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들어 20일까지 수출이 1년 전보다 4% 가까이 증가했지만, 수입 증가율은 20%를 웃돌아 이 기간 무역적자가 100억달러를 넘었다. 이 경우 월간 무역수지는 14년여만에 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은 334억240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9% 증가했다. 사진은 22일 부산항 신선대와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환율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가뜩이나 적자를 보이고 있는 무역수지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지만, 이번엔 예전 같은 ‘환율 특수’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사와 가공해 수출하거나, 중간재를 넘긴 뒤 현지에서 완성품을 생산하는 식으로 수출 방식을 바꿔왔기 때문이다. 환율상승에 따른 가격 경쟁력 강화 효과는 줄고,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등을 비싸게 사와야 하는 부담이 커진 셈이다.

29일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제 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수출단가는 0.04% 오르고, 수출물량은 0.01% 감소해 수출금액은 0.03% 증가에 그친다. 반면 수입금액은 3.6%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원화 가치 하락이 무역적자 확대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물론 업종별로 나눠보면 강달러로 이득을 보는 업종도 있다. 계약금 대부분을 달러로 받는 조선사나, 수출과 판매 대금의 달러 비중이 높은 완성차 업계가 대표적이다.

반면 리스료, 유류비 등을 달러로 결제해야 하는 항공사는 직격탄을 맞는다. 대한항공은 원화가치가 10원 하락(환율 상승)하면 약 350억원의 장부상 손실이 발생한다. 철강업계도 마찬가지다. 내수 소비는 그대로인데, 환율 상승으로 철광석 등 원재료 구매 가격이 오르면서 원가 부담이 커진다. 석유화학도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기초 원료로 쓰이는 나프타의 수입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북미 지역에 배터리 공장의 신·증설을 추진 중인 배터리 업계도 비상이다.

환율 특수가 어려워진 이유는 한국의 수출 경쟁국들의 통화가치가 함께 떨어진 것도 한 몫 한다. 미국이 긴축을 위해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끌어올리는 가운데 유럽과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보태지면서 안전자산인 달러 가치를 올리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미 달러화 지수인 달러인덱스(DXY)는 지난 26일(현지시간) 108.84를 기록했다. 이는 2002년 이후 근 20년 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현재의 환율 리스크가 심화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점이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26일(현지시간)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또 한 번 이례적으로 큰 폭의 금리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6월과 7월에 이어 다음 달 또다시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 것이다. 이 탓에 원·달러 환율이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3년 여 만에 1400원을 다시 돌파하는 것은 시간 문제며, 연말엔 1500원까지 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지난 4월(-24억7600만달러)부터 5월(-16억달러), 6월(-24억8700만달러), 7월(-48억500만달러)까지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8월 들어서도 20일까지 102억1700만달러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달 말까지 5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게 되면 2007년 12월∼2008년 4월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