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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소비자 주체 ESG 경영...버리기와 채우기 실천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집안의 많은 물건을 처분하였다.

폐기물 업체를 통한 폐기 비용도 어마어마하여 생전 처음으로 당근마켓을 이용, 판매를 시도하였다. 물건 사진을 찍고, 설명을 올리고 가격을 협상하면서 새삼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약속 시간을 어기는 사람, 다른 사람이 먼저 살까봐 가격을 올려서 역제안하는 사람,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검은색 옷을 입고 회색 가방을 들고 있다며 개찰구 앞까지 와달라는 사람, 차를 안 가지고 와서 비를 맞고 왔으니 가격을 반값으로 깎아 달라는 사람, 감사하다며 커피 쿠폰을 주는 사람 등 너무도 다양했다.

그중 한 여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이가 쓰던 악기를 사간 사람이었는데, 그녀는 본인의 회사 출근 또는 퇴근길에 물건을 받고 싶어 했다. 채팅창을 통해 대략 근무지와 직업, 사는 곳, 가족 형태 등을 파악할 기회가 있었다. 서로의 사정으로 약속된 날짜가 계속 바뀌면서 그녀와 일주일 동안 하루 몇 차례씩 안부를 주고받듯 동선과 일상을 본의 아니게 공유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알게 된 일면식 없는 타인의 정보는, 한부모 가정의 딸아이를 한 명 키우고 있는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워킹맘이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아이와 친정에서 생활하고, 평일에는 회사 근처의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고된 삶을 이어오고 있었다. 근무 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밤 10시30분까지가 대부분이었고 빨리 끝나는 날은 흔치 않았다. 딸아이를 보러 금요일 밤 11시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친정으로 내려가는 일정이었다. 결국 그녀의 일정에 맞추어 금요일 밤 10시30분 터미널에서 그녀와 조우하였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였다. 살 때 가격의 20분의 1도 안 되는 몇 만원 받자고 이렇게 고생해야 하나,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아야지. 반면에 오죽하면 이 시간에 보자고 했을까, 아이에게 좋을 것을 싼 가격에 사주고 싶은 마음이 오죽할까.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있는 틈 사이를 비집고 그녀와 서로의 옷차림을 확인한 후 물건을 건네주게 되었다. 허름한 옷차림의 전형적인 아이 엄마였다. 그녀는 좋은 물건 싼 가격에 받게 되어, 이 복잡한 곳까지 와주어 감사하다며 내게 연신 인사를 하였다.

다음날 당근마켓 채팅창이 다시 울렸다. 너무 싼 가격에 좋은 물건을 구입하여 고마운 선물이라도 하고 싶은데 개인 핸드폰 번호를 알 수 있냐는 문자였다. 괜찮다고 거절하면서 아이가 잘 쓰면 좋겠다고 답해주었다. 그녀와의 마지막 채팅이 된 문자에 담긴 말이 계속 감동으로 남는다.

“아이에게 늘 악기를 배우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줄 돈도, 시간도 여유도 부족하여 늘 망설이다가 물건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늦은 밤에 사람 많은 곳까지 와서 30분 기다려서 물건을 건네주는 모습에 아직 힘내고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내겐 돈 이상의 가치로 남았다. 해당 기업의 특성상 소비자들이 주체가 되어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 경영을 실천한 셈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서로에 대해 신뢰를 쌓고, 사회가 움직이는 데 일조하는 시민사회의 자발성과 역동성을 당근마켓 거래에서 소소하지만, 가슴 찐하게 찾을 수 있었다.

이윤진 서원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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