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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형의 현장에서] 규제풀고 경쟁력 높인다더니 관치금융?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경제 환경이 안 좋다고 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언급하며 은행들이 부실 대출까지 떠안아야 한다면 사실상 금융사들의 팔을 비틀어 억지 부담을 지우는 셈이다.”

“수신 기능이 있는 금융사는 예대마진이라는 기본 수익구조가 있는데 당국이 금리를 낮추라고 해서 경영계획을 전체적으로 다시 짜고 있다. 정책이 현장에 미치는 시차를 고려할 때 올해까지는 어떻게 버티겠지만 문제는 내년이다.”

최근 만난 금융권 관계자들의 일성이다. 코로나 시국에 역대급 실적을 올리며 가장 큰 수혜를 본 금융권의 ‘우는 소리’인 듯 했다. 언제는 기업이 정부 정책을 반겼던가 생각하면 그냥 또 하는 소리겠거니 치부하려 했다.

그러나 최근 ‘관치(官治)금융’ 논란이 일고 있다. 그 논란의 핵심에는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했기에 전 정부에서 시행했던 각종 규제가 풀릴 것으로 기대가 컸던 금융권은 최근 국회와 당국의 메시지를 접하면서 실망이 크다. 3고(三高)로 인해 서민경제가 세 배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삼고(三苦) 상황에서 금융권도 취약 계층을 위한 정부의 지원에는 ‘이백퍼’ 공감한다. 그러나 자율성 보장에 역행하는 수준의 정책 주문이 쏟아지는 데는 당혹스럽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자 장사’를 언급한 것이 단초를 제공했다. 은행들은 잇달아 대출금리를 낮추거나 인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추진 중인 취약 차주를 대상으로 한 채무 조정 지원과는 별도로 무조건 금리를 내리고 있다. 정치권과 당국의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 지주사들은 중간 배당을 계획했다가 재검토에 들어갔다. 지주 계열 금융사들은 지주와 고객에게 배당을 통해서 수익을 환원해야 한다. 당국이 경기 변동성을 이유로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하고 대손충당금을 추가 적립할 것을 주문했다. 금융 지주들은 이를 ‘배당 자제’ 신호로 인식한다. 배당성향을 줄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주 소상공인, 청년층의 부채를 최고 90%까지 탕감해주는 긴급 대책을 내놨다. 규모가 125조원이다. 올해 정부 전체 예산이 약 608조원이다. 5분의 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연체 90일 이상 부실 차주에 대해 원금을 감면해주면 은행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대출 부실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언급하며 조기 차단을 강조했다. 도덕적 해이가 없도록 심사기준을 정교하게 하더라도 시장 원리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분명하다.

정부나 정치권은 부정적 의미가 강한 ‘관치’에 동의하진 않을텐데, 금융권 종사자들이 느끼는 관치는 이미 금융사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정치권과 당국은 금융사들을 서민의 고혈을 짜내는 ‘피의자’로 보는 시각부터 바꾸길 바란다. ‘건전한 금융 생태계 구축’이라는 선의가 자칫 지나친 개입으로 금융시스템 전반을 흔드는 ‘정부 실패’를 야기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서민을 불법 사금융으로 내모는 우는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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