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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반지하 금지”에 시민들 갸우뚱…“그럼 월세 내려가나요”
“20년 내 반지하 없앤다”는 서울시
거주자들은 “환경 정비가 더 필요”
“반지하 없으면 옥탑에 가게 될것”
전문가들, 잇달아 “대안 부재” 지적
“물량 없는 임대주택 실효성 있나”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허인아 씨의 집. 배수로나 방지턱이 제대로 없는 탓에 장마철이면 경사로를 따라 물이 문 앞까지 흘러내린다. 박혜원 기자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반지하 없으면? 옥탑방 갔겠죠.”

2년 전 서울시 동대문구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거주했던 김모(27) 씨는 최근 서울시가 내놓은 ‘반지하 금지’ 대책에 이렇게 반응했다.

대학생이었던 김씨가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던 월세는 30만원 남짓. 김씨가 살던 동네 역시 저지대라 장마철에는 창문으로 비가 들이치곤 했다. 김씨는 “옥탑이란 대안도 있었지만 냉방·난방비를 따지면 더 비싸다”면서 “하지만 반지하가 없었다면 결국 그쪽으로 가지 않았겠냐”고 반문했다.

수도권에 쏟아진 폭우에 반지하 주택을 중심으로 인명피해가 잇따르자, 지난 10일 서울시는 앞으로 서울시 모든 자치구에서 지하·반지하 주택을 만들 수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에 지어진 지하·반지하 주택은 10~20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없앤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12일 헤럴드경제가 만난 서울시 반지하 거주자들과 거주 경험자들은 이런 대책에 대체로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반지하의 열악한 주거 환경이야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럼 어디로 가느냐”는 대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날 마포구 아현동에서 만난 허인아(55·여) 씨는 9년째 반지하에 살며 봉제 일을 하고 있다. 허씨의 집엔 작업 중인 옷들이 가득 널려 있었다. 허씨는 “소득수준이나 업무 성격을 고려하면 여기가 최선”이라고 했다. 재봉틀을 돌리다 보면 진동이 벽을 타고 이웃집까지 전해지기 때문에, 지하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허씨가 당장 원하는 건 지상층보단 ‘배수로’였다. 집 앞에 제대로 된 배수로나 방지턱이 없는 탓에 비가 쏟아질 때면 물이 넘칠까 늘 불안하다. 실제로 아현동 일대 반지하 대부분은 빗물을 막을 방지턱 없이 대문이 경사로에 바로 붙어있었다.

지난 8일 오후 9시 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지난 9일 침수 현장 모습. [연합]

인근에 사는 임병순(72·여) 씨도 “비가 오면 습기가 가득 차고 힘들지만 그렇다고 어딜 가겠냐”며 “아스팔트나 깔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씨는 폭우가 쏟아진 다음날 문 앞에서 흙바닥을 무심코 밟았다가 종아리까지 빠졌다.

동작구 사당동 반지하에 살다 이번 폭우로 집이 침수돼 모든 가전제품을 버렸다는 박모(30) 씨도 입장이 비슷했다. 박씨는 “혼자 상경해 방을 찾다 보니 반지하밖에 선택지가 없었다”며 “현실적 이유로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텐데 대책 없이 금지만 하면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장기적으로 반지하를 없애는 방향성엔 공감하면서도,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울시는 반지하 기존 세입자들에겐 공공임대주택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반박이 나온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쪽방 주민이나 노숙인에게도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단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나왔지만 물량 자체가 없으니 해결이 안 되고 있지 않느냐”고 지적하며 “공공주택을 얼마나 늘릴 건지부터 계획을 세우고 반지하를 금지하든 말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진형 공동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경영과 교수)도 “취약계층일수록 교통비 절감 등의 이유로 열악한 환경 감수하면서라도 어떻게든 서울에 살게 된다”며 “무턱대고 반지하만 없애면 취약계층 선택지만 줄어든다. 공공임대주택이 대안이라면 물량을 어떻게 얼마나 늘릴지도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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