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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시사] 절대 빈곤의 늪이 깊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성장을 거듭하면서 가난은 극복의 대상이 된 것처럼 보였다. 마치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가난한 동네를 강제 철거하고 철거민을 서울 외곽으로 밀어냈던 것처럼 빈곤은 눈에 보이지 않게 치워버리면 되는 것으로 여기게 됐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가난이라는 소재를 잘 돌아보거나 살피지 않게 됐다. 기자들이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던 시절에는 대중교통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자가용을 주로 이용하게 되면서 대중교통에 대한 기사가 줄어들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이 되면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알린다는 의미로 쪽방촌을 찾는 보도가 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 보도는 사회의 취약한 부분을 돌아보고 안전망 필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취지였겠지만 우리 사회의 빈곤을 극소수의 문제인 것으로 여기게 할 수도 있다. 마치 빈곤이 나와 상관없는 소수 사람의 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자주 접하면 익숙하고 잘 보이지 않으면 낯설어진다. 현대인이 삶과 죽음을 구분하게 되면서 죽음이 공포에 가까운 것이 돼버린 것처럼,가난이 주변부로 밀려날수록 어느 날 갑자기 가난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 느껴지는 낯섦이 존재한다.

지난 8일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는 우리 사회가 한쪽으로 치워놓은 듯했던 가난을 들춰냈다. 언론은 서울 강남이 잠긴 사실에 놀라고 주목했지만 곧이어 드러난 반지하의 현실과 인명피해에 소란스러움은 일순간 정적으로 바뀌는 듯했다. 마치 영상이 순간적으로 멈춘 것처럼....

사고 후에 서울시에서는 서둘러 반지하를 거주 용도에서 배제하는 대책을 내놨다. 서울시 대책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반지하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반지하는 단순히 주거의 한 형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해결되었다고 느끼고 있는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해를 막는 조치를 다 하고 앞으로는 수해로부터 안전해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 수도 없다.

한동안 사회자원이 부족한 청년층을 지원하는 방향이 사회 개혁인 것처럼 이야기되곤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향이 오히려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은폐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빈곤의 문제를 세대론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 사회에는 빈부 격차가 없다는 듯 특정 세대에게 부족한 자원을 채워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이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의 가구주로는 50대가 가장 많다고 전해진다. 그다음은 60대이고 70대다. 60이 되고 70이 되어도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난은 청년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청년층 빈곤의 문제 역시 세대론을 넘어서야 올바른 해결 방안이 나올 수 있다.

영화 ‘기생충’의 주인공 가족은 반 지하에 산다. 영화가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은 데에는 전 세계적인 빈곤과 불평등의 사회구조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영화 속 반지하는 영화 속 세트도 아니고, 머나 먼 동네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옆에 자리 잡고 있는 가난의 이야기다. “그냥 가려 했는데 한 자 적는다.” 생활고와 질병에 시달리다 안타깝게 세상을 마감한 수원 세 모녀 중 40대인 둘째 딸이 남긴 글의 시작이다. 그간의 고된 삶이 고스란히 남겨졌다.

우리 사회가 애써 외면하지만 어딘가에 절대빈곤의 늪이 깊어지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는 정치권은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금껏 그래 왔듯이 어느 정도 수해복구가 마무리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여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한 발짝이라도 문제해결에 나설 것인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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