돈 1만2220엔을 받아 보관함을 증명한다’, ‘다른 사람이 소유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김씨의 서명과 조흥은행 직인도 증서에 포함됐다.

김주식씨는 한국전쟁 이후 조흥은행을 찾아 맡긴 돈을 인출하려 했다. 하지만 은행은 전쟁으로 남은 자료가 많지 않고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출금일을 차일피일 미뤘다고 한다.

그러다가 박정희 정권 때에는 경제개발을 위한 외화 자금이 필요해 엔화 출금이 어려웠다. 이런 저런 나라 상황 때문에 김주식씨는 돈을 돌려 받지 못했고, 1969년 화병으로 눈을 감았다.

그의 아들 김규정씨는 1982년 부친의 현금보관증을 창고에서 발견했다. 연유를 알게 된 그는 은행을 찾아 나섰다. 김규정씨는 당시 조흥은행의 한 국고 담당 대리관에게 “우리 은행 것이 맞다”며 “100억원 이상을 내줘야 하지만, (거액을) 인출하려면 재무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20일 뒤 김규정씨는 금융 당국에 문의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현금보관증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현재 고령이 된 김규정씨를 대신해 이제는 그의 막내 딸 A씨가 나서고 있다. A씨는 최근 금융감독원과 2006년 조흥은행과 합병한 신한은행 등에 민원을 신청했다. 1946년 1만2220엔의 현재 가치는 40억~70억원으로 추정된다. 환율, 물가 상승, 화폐개혁 등을 고려해 평가한 가치다. 여기에 76년간 쌓인 은행 이자까지 합치면 돌려받을 금액은 1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신한은행과 금융당국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hanir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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