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4개중 1개 삭제라도 증거인멸 인정
초기 수사했던 경찰관은 무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연합] |
[헤럴드경제=유동현 기자]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하고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두 가지 혐의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2부(부장 조승우·방윤섭·김현순)는 25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차관에게 “공소사실에 대해 모두 유죄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 전 차관 측이 폭행 사실 자체에 대해선 인정했기에 1심에서의 쟁점은 증거인멸교사 혐의 인정 여부였다.
이 전 차관 측은 택시기사 A씨가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된 폭행영상 4개 중 사본 영상 1건만 카카오톡 대화창에서 삭제했다는 이유로 증거인멸교사 혐의 무죄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사본일지라도) 원본과 독립된 증거로 봄이 상당하다”며 “당시 수사기관에서 동영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운전자폭행 범행의 유무죄나 양형 자료로 판단될 수 있는 자료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A씨가 동영상 1개를 삭제한 행위는 증거인멸이 된다는 것이다.
A씨가 이 전 차관 측 요구대로 모든 동영상을 삭제하진 않았지만, A씨가 “(경찰에게)‘안보여주면 됩니다’ 와같이 대답한 점은, 적어도 증거 은닉에 대한 승낙으로 볼 수 있다”고도 판단했다.
A씨의 진술도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A씨가 법정에서 이용구의 부탁이 (동영상을) 삭제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고 반복해 진술했다”며 “A씨 진술에 따르면 (증거인멸) 인과관계가 넉넉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A씨가 이 전 차관에게 경찰 수사 후 상황을 이 전 차관에게 전달한 점을 토대로 A씨가 이 전 차관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았다고도 봤다.
범행의 고의성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부장판사와 법무부 법무실장 등을 거친 법률전문가였기에 증거인멸교사 위험을 회피하면서도 목적을 달성할 다른 방법 충분히 강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며 “그럼에도 강구하지 않은 점에 비춰보면 고의가 있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객관적으로 볼 때 운전자폭행이 단순 형법상 단순폭행 사건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자신의 불리한 증거 인멸로 평가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 전 차관 측은 수사기관에 허위로 진술해달라는 부탁은 A씨와 합의 과정에서 했던 것으로 동영상 삭제 전이라고 주장하지만 선후 관계가 바뀐다고 해서 이같은 결론이 바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교통사고를 유발해 제3자의 신체,재산에 중대한 위험 야기할 범죄로 죄책 가볍지 않다”며 “그러나 이용구는 범행의 형사 처벌을 면하거나 경감받기 위해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등 형사사범 위험까지 야기해 사안이 더 중요해졌고 죄질도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증거인멸 교사 범행에도 불구하고 폭행 동영상은 계속 존재하던 상황이었고, (초기 수사 당시) 이 사건 폭행 동영상을 확인하지 못했던 부분에 A씨가 삭제한 행위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영향 미쳤다고 볼 순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 최초로 사건을 담당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특수직무유기,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찰관 B씨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직적, 계획적으로 직무유기 저지른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 전 차관은 취임 전인 2020년 11월 6일 서울 서초구 자택 앞에서 술에 취해 잠든 자신을 깨우려던 택시기사 A씨의 멱살을 잡고 밀친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 발생 이틀 뒤 택시기사에게 합의금 1000만원을 건네며 폭행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한 증거인멸 교사 혐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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