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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태백 고랭지 배추밭을 가다] 폭우·폭염도 힘든데 병충해까지…배추밭 3분의 1이 쑥대밭됐다 [언박싱]
45만평 강원 태백 매봉산 배추산지
상품성 있는 배추는 예년의 절반
운임비 20% 올라 생산비 급등
포기당 500원…“배추농사 안하고 만다”
약초·양배추 등으로 경작물 전환하기도
지난 22일 오후에 찾은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배추밭에 상한 배추가 널려 있다. 신주희 기자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굽이친 강원도의 도로를 따라 지난 22일 오후에 찾은 태백시 매봉산 ‘바람의 언덕’. 1100m 고지에 45만평 (약 148만7603㎡) 드넓은 배추밭이 매봉산 품에 안겨 펼쳐져 있다.

풍력발전기 아래 매봉산 경사면에 모습을 보인 배추밭은 예년 같았으면 수확이 끝나고 갈색 흙으로 갈래갈래 나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올해는 배추밭의 면적 3분의 1가량은 아직도 푸르렀다. 가까이 가서 살펴본 배추는 생육기간에 폭염에 뒤이어 8월 초 출하를 앞두고 유례 없는 폭우로 수확을 포기할 정도로 상해 있었다.

지난 22일 오후에 찾은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배추밭에 상한 배추가 널려 있다. 신주희 기자

일부 배추밭은 푸른 대신 군데군데 노란빛을 띄었다. 이때쯤이면 수확작업 막바지로 분주해야 할 배추밭에 인적마저 드물었다. 일부 피해가 덜한 밭에서 외국인 노동자 여럿이 조를 이뤄 배추를 거둬들일 뿐이었다.

배추밭에 들어가 보니 상태는 더 심각했다. 땅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할 배추들이 손으로 툭툭 치자 힘없이 흔들렸다. 겉잎도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바로 무름병 때문이었다. 폭염과 폭우에다 고온 현상으로 발생하는 무름병까지 겹치면서 다 자란 배추는 속수무책이었다.

지난 8월 폭우로 인한 무름병으로 고랭지배추가 시들어 있다. 신주희 기자

이에 더해 몇 년 전부터 강원도 태백지역에서 배추전염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2011년 태백에서 처음 발견된 ‘사탕무씨스트 선충’은 배추 뿌리에 기생해 배추를 말라 죽인다. 또 배추 이파리의 절반만 누렇게 변하는 ‘반쪽 시들음병’이 확산됐다. 이 병은 토양에 번식하는 '버티실리움'이라는 병원균이 원인이다. 당국은 올해 태백지역 고랭지 배추밭 400㏊의 10% 이상이 ‘반쪽 시들음병'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했다.

이날 만난 한 농민은 “태백 고랭지배추밭의 3분의 1 이상이 쑥대밭이 됐다”며 “3분의 1은 부실해도 일부 배추를 골라 수확하고, 나머지는 평년 수준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배추 전체 생산량은 전년과 큰 차이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농민은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배추뿐”이라고 했다. 통상 상품성을 인정받는 배추는 포기당 2~2.5㎏ 정도 자라야 도매시장에 팔려나간다. 나머지 생육이 부진한 배추는 식자재공장 등으로 유통된다. 그러나 올해 도매시장에 팔릴 만큼 온전한 배추는 예년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 22일 오후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배추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수확작업을 하고 있다. 신주희 기자

이날 현장에 동행한 이한진 태백농협 농산물유통가공사업소 상무는 “보통 배추의 한 쪽 단면의 잎 수가 13~14장이 돼야 하는데 올해는 8~9장 정도로, 30% 정도 배추 크기가 줄은 셈”이라면서 “김치공장에서도 배추가 커야 포기김치로 담글 수 있는데 최근 배추의 상품가치가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중에 유통되는 포기배추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 것이라고 태백농협 측은 설명했다.

최근 생산비용도 크게 올라 수확을 포기하는 농민도 늘었다. 3000포기를 실을 수 있는 트럭 한 대의 운임비는 태백에서부터 서울까지 75만원으로, 전년 대비 20%가량 올랐다. 여기에 인건비 60만원, 포크레인 운임비 20만원, 배추망 등 부재료 15만원을 합하면 농민이 배추를 팔기 위해 기본 17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지난 22일 오후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배추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수확작업을 하고 있다. 신주희 기자

포기당 배추 도매가격이 500원 안팎인 만큼 농민은 팔아도 남는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일부 배추 대신 천궁 등 약초를 심거나 당근, 양배추로 경작물을 전환하는 농민도 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태백 매봉산에서도 배추보다 짙은색의 양배추밭과 천궁이 일부 밭에서 자라고 있었다.

농업관측선터에 따르면 올해 고랭지 여름배추 재배면적은 전년 대비 감소했다. 출하량은 평년 대비 9.5% 감소했다. 다음달에도 7.3%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량은 41만480t으로, 전년 44만7411t보다 8.3% 줄었다. 특히 생산단수가 특히 급감했다. 10a(1000㎡)당 생산단수는 7721㎏으로, 지난해 8060㎏과 비교해 4.2% 감소했다.

8월 배추의 도매가격은 상품 기준 10kg당 2만원으로, 전년 및 평년 대비 각각 121.8%, 57.8% 올랐다.

이날 동행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배추뿐 아니라 무도 재고가 부족해 출하시기가 3주 정도 앞당겨졌다”며 “납품받는 배추의 크기도 작고 무도 크기가 덜 자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기후위기로 인한 ‘스콜’이 고랭지채소 생육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며 “30분이라도 비가 쏟아지고 햇볕이 내리쬐면 작물이 타 죽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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